저 자신을 봐도 그렇고 이웃들을 봐도 그런 것 같은데 우리는 우리의 것을 덜 사랑하고, 덜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우리의 것에서 지혜와 교훈을 끄집어내지 못하는 편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서양 신화에 대해서는 많이 연구도 하고, 그들의 신화에서 영감을 얻거나 작품의 동기를 끄집어내곤 하지만 우리의 신화를 가지고 그러는 것은 많이 보지 못합니다. 그것은 문학작품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다행히도 몇 작품은 판소리 형태로 우리에게 전해지면서 그나마 많이 알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흥부전입니다. 그리고 저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초등학생 때 연극으로 접한 바가 있어 심정적으로 친밀한데 이번 설 명절을 기해 이 얘기를 오랜만에 다시 의미 새김을 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이 얘기가 행복에 대한 교훈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면 ‘새해 복을 많이 받으라’고 인사하든, ‘새해 복 많이 지으라’고 인사하든 복을 빌어 주는 인사를 하는데 지난해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새해에는 복을 받든, 복을 짓든 행복하라고 축복하는 것이지요. 이 인사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행복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복을 받는 측면과 복을 짓는 측면입니다. 복이 지지리도 없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은 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덕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굴러 온 복을 걷어차는 것이 부덕이라면 남으로 하여금 복을 빌어 주고 싶게 하고, 주는 보람이 있게끔 복을 고맙게 잘 받아들이는 것이 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복을 주고 싶게끔 하고, 복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복을 받은 다음에 복을 잘 농사짓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는 마치 하늘에서 비와 햇빛을 적당히 내려줘도 농사 잘 지어야 그러니까 제때에 씨 뿌리고, 물 관리를 잘하고, 풀도 잘 매 줘야 열매를 맺듯이 복 농사도 잘 지어야 우리가 행복하게 되는 거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복 농사를 잘 짓는 것일까요?
우선 뿌려진 씨, 곧 복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흥부는 제비가 물어다 준 박 씨 하나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옛날에 박은 먹거리뿐 아니라 바가지 용도로도 쓰였기에 많이 심었고, 그래서 박의 씨는 우리에게 흔한 거였는데 그 흔한 박 씨를 물어다 준 것을 흥부가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면 복이 다 날아갔을 테지요. 그런데 더 눈여겨볼 것은 흥부가 박 씨를 소중히 여겼을 뿐 아니라 그 이전에 제비 한 마리를 소중히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새가 다리 부러진 것을 보고, 그까짓 새 죽든지 말든지 한 것이 아니라 미물일지라도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살려 준 것이며 제비가 물어다 준 씨도 소중히 여기고 잘 돌봐 주었기에 박이 달리고 박에서 복이 쏟아져 나오게 된 거지요.
그러므로 또한 중요한 것이 행복 의지입니다. 농부로 치면 열매를 수확해야겠다는 의지인데 씨로 주어진 복이 행복이라는 열매가 되기 위해서는 수확의 의지가 있어야 잘 돌보기 때문입니다. 저의 행복론은 ‘나는 무조건 행복하다. 행복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니까!’입니다. 조건에 좌우되지 않고 어떤 조건에서도 나는 행복하겠다는 의지로 저의 행복 농사를 짓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악조건에서도 씨앗인 복이 열매인 행복이 되게 하겠다는 겁니다. 흥부는 놀부보다 가난했으니 행복의 조건은 나빴지만 그는 없는 가운데서도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비해 놀부는 욕심 때문에 많이 가졌어도 그것으로 행복하지 못하고 늘 부족하였고 그래서 더 가지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리고 고쳐 준 다음 박 씨를 얻어 심었지만 행복의 대박이 아니라 쪽박을 차게 되었습니다. 작은 복을 큰 행복이 되도록 행복 농사 잘 짓는 한 해가 되시라고 모든 독자께 새해 축복 드립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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