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필의 제5원소] 제2의 국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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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필의 제5원소] 제2의 국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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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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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유사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 아닐까? “방역은 제2의 국방이다.” 지난 2000년 경기도 파주에서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이제는 방역이나 재난대비가 ‘일상적인 국방’이어야 하는 시대이다. 사진은 28일 경기 덕양구 명지병원에서 초기 의심환자를 위한 선별진료소를 추가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 모습. 홍인기 기자

검역 또는 격리를 뜻하는 영어 단어 ‘quarantine’의 어원은 40일을 뜻하는 이탈리아 어 ‘quaranta giorni’이다.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페스트)이 창궐했을 때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외지 사람들을 40일 동안 격리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때 흑사병으로 유럽 인구의 절반 가까이 희생되었다. 약 300년 뒤의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로마로 가던 도중 흑사병이 퍼져 토스카나와 교황령의 경계 부근 산골에 2주 정도 격리되기도 했었다. 그 다음 세대의 뉴턴은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니던 시절 흑사병이 창궐해 대학이 폐쇄되자 고향으로 내려가 1년 반을 보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뉴턴은 운동법칙과 중력, 미적분 등 자신의 가장 중요한 업적의 골격을 세웠다. 그해 1666년은 뉴턴 기적의 해라 불린다. 흑사병이 런던을 휩쓸고 마침 대화재가 다시 런던을 집어삼킨 해가 누군가에겐 기적의 해라니.

흑사병이 쥐 속의 세균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19세기였다. 감염된 쥐의 피를 빨아먹던 벼룩이 사람을 물면 전염된다. 세균이라는 미생물은 맨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현미경이 등장한 뒤인 17세기 중반에 처음 발견됐다. 세균보다 훨씬 더 작은 바이러스는 19세기말에서야 그 존재가 확인됐다. 세균은 스스로 생명현상을 유지하는 단세포로 이루어져 있으나 바이러스는 훨씬 더 간단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단독으로 생존하지 못하고 숙주 속에서만 활동한다. 세균과 바이러스가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은 19세기의 파스퇴르와 코흐 등의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이 과정에서 백신을 개발하고 면역의 원리를 터득하게 되었다.

이번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호흡기증후군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질병으로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에서 사용하는 공식 명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다. 코로나(corona)는 라틴어로 왕관을 뜻한다. 바이러스 표면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온 돌기 모양이 마치 왕관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아직 일부 언론에서 ‘우한 폐렴’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으나 질병 이름에 특정 지명을 사용할 경우 해당지역에 차별이나 뜻하지 않은 불이익을 야기할 수 있다. 지금도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의 언사가 일부에서 쏟아지고 있다. 심지어 우한에 거주하는 우리 국민을 위해 정부에서 전세기를 보낼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이를 반대하는 여론이 상당했다. 왜 그런 일에 세금을 쓰느냐,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대책 없이 데려오면 어떻게 하냐는 불만이 많았다.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는 유사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는 일이 아닐까? 지난 촛불혁명 때 사람들이 거리에서 “이게 나라냐”고 외쳤던 데에는 비선실세의 국정농단뿐만 아니라 세월호 침몰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전파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을 질책하는 목소리도 담겨 있었다. 전세기 파견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아마 정부의 대응 능력에 대한 불신이 컸을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의심증상자는 탑승할 수 없고 탑승자는 탑승료도 내야 하고 국내 입국 뒤엔 별도의 공간에서 14일 동안 격리하기로 했으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다만 우리는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인 만큼 이런 사태가 생겼을 때 가장 신속하고 가장 강력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때로는 다소 간의 외교 마찰을 감수하고서라도 말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에 가장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나라는 바로 우리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방역은 제2의 국방이다.” 지난 2000년 경기도 파주에서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김대중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방역조치와 기대 이상의 파격적인 피해 보상을 지시했다. 그 전통이 이후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2019년 아프리카 돼지열병 방역까지 이어져 세계적인 모범 사례로 인정받기도 했다. 이제는 방역이나 재난 대비가 ‘일상적인 국방’이어야 하는 시대이다. “이게 나라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등장했던 문재인 정부인만큼 이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두 달여 앞으로 다가 온 총선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반면 어떻게든 현 정부를 실패한 정부로 만들어 선거에서 이득을 보려는 정파가 있다면 신종 바이러스 창궐을 악용할 유혹에 빠질지도 모른다.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를 무차별적으로 확산시켜 공포심과 혼란을 극대화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부디 당부하건대 아무리 선거철이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방역문제만큼은 정파적인 이해를 떠나 대국적으로 대처해 주길 바란다. 무엇보다 정부에서 가장 정확한 정보를 가장 신속하게 전달해 국민의 신뢰와 협조를 잘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설 연휴도 반납하고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의료진과 공무원들의 헌신에 깊이 감사드린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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