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에 정답은 없지만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늘 계속 의문을 가지면서 하고 있어요.” –배우 이병헌
‘남산의 부장들’이 무서운 속도로 3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 알 법한 그때 그 시절의 이야기. 특별할 건 없지만 몰입도가 높다. 여기엔 배우들의 공이 무척 크다. 그야말로 캐스팅이 ‘신의 한 수’였던 셈이다.
영화의 내용에 대한 감상평은 다양하다. 당시 상황을 비교적 담백하게 담아냈지만 그럼에도 일각에선 정치색이 짙은 영화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인물의 어떤 부분에 집중해 보여주느냐는 감독의 몫이다. 대본을 읽고 선택한 배우들이 이 영화에서 보여준 연기력에는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남산의 부장들’은 ‘내부자들’ ‘마약왕’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의 신작이다. ‘내부자들’에서 “모히토 가서 몰디브 한 잔”이라는 대사를 유행시킨 주인공, 이병헌이 우 감독과 재회했다. 두 사람의 남다른 호흡은 이번 작품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이병헌은 대통령을 암살하는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을 연기했다. 실존인물과 이름은 다르지만, 그의 연기에서 오랜 시간 캐릭터를 연구한 흔적이 엿보인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갈등하는 인물의 내면을 강약을 조절한 연기로 보여줘 눈길을 끈다.
체중을 증량해 얄밉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나타난 이희준의 변신도 인상적이다. 그는 매체와 인터뷰에서 “강한 신념을 갖고 윽박지르는 모습이 많은데 뭔가 덩어리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체중을 늘린 이유를 털어놓기도 했다.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곽도원 역시 실망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그가 지닌 특유의 존재감은 단지 남다른 풍채 때문만은 아닐 게다.
뭐니뭐니해도 이번 작품에서 가장 크게 변신한 배우는 이성민이다. 이성민은 연기력에 비해 다소 평범한 외모를 장점으로 살려 수없이 많은 캐릭터를 소화해왔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선 시대적으로 존재감이 뚜렷한 실존인물을 그려야 했기에 부담이 컸을 터다. 그가 박통을 연기한다고 했을 때 고개를 갸우뚱한 이들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영화가 베일을 벗고 난 후, 많은 관객들은 이성민에게 감탄했다. 분명히 얼굴은 이성민인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귀 분장도 큰 역할을 했지만, 손동작이나 걸음걸이 등 작은 움직임에서도 특징을 잡아낸 점이 실로 놀랍다. 배우로서의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
이미 연기력으로 인정 받은 한 중견 배우와 사석에서 대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자신의 연기에 만족한 적이 거의 없다고 해 놀랐던 일이 있다. 그는 “본인이 한 연기에 만족하는 배우는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나 역시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고민할 것”이라면서 배우라는 직업이 허투루 완성되는 것이 아님을 설명했다.
이병헌 역시 과거 본지와 인터뷰에서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늘 계속 의문을 가지면서 하는 거 같다. 연기에 정답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의심을 계속 하면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민도 ‘믿고 본다’는 평에 대해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고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극의 요소 중에 관객이 있지 않나. 관객은 뗄 수 없는 필연적인 관계다. 관객들이 하는 말이나 평가는 어쩔 수 없는 거지만 칭찬은 나로선 민망하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그는 “(배우들끼리) 기싸움 그런 말을 싫어한다. 선의의 경쟁이 있었을 거고 동기부여가 나 스스로에게 됐을 거고, 지금까지 이 일을 하는 원동력이기도 할 거다. 하지만 연기를 라이벌 의식을 갖고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남산의 부장들’은 배우들의 선의의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느껴지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극중 인물들의 불꽃 튀는 긴장감이 이를 대변한다. 상대와의 호흡과 더불어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게 스스로와 싸우고 있는 배우들이다. 이토록 치열한 배우들이 만났으니 그 결과가 어찌 나쁠 수 있겠나.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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