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우한 폐렴)의 발병지인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 대한 봉쇄 조치에 나섰다. 인구 1,000만명인 거대 도시가 하루아침에 세상과 단절됐다.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초강경 조치다.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 현실이 됐다.
우한시 봉쇄 조치는 바이러스 창궐을 그린 영화들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들의 진ㆍ출입을 막기 위해 군대가 삼엄한 경비를 서고, 이를 뚫고 항공기 등을 이용해 도시를 탈출하려 안간힘 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극적이다.
바이러스 관련 영화들 중에 영국 영화 ‘28일 후’(2002)가 특히 떠오른다. 실험실에 있던 영장류가 퍼뜨린 일명 분노 바이러스로 인류가 28일 만에 절멸 위기에 처한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누워있던 주인공이 교통사고 28일 만에 깨어나 보니 세상은 폐허로 변해 있다. 런던 시내에는 시체들이 쌓여 있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폭도처럼 몰려 다닌다. 바이러스 피해를 입지 않은 청정지역을 찾아나서는 과정에서 군인의 검문을 받는 등 우한시의 현재와 포개지는 장면이 적지 않다.
바이러스는 현대사회의 이기를 매체로 세계로 확산된다. 지구촌 곳곳을 연결하는 항공망은 바이러스 확산에 있어 고속도로 역할을 한다.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 ’12 몽키즈’(1995)는 인류 교통 역사의 혁명 중 하나인 항공기가 바이러스 확산에 어떻게 치명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바이러스로 인류의 99%가 지상에서 사라진 미래에 과학자들이 바이러스 창궐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과거로 한 사내를 보내면서 벌어지는 일이 영화의 주 내용이다. 미래에서 온 주인공 제임스는 바이러스를 퍼뜨린 장본인을 사력을 다해 잡으려 하나 끝내 실패한다. 인류 종말론에 빠져든 범인은 항공기 조종사다. 영화는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항공기 노선을 통해 바이러스의 급속한 확산을 시각화한다.
한국 영화 ‘감기’(2013)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사회를 위협했을 때 발생하는 일들을 현실감 있게 그렸다. 제목과 달리 영화 속 바이러스는 무시무시하다. 1초당 3, 4명이 감염될 정도로 바이러스 확산 속도가 살인적이다. 치사율은 100%. 죽음의 바이러스가 수도권 한 도시에 퍼지자, 정부는 긴급 대응에 나선다. 중국 당국이 우한시를 폐쇄한 것처럼 도시 길목에 군대를 배치해 사람 왕래를 아예 끊어 놓는다.
도시 밖 국민의 안전을 위한다고 하지만, 감염되지 않은 도시 내 국민은 죽음의 도가니에 갇힌 꼴이다. 사람들은 자체 조직을 결성해 도시를 빠져나가려고 하고, 군은 무력으로 대응한다. 폭동 같은, 사람들의 봉기에 미국은 전투기를 동원해서라도 막으라고 한국 정부를 압박한다. ‘감염된 도시에 갇힌 사람들도 국민인데, 그들에게 국민 대우를 해줘야 하는가’ ‘그들의 인권과 시민권을 생각했다가 다른 국민의 생명까지 위협 받는 상황을 정부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등 난처한 질문을 던지며 영화는 바이러스의 공포를 전한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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