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에 방역복 등 지급 못하고 의약품 없어 환자엔 소염제 투여
대중교통 올스톱ㆍ응급전화 먹통…“지금 우한은 지옥” 분노 목소리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환자들이 격리 수용돼있는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진인탄 병원에서 26일 한 의료진이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우한=EPA 연합뉴스

“마치 공포영화를 보는 것만 같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진원지인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이 의료체계까지 사실상 마비되면서 극도의 혼란에 휩싸였다. 도시 봉쇄 닷새째인 27일 시내의 한 병원을 찾은 남성은 AFP통신에 현지 병원 상황을 ‘공포영화’에 비유했다. 현재의 의료인력과 물품으로는 입원환자들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도 연일 새로 진찰을 받으려는 이들까지 물밀 듯 몰려들고 있어서다.

우한시내 병원들은 이미 밀려드는 환자를 도무지 감당할 길이 없는 ‘포화 상태’다. 감염이 걱정돼 병원을 찾았다는 30대 남성은 외신 인터뷰에서 “잠을 잔 지도 벌써 이틀이 지났다”면서 “(진단받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돌고 있다”고 말했다. 한 여성은 “진료를 받는 데에만 최소 5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하루 종일 병원에서 기다렸지만 ‘자리가 없다’는 통보에 결국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는 노인의 증언도 있었다.

현장에는 기초적인 의료용품도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후베이의 소리’를 비롯한 현지 매체에 따르면 셰허(協和)병원 등 우한 및 인근 후베이성의 대형병원 10여 곳은 의료용 마스크와 방역복 등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자 직접 ‘긴급 공고’까지 내면서 물품 기증을 호소하고 나섰다. 우한시정부와 보건당국의 의료물자 확보ㆍ배분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한시민들이 인터넷에 올린 영상들도 혼란스러운 현지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비판적 중화권 매체 ‘에포크 타임스’(大紀元時報)는 26일 “지금 우한은 지옥”이라며 분통을 터뜨리는 한 청년의 고발 영상을 공개했다. 이 청년은 “응급전화 120번은 불통인데다 대중교통은 멈춰섰고 주유소도 폐쇄돼 아픈 사람이 병원에 갈 수도 없다”면서 “의료진이 진단키트가 부족해 진찰도 못하는가 하면 입원환자에게 소염제나 호르몬제를 투여하는 게 전부”라고 주장했다. 그는 “도시 봉쇄 전날까지 마스크도 쓰지 않은 시민들이 많았다”면서 “시장과 당서기는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고 꼬집었다.

이 외에도 인터넷에는 앞다퉈 치료해달라고 울부짖는 환자들,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무기력하게 앉아있거나 분노한 의료진의 모습이 담긴 영상 등이 무수히 올라오고 있다. AFP는 “병원이 제 기능을 못해 시민들이 스스로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며 “약국에는 마스크와 장갑, 소독약을 비축하려는 이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고 병원 복도에서 대기하는 시민들은 온도계로 직접 체온을 확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혼돈과 마비 상황에 중국 정부와 우한시당국은 뒤늦게 긴급조치에 나섰다. 26일 중국 정부는 우한시에 신종 코로나 감염증 의심환자를 격리ㆍ치료하기 위한 1,000명 수용 규모의 임시병원을 6일 내에 짓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빠른 건설을 위해 병원은 ‘조립식 형태’로 건설된다. 중국은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ㆍ사스) 사태 때도 베이징 인근에 1,000명 규모의 병원을 일주일만에 건설한 바 있다. 또 25일에는 인민해방군 소속 의료전문가 450여명이 우한에 긴급 투입됐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는 이미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중국 보건당국에 따르면 27일 오후 8시 기준 중국ㆍ홍콩ㆍ마카오ㆍ대만 등 중화권에서 81명이 숨졌고, 확진자는 2,840명을 넘어섰다. 같은 날 국내에서 4명, 미국(현지시간 26일)에서도 5명으로 각각 확진자가 늘었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의 닐 퍼거슨 공중의료전문 교수가 가디언에 “현재 전 세계적으로 10만명 가량이 감염됐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등 중국 인접국을 넘어 미국ㆍ호주ㆍ유럽 등에서도 확진자가 생기면서 ‘팬데믹’(pandemicㆍ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에 대한 공포도 커지고 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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