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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일본의 ‘바보 정치인’

입력
2020.01.28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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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참의원 시절 야마모토 다로(왼쪽). 지난해 7월 21일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 국회 진출에 성공한 루게릭병 투병 환자인 후나고 야스히코와 야마모토가 함께 기뻐하고 있는 모습. AFPㆍ연합뉴스
2013년 10월 참의원 시절 야마모토 다로(왼쪽). 지난해 7월 21일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 국회 진출에 성공한 루게릭병 투병 환자인 후나고 야스히코와 야마모토가 함께 기뻐하고 있는 모습. AFPㆍ연합뉴스

한국은 더 이상 바닥에서부터 태동하는 정치인이 나오기 어려운 곳일까. 민주화운동 경력을 바탕으로 민심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대통령이 된 ‘양김(김영삼ㆍ김대중) 시대’도, 정치인으로선 전례가 없는 자발적 지지운동 바람을 일으켰던 ‘바보 노무현’의 신화도 시작은 모두 거리였다. 시나브로 시대는 달라졌다. 풍찬노숙(風餐露宿) 대신 꽃가마를, 무모한 도전 대신 확실한 포기로 실패할 기회마저 원천 차단하는 요즘의 거물 정치인들에게는 내 꿈을 맡길 생각이 들지 않는다.

□ 바다 건너 일본에는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진검 승부를 선택한 정치인이 있다. 심지어 낙선의고배를 마시고 칩거하는 게 아니라 더 자주 대중을 만난다. 신생 정당 ‘레이와신센구미(令和新選組)’를 만든 참의원 출신 야마모토 다로(46ㆍ山本太郎) 대표다. 그는 지난해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2인을 당선시켰다. 당선자들은 근위축성측색경화증(루게릭병) 환자와 중증장애인이었다. 비례대표 3번으로 출마했던 야마모토는 전국 최다 득표(99만여 표)를 하고도 낙선했다.

□ 그의 정치 무대는 원내가 아닌 거리가 됐다. 마이크를 들고 전국 곳곳을 누빈다. 연단에 세운 대형 모니터에는 사안별로 정리한 당의 입장이 담겨 있다. 집권하면 실행할 정책의 청사진이다. 언뜻 연설을 들어 보면, 아베 정권 ‘저격수’ 같지만, 그의 시선은 시민을 향해 있다. “이런 나라를 만든 것은 뭘까요. 정치. 이런 정치를 만든 건 누구? 나, 그리고 당신. 투표를 한 당신, 그리고 투표를 하지 않은 당신!” 정치 혐오와 무관심에 빠진 시민을 일깨우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호소한다. “당신을 위해 정치를 하게 해주세요. 살아서 잘됐다고 생각하는 사회를 만듭시다.”

□ 열여섯 살에 데뷔한 배우 출신인 그를 정치에 뛰어들게 한 건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정치가 자신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임을 깨달았던 거다. 한국에도 정부를 비판하며, 자신이 대안이라고 목청을 높이는 정치인이 여럿이다. 그러나 그들이 민심을 얻는 데 실패한 건 선거 전 깜짝 뚜벅이 유세, 쇼에 그치는 민생 탐방이나 할 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바다 건너 일본 정치인의 유세 장면에 한국 네티즌들이 남긴 “이런 인물이 우리 정치판에도 있어야 나라가 산다” “바보 노무현이 생각난다”는 댓글을 읽게 되면 이 나라 정치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김지은 논설위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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