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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ㆍ셰어하우스… 결혼제도는 거부하지만 ‘가족’은 확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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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ㆍ셰어하우스… 결혼제도는 거부하지만 ‘가족’은 확산 중

입력
2020.01.2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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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너의 선택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지. 손자들을 보지 못해 마음이 아프지만, 앞으로는 네 가족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서울 도봉구에서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이모(83)씨가 지난해 추석 본가를 찾은 장남에게 전한 말이다. 이씨의 장남인 A(55)씨는 재산문제로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져 10년간 가족을 찾지 않다가 지난해 설부터 부모를 찾았다. A씨는 7년 전부터 아내와 아들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다. ‘졸혼’을 한 것이다. 이씨와 가족들은 A씨가 졸혼한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A씨는 “성격이 맞지 않아 허구한 날 부부싸움만 했다”며 “아들 때문에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혼자 사니 마음이 편해졌고 아내도 아들도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족은 ‘결혼제도’가 나은 결과물이다. 하지만 결혼은 이제 ‘반드시’가 아니라 ‘선택’이 됐다.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가족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제도를 기피하는 것이지 사랑을 기피하거나,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을 기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시대와 가치관이 급속도로 변했는데 가족제도는 과거에 머물러 있어 외면을 받는 것”이라며 “시대에 맞는 새로운 가족 개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북의 한 셰어하우스에서 남자 3명과 함께 살고 있는 박모(34)씨는 명절 때 집을 찾는다. 박씨는 5년 전 집에서 나와 셰어하우스에서 살고 있다. 부모와 갈등이 있어서 집을 나온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출ㆍ퇴근 시간을 아끼려고 직장과 가까운 곳에 있는 셰어하우스에 들어왔는데 살다 보니 적응이 됐다. 박씨는 “나이가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사니 편하다”며 “결혼하기 전까지 무조건 부모와 함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대에 따라 가족도 변화, 해체 아닌 확산 

전문가들은 ‘젊어서 결혼하지 않으면 노후에 외롭다’는 말이 2030세대에게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외로움은 피붙이가 아니라 친구와 이웃 같은 사회적 관계로 해결할 수 있다고 2030세대는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외롭지 않기 위해 결혼을 한다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 됐다.

부모와 자식이 한 지붕에서 살아야 하는 전통적 가치에서 보면 1인 가구, 비혼 인구 증가는 분명 가족의 해체이자 위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태가 가족의 해체나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가족형태가 우리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한국사회는 ‘각자도생’ 사회가 된 지 오래”라며 “기성세대들은 1인 가구, 비혼, 이혼, 졸혼 등을 가족해체로 바라보고 있지만 가족 해체가 아니라 가족이 확장된 것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요셉 신부(서울성모병원 영성부원장)는 “가족을 빙자한 집단주의 문화가 해체되고 있는 것”이라며 “가족 해체가 아니라 미국과 유럽처럼 새로운 가족형태가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가족의 범위는 축소되고 있지만 오히려 삶의 질은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고은영 우석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과거 가족개념은 외가, 본가 등을 포함했지만 이제는 부모형제 등으로 축소되고 있다”며 “그러나 역으로 가족여행 등 자신이 생각하는 ‘진짜’ 가족과의 관계는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 사회는 ‘우리’라는 연대가 강해 개인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해 가족 축소를 대신할 ‘우리’라는 공동체를 키워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신경인류학자)는 “선진 산업사회에서 부모들이 돌려받지 못할 투자를 자식에게 무한대로 하고 있는 것은 사회에서 고립과 소외감을 느끼기 때문”이라며 “기성세대들이 젊은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지만 젊은 세대들도 부모들이 조금 지겹고 괴로운 말을 해도 부모들이 자신들을 위해 한평생 노력한 것을 인정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부모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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