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민호 감독 “‘남산’ 원작보며 갱스터 영화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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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호 감독 “‘남산’ 원작보며 갱스터 영화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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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4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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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산의 부장들'의 우민호 감독은 "10ㆍ26사태는 권력 1인자가 자신의 오른팔에 의해 시해된 세계적인 사건"이라며 "흥미를 안 가지는 게 더 이상하다"고 말했다. 쇼박스 제공

10ㆍ26 사태는 여전히 민감하다. 사태를 바라보는 입장이 정치적 성향을 바로 드러낸다. 소재로서 10ㆍ26 사태는 독이 든 성배다. 대중의 눈길을 잡기 쉽지만, 소모적인 논쟁에 휘말릴 수 있다. ‘남산의 부장들’은 영리한 방식으로 정치적 논란을 돌파하려 한다. 그때 그 사람들을 스크린에 불러내면서도 허구를 방패로 내세운다. 모두가 사실은 아니니 흥분하지 말라고, 그러나 역사가 주는 교훈은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우민호(49) 감독이 1990년대 한 일간지에 연재됐던 논픽션 동명 원작을 극장으로 이끌어 냈다. ‘남산의 부장들’이 개봉한 2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우 감독과 마주 앉았다. 그는 관객 915만명을 모은 ‘내부자들’(2015)로 대중에게 친숙하다. ‘남산의 부장들’은 개봉 첫날 25만명을 모으며 흥행몰이를 예고했다.

10ㆍ26사태가 발생한 1979년 우 감독은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큰일이 벌어졌고, 사람들이 굉장히 혼란스러워 했던 기억”만 어렴풋이 남아있다. 심복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저격으로 숨진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인상도 “대통령이지만 왕 같은 느낌” 정도만 있던 나이였다. 군을 제대하고 중앙대 영화과에 복학한 후 1996년쯤 ‘남산의 부장들’ 원작을 읽었다. “사진들이 많이 실려 있었는데 김종필 초대 중앙정보부장이 퇴임하는 사진이 너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김 전 부장이 롱코트를 입고 김용순 후임 부장과 서 있는 모습이 영화 ‘대부’를 떠올리게 했다. 중앙정보부가 공작정치를 했던 곳이라 갱스터 영화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원작은 박 정권과 운명을 같이했던 중앙정보부의 18년 비사를 다룬다. 극적인 내용이 많이 담겨 있지만 우 감독의 마음을 끌어당긴 건 역시나 10ㆍ26사태다. 우 감독은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 사건과 10ㆍ26사태 사이 간격이 20일 정도였던 점에 호기심이 당겼다”고 했다. 그는 “중앙정보부가 간여한 파리 실종 사건은 (박 대통령) 각하에 대한 충성에서 비롯된 것 일 텐데 충성이 2주 만에 총성으로 바뀐 이유가 뭘까 궁금했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10ㆍ26사태 발생 직전 40일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권력 암투 속의 인간 군상을 그려낸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유신 정권을 비판하며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 증언대에 선 일(실제로는 1976년 벌어졌다), 부마 민주항쟁, 10월 26일 벌어진 궁정동의 비극 등 역사를 묘사하면서도 주요 인물의 실명을 쓰지 않는다. 박 전 대통령은 박통(이성민),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김유평(이병헌), 차지철 전 대통령 경호실장은 곽상천(이희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박용각(곽도원) 등으로 등장한다. 우 감독은 “원작을 읽었을 때부터 사건에 치중하기보다 사건 속 인물들이 어떤 심리와 감정을 지니고 있을까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황과 상황은 추측할 수 있지만… (사실로 단정할 수 없으니) 이름을 바꾸고 허구를 더해 내면을 파고 들어가고 싶었다”는 것이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속 곽상천(왼쪽) 대통령 경호실장과 김규평 중앙정보부장은 대통령의 마음을 사기 위해 사사건건 충돌한다. 쇼박스 제공

이름은 달라도 실제 인물에 가깝게 묘사하려 했다. 박통 의상은 박 전 대통령 의복을 담당했던 이의 도움을 받아 만들었다. 이희준은 덩치가 큰 차지철을 연상시키려 체중 25㎏을 불렸다. 몸에 딱 달라붙는 정장에 트렌치코트를 입은 김규평의 패션도 사실에 가깝다. 우 감독은 “김규평의 경우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패션) 포인트를 잡아내려 했다”며 “(김재규는) 머리 한 올이라도 흐트러지는 걸 못 참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우 감독은 “(사실과 허구 사이) 줄타기 하듯 영화를 만들었다”며 “흥분하지도 들뜨지도 않고 냉정하게 바라보는 원작의 시선은 가져오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첩보물의 장르 특성을 많이 활용한다. 김형욱 실종 사건을 다룬 프랑스 장면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프랑스 영화, 영국 첩보 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차갑고 싸하고 멜랑콜리한 느낌을 담으려 노력했다. (프랑스 감독) 장 피에르 멜빌의 영화, 르 카레 소설을 많이 참고했다. 멜빌 영화와 르 카레 소설은 사건보다 사람들의 내면을 좇는다. 10ㆍ26사태 당시 인물들의 마음속을 파헤치고 싶었다.”

‘남산의 부장들’은 전작 ‘마약왕’에 이어 70년대를 배경으로 했다. ‘마약왕’은 70년대 한 밀수업자가 동아시아 마약 거물로 자리잡았다가 파멸하는 과정을 그렸다. 우 감독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제 인생에 70년대가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듯하다”고 했다. 그는 “격동의 시대였고, 밝음과 어둠이 또렷하게 공존하던 시절, 꿈과 희망이 있으면서도 굉장히 어두웠던 시절이라 영화적인 흥미를 유발하는 듯하다”고도 말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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