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대선 때마다 진보·보수 양측 러브콜 받아
‘카드’ 역할 끝나면 곧 사라져… 갈등ㆍ사퇴 되풀이
김종인 이사장이 2017년 3월 8일 더불어민주당 탈당 의사를 밝히고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을 나서고 있다. 오대근 기자

“지금이 제3의 정치 세력 출현에 가장 적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4ㆍ15 총선을 석 달 앞둔 15일, 3040세대 정치네트워크를 표방하며 등장한 ‘생활진보플랫폼 시대전환’의 정치토론회에 뜻밖의 인물이 등장했다. 지난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대표를 지낸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소 이사장이다. 김 이사장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작심발언을 쏟아내면서 “새로운 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해 21대 총선 역할론에 불을 지폈다.

김 이사장은 매 총선 때마다 등장하는 대표적인 정치권 인사다. 정치권을 떠나있다가도 선거철만 되면 진보ㆍ보수 양 진영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이번 총선에서도 자유한국당의 공천관리위원장 후보 중 한 명으로 물망에 올랐었다. 과거에도 비대위원, 행복추진위원장, 비대위 대표 등 각 정당에서 다양한 직책을 맡으았다. 어디서든 빠지지 않고 활약하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톰 행크스처럼 말이다.

◇보수ㆍ진보 모두 섭렵한 ‘구원투수’
새누리당 행복추진위원장을 맡았던 김종인(왼쪽) 이사장이 18대 대선을 열흘 앞둔 2012년 12월 9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 출발은 2004년 제17대 총선을 앞두고 그가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2번 후보에 이름을 올리면서부터다. 앞서 민주정의당(민정당), 민주자유당(민자당)에서 비례대표(전국구) 후보로 3선을 했던 그가 이번에는 범진보 진영으로 분류됐던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선 것. 비록 국회의원이 됐지만 당시에는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그는 2011년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의 부름을 받고 등장했다. 그는 2012년 제19대 총선을 앞둔 시점에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나섰다. 2011년 당시 집권 여당이던 한나라당은 하반기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시장 자리를 내주는 등 사실상 참패했다. 연쇄 책임 격으로 홍준표 대표최고위원이 물러나고 최고위원회 체제 대신 ‘선거의 여왕’ 박근혜 의원을 중심으로 비대위 체제를 가동했다. 이때 비대위원으로 선출된 인물이 김종인 이사장이다. 박근혜 비대위원장과 김종인 비대위원을 앞세운 당시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간판을 고쳐 달고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했다. 약세라는 예상을 뒤엎은 결과였다.

김 이사장은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같은 해 9월에는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를 도왔다.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에 설치된 국민행복추진위원회(행복추진위) 위원장으로 다시 등판했다. 국민행복추진위원회는 경제민주화, 복지, 일자리라는 박 후보 공약의 큰 틀 속에서 ‘5,000만 국민행복 플랜’을 마련하는 기구였다. 김 이사장은 1987년 개헌 당시 헌법 119조 경제민주화 조항을 입안했고, 당의 경제정책 기조를 경제성장에서 경제민주화로 전환하는 데 앞장선 것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또다시 중용됐다. 김 이사장이 ‘경제민주화’ 자체를 상징하는 만큼, 그가 중도층 표를 일부 흡수할 것이란 예상도 나왔다. 결국 이 예상은 적중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에 힘을 보탰다. 야당이던 민주당은 2015년 재보궐 선거 참패, 국민의당 분당, 호남 지지율 폭락 등을 겪으며 새누리당에 지지율이 크게 뒤졌다. 문재인 당시 대표의 리더십이 공격받자 문 대표는 중도보수 색채의 김 이사장을 삼고초려 끝에 비대위 대표로 모셔왔고, 전권을 줬다. 당시 국민의당 창당에 앞장섰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민주당의 김 이사장 영입을 두고 “정말 돌직구를 가진 구원투수를 모셔가서 당을 위기에서 구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선거 이겨 놓고 갈등 반복하다 여의도와 굿바이
김종인(오른쪽) 이사장이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시절인 2016년 1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제4차 중앙위원회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권한이양 절차를 마무리 후 자리로 향하고 있다. 이후 김 이사장은 민주당과 갈등을 겪으며 1년 2개월만에 탈당했다. 오대근 기자

그러나 뒷마무리까지 아름다웠던 건 아니다. 한나라당ㆍ새누리당 시절에도, 민주당 때도 당과 갈등을 겪으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한나라당 비대위 시절에는 친이명박계의 처리를 둘러싼 갈등이 깊어지면서 김 이사장이 비대위원 자리를 내려놓기에 이르렀다. 당시 당 내에서 ‘MB 정부 핵심실세 용퇴론’, ‘MB 탈당 문제’ 등이 논쟁거리로 떠올랐는데, 친이계는 비대위를 견제하고 나섰고 김 이사장은 인적쇄신을 주장했다. 공직후보자추천위원회가 이재오 의원 등 친이계 핵심 인사들을 공천하자 김 이사장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태도를 비판하며 위원직 사퇴를 밝혔다.

새누리당 행복추진위원장 때는 당과 여러 차례 갈등을 반복했다. 당의 경제 정책 기조와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관련 대선 공약 등을 두고 갈등을 빚으며 박 후보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두문불출하던 시기도 있었다. 한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 물망에 오른 적도 있지만, 끝내 부름을 받지 못했다.

민주당과의 마무리도 2% 아쉬웠다. 총선을 승리로 이끈 데다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의 비례대표로도 선출됐는데, 1년 2개월 만에 당과 결별했다. 그러한 탓에 비례대표직까지 잃었다.

평소 당내 경선 구도에 불만을 품었던 데다 개혁입법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의 경제민주화 의지에 실망감을 느낀 것이 탈당의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당내에서는 그가 앞선 총선 당시 스스로를 비례대표 후보 2번에 배치하며 ‘셀프 공천’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이로써 그는 사상 처음 비례대표로만 5선 국회의원에 오른 인물이 되기도 했다. 게다가 공천 과정에서 자신의 뜻을 너무 밀어붙인 탓에 불만들이 쌓여 있던 터였다. 또 탈당 당시 ‘문재인 대세론’이 견고하게 만들어진 상황에서 운신의 폭을 확보하는데 한계를 느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었다.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포레스트 검프' 재개봉 포스터. 팝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는 탈당과 동시에 이번에는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측과 손을 잡는 듯 했다. 지지 대상을 문재인에서 안철수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 후보는 낙선했고, 김종인 본인도 여의도를 다시 떠나야 했다.

선거를 앞두고 중도층 표심을 잡아야 하는 정당 입장에서는 ‘김종인 카드’는 매력적인 선택지일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이 4·15 총선에서도 김종인이 재등장 가능성을 제기한다.

최영일 정치평론가는 기자와 통화에서 “중도를 표방하는 주자들은 이미 현실정치에 와 있거나 정치권을 떠난 상황이라 부동층을 끌어올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다”며 “김 이사장이 어느 진영에서든 중도 성향의 유권자를 끌어오는 역할로 또 다시 부름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