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의 영웅’ 윤성빈에게 아이언맨 헬멧은 정체성 그 자체다. 2년 전 설날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스켈레톤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온 국민을 열광시킬 당시 윤성빈은 아이언맨 헬멧을 썼다.
머리를 앞쪽으로 하고 엎드린 채로 내려오는 스켈레톤 종목의 특성상 경기 장면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선수들이 쓴 헬멧이다. 많은 선수들이 이 헬멧에 다양한 그림이나 글씨를 그려 넣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곤 한다. 윤성빈은 당시의 압도적인 경기력과 헬멧의 모양 덕분에 ‘아이언맨’으로 불리고 있다.
#후원사 로고에 가려진 ‘아이언맨’
윤성빈은 올림픽 이후에도 아이언맨 헬멧을 쓰고 꾸준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올림픽과 달리 그의 상징인 ‘아이언맨’은 잘 보이지 않는다. 헬멧에 빼곡히 부착된 후원 업체들의 로고 때문이다. 2019-20 시즌 내내 윤성빈의 아이언맨 헬멧에는 이마부터 뒤통수 부분까지 3개사 6개의 스티커가 붙었다. 헬멧 제조사와 귀 부분 양 옆에 붙은 월드컵 공식 스폰서까지 합치면 헬멧에서 확인할 수 있는 후원사 로고는 모두 9개가 된다. 자신의 정체성이 가려지는 것이 다소 아쉬울 법도 하지만 윤성빈은 시상대에 오를 때마다 후원기업 로고가 잘 보이도록 헬멧을 드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한다.
윤성빈의 경기 장면에서 아이언맨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점이 아쉽지만 헬멧을 뒤덮은 기업체 로고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정부 지원이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여러 기업이 후원을 이어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평창 올림픽이 끝난 직후 대다수 경기장이 문을 닫는 등 사후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 동계 스포츠의 현실을 감안하면 그나마 다행이라고도 볼 수 있다.
#경기장 폐쇄에 줄어든 지원
윤성빈이 ‘퍼펙트 레이스’를 펼친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는 평창 동계올림픽 직후 잠정 폐쇄됐다. 총 공사비 1,141억을 들여 지은 아시아 유일의 썰매 전용 경기장이었지만 사후 활용 방안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올림픽 이후에도 꾸준히 훈련을 이어가야 할 썰매 종목 선수들을 막막하게 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올림픽 직후 썰매 대표팀 상비군이 해체되고 대한체육회의 동계종목 선수 육성 예산 지원마저 종료되면서 선수들의 미래는 어두워져 갔다.
#의지할 곳은 기업 후원 뿐
이처럼 암울한 상황에서도 몇몇 기업들은 후원을 이어갔다. 썰매 종목은 국내 훈련 장소가 마땅치 않아 전지훈련이 필수이고, 대회 역시 유럽이나 북미 등 해외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 정부 지원이 대폭 줄어든 현실에서 기업 후원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 보니 윤성빈의 상징 아이언맨 헬멧과 유니폼에 후원 기업의 로고가 붙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완벽했던 2년 전 설날의 레이스
2년 전 설날 윤성빈은 완벽했다. 스타트, 주행 모두 빈틈 없었다. 차수를 거듭할수록 다른 선수들과 기록을 벌리며 압도적인 기량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썰매 황제’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경기 직후 ‘아이언맨’의 큰절 또한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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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아이언맨의 질주
비록 아이언맨은 온전히 보이지 않지만 윤성빈은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2018-19 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주최 9개 대회에서 모두 시상대에 오르는 ‘올 포디엄’을 기록했고, 세계랭킹 2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2019-20 시즌에는 허리 부상에도 불구하고 월드컵 6차 대회 중 최근 4개 대회에서 금 1, 은 2, 동 1을 차지하며 25일 현재 세계랭킹 3위를 유지하고 있다.
김주영 기자 will@hankookilbo.com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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