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신격호(가운데)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지난 2011년 고향인 울산 울주군 둔기리를 방문했던 모습. 롯데지주 제공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영면에 들어가면서 롯데그룹 직원들 사이에 새삼 고인의 업적이 회자되고 있다. 직원들조차도 잘 몰랐던 고인의 신념과 활동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롯데의 기업 이미지가 재조명 받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23일 롯데에 따르면 회사 차원의 공식 장례 절차는 지난 22일 영결식을 끝으로 모두 마무리됐다. 삼우제 등 나머지 절차들은 신동빈 롯데 회장을 비롯한 가족들이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명예회장의 원래 꿈은 유통이 아닌 정유와 제철사업이었다. 일본에서 사업하다 고국에 돌아온 뒤 정부에 정유사업을 제안했으나 기회를 얻지 못했고, 제철소 건설을 계획했지만 국가 주도로 하겠다는 정부의 결정으로 무산됐다. 이후 롯데호텔과 롯데쇼핑센터 건립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다. 황각규 롯데지주 부회장은 “호텔과 쇼핑센터를 지을 때까지 고인은 일본에 모은 돈의 2.5배를 한국에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신 명예회장은 울산과 부산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고향인 울산 울주군 둔기마을 일부 지역이 1969년 댐 건설로 수몰되자 고인은 고향을 지키고자 마을 주민 70여가구로 구성된 ‘둔기회’를 만들고 고향을 떠난 이들까지 초청해 해마다 잔치도 열었다. 건강 악화로 취소하기 전 2013년까지 마을 잔치는 43회 이어졌다.

부산은 고인이 1968년 롯데제과 거제동 출장소를 설립하면서 진출해 청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당시 자주 찾던 영도대교 복원 사업(2013년) 소식을 들은 신 명예회장은 1,100억원을 통 크게 내놓기도 했다. 북항에 부산오페라하우스가 지어질 때도 고인은 1,000억원을 쾌척했다.

지난 1985년 1월 고 신격호(오른쪽) 명예회장이 권투선수 장정구를 격려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롯데지주 제공
고 신격호(오른쪽)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1965년 일본에서 한국으로 입국하던 모습. 롯데지주 제공

신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사업하며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설움을 많이 겪었다고 전해진다. 이를 마음에 새긴 고인은 일본에서 활동하던 선수들을 적극 후원했다. 1978년 일본을 이긴 권투 선수 홍수환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당시 서울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인 100만엔을 주며 격려했고, 일본서 유학 중이던 조치훈 9단의 어린 시절 하숙비와 생활비를 지원했다.

롯데에는 늘 ‘일본 기업 아니냐’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고인의 이 같은 일화들이 알려지면서 이미지가 상당 부분 개선될 거라는 기대가 나온다. 롯데 관계자는 “회사 역사를 잘 몰랐던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과거 신 명예회장의 노력과 성과가 재조명 받고 있다”고 전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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