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동부 가즈니주에서 27일(현지시간) 발생한 미국 공군기 사고가 진실게임 양상으로 비화하고 있다. 추락 원인을 놓고 ‘단순 사고’라는 미군과 “항공기를 격추했다”는 현지 무장세력 탈레반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중이다. 만의 하나 이번 추락이 탈레반 소행으로 밝혀질 경우 양측이 추진하는 평화협상은 물론, 미-이란 갈등으로 촉발된 중동정세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탈레반은 통제 지역인 데흐야크에서 미 공군 E-11A기를 격추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첩보 임무를 수행하던 미 항공기가 격추됐으며 탑승한 미군 고위 당국자도 사망했다”고 밝혔다. 반면 소니 레게트 아프간 주둔 미군 대변인은 “미군 당국자 사망은 없다”면서 적의 발포로 발생한 격추 사건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또 다른 항공기 사고가 있었다는 탈레반 측 주장도 틀렸다”고 부연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일단 미군 발표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영국 BBC방송은 전문가의 말을 빌려 “탈레반은 E-11A와 같은 고공 비행기를 격추하는 데 필요한 대공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격추설은 신빙성이 낮다고 봤다. 다수 전자장치를 탑재한 E-11A는 산악지형이 많아 통신활동이 쉽지 않은 아프간에서 ‘하늘의 와이파이’로 불리며 핵심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탈레반 소행이 사실로 굳어지면 사건 전개 국면은 전혀 달라지게 된다. 우선 양측이 아프간 미군 철수를 놓고 2018년 시작한 평화협상이 암초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 안그래도 지난해 9월 초안까지 나온 협상은 지난달 아프간 바그람 미 공군기지에서 탈레반의 폭탄테러가 돌출하면서 공식 대화가 중단된 상황이다. 이에 더해 현재 미국과 이란 사이에 형성된 중동지역 전선을 아프간으로 확장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다만 AP통신은 “격추만 아니라면 평화협상에 큰 걸림돌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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