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여름'을 원작으로 한 영화 '캐머런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의 한 장면.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잘 모르겠다.” 어머니의 장례식 때 시신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고,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뫼르소는 이 문장으로 문학사에서 가장 강렬한 불효자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다.

에밀리 M. 댄포스의 장편소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의 첫 문장은 또 다른 강렬한 불효자 주인공 캐머런 포스트의 탄생을 알린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날 오후 나는 아이린 클로슨과 함께 상점을 털고 있었다.” 이뿐만 아니다. 부모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경찰관으로부터 전해 듣는 순간, 정작 캐머런이 맨 처음 머릿속에 떠올린 생각은 이것이다. “아이린과 나 사이의 일을 들킨 것이 아니구나.” ‘아이린과 나 사이의 일’이란, 캐머런이 열두 살이던 때 소꿉친구 아이린과 키스한 일을 말한다. 아이린과 나는 동성 친구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은 1989년 사고로 부모를 잃은 소녀 캐머런 포스트가 동성애자인 자신에 대한 혐오를 극복하고 진정한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다. 성적지향에 대한 고민과 첫사랑의 열병을 치르며 어른이 돼가는 캐머런의 성장통은 많은 미국 독자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2018년에는 클레이 모레츠 주연의 영화 ‘캐머런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으로 만들어져 미국 선댄스영화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물론 미성년자 성관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실제 동성애 전환치료를 시행했던 기독교단체들을 날카롭게 비판했다는 이유로 미국 내 일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금서 취급을 받았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을 원작으로 한 영화 '캐머런 포스트의 잘못된 교육'의 한 장면.

끝내 슬픔을 느끼지 않았던 뫼르소와 달리, 부모를 마지막으로 본 뒤에 했던 일이 아이린과 나눈 키스라는 생각은 캐머런에게 죄책감으로 작용한다. 이 죄책감은 여자를 좋아하는 자신에 대한 혐오감으로 돌아온다. 첫사랑의 열병을 앓게 했던 아이린이 기숙학교로 떠나간 뒤 캐머런은 수영 훈련에서 알게 된 린지, 고등학생이 돼 친해진 콜리 등을 만나며 자신의 성적지향을 점차 확고하게 형성해 나간다. 캐머런보다 레즈비언 문화에 더욱 열려 있던 린지는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정치적이고 혁명적이며 대항문화적인 것”이라고 가르쳐 준 상대였다. 린지 역시 여름방학이 끝나고 떠나지만, 캐머런은 고등학교에서 만난 콜리에게 강렬하게 빠져든다.

그러나 콜리에 대한 사랑은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격렬한 키스를 나눈 뒤에 털어놓은 “사랑한다”는 캐머런의 고백에 콜리는 “이건 잘못된 거야”라고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을 부정한다. 콜리와의 관계를 알게 된 캐머런의 가족들은 “역겹기 짝이 없다”는 말과 함께 캐머런을 동성애 전환치료 시설인 ‘하나님의 약속 기독 사도 프로그램’에 보낸다. 성정체성을 끊임없이 부정하도록 만드는 그곳에서 캐머런은 또 다른 입소생들의 다양한 상처와 욕망을 목격하고 관찰하며 어른으로 성장해 나간다. 그곳에서 캐머런이 깨달은 하나의 진실은, 성경에서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이 여자를 사랑하는 자신이 실존한다는 것이다. 본연의 모습을 부정하고 혐오하는 방식으로는 결코 진정한 의미의 성장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소설은 보여준다.

 사라지지 않는 여름(전2권) 
 에밀리 M. 댄포스 지음ㆍ송섬별 옮김 
 다산책방 발행ㆍ348쪽ㆍ1만4,500원 

최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네덜란드 커피 브랜드 ‘도위 에그버트’의 벨기에 TV광고는 동성 애인과 집 거실에서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고 있는 십대 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아빠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자 이들은 황급히 계단을 통해 2층 방으로 자리를 옮기고, 방으로 들어가기 전 딸과 아빠 사이의 냉랭한 눈빛 교환에서 우리는 성적지향이 다른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을 떠올린다. 그러나 다음 장면에서 이러한 짐작은 반전된다. 아빠는 딸에게 커피 세 잔이 그려진 이모티콘을 보내고, 딸과 그의 동성 애인과 함께 커피를 나눠 마신다. 셋 사이에는 어떤 부정도 미움도 없다. 훈훈한 커피의 온기만 있을 뿐이다. 광고처럼 커피 두 잔을 타줄 수 있는 부모가 있다면 아이들은 스스로를 혐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 혐오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필요하지 않으니까.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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