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重讀古典] 거역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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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重讀古典] 거역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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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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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말로 다투는 아들이 있는 아버지는 무례해지는 일이 없고, 꾸짖는 친구가 있는 선비는 불의를 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맹자와 순자는 공자의 뒤를 이은 유가의 대사(大師)다. 흔히들 성선설과 성악설의 주창자로 알고 있지만, 모두 공자 사상에 뿌리를 두었기에 큰 맥락에서 보면 그 차이는 미미하다. ‘순자’ 자도(子道)편에 이런 내용이 있다.

노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물었다. “자식이 부모의 명을 따르는 게 효도이고, 신하가 임금의 명을 따르는 게 바름이지요?” 애공이 세 번 같은 말을 물었지만 공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공자가 궐에서 나와 자공에게 말했다.

“자식이 부모의 명을 따르는 게 효도이고, 신하가 임금의 명을 따르는 게 바름이냐고 임금이 세 번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자공이 대답했다. “자식이 부모를 따르는 게 효도이고 신하가 왕명을 따르는 게 바름입니다. 그러니 선생님께서 달리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소인배구나. 큰 나라의 군주에게 간쟁하는 신하가 네 명만 있으면 침략당해 영토를 뺏기는 일이 없고, 중간 규모의 나라에 간쟁하는 신하가 세 명만 있으면 사직이 위태롭지 않고, 작은 나라에 간쟁하는 신하가 두 명만 있어도 조상의 사당이 훼손되는 일이 없다고 한다. 또 이런 말도 있다. 바른말로 다투는 아들이 있는 아버지는 무례해지는 일이 없고, 꾸짖는 친구가 있는 선비는 불의를 행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자식이 부모를 무조건 따르는 것이 어찌 효도이고, 신하가 왕명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어찌 바름이겠느냐. 그 명령을 따를 이유를 자세히 살피는 것이 효도와 바름이다.”

순자는 부모의 명을 따르지 말아야 할 경우도 구체적으로 밝혔다.

“명을 따르면 부모가 위험하고 따르지 않아야 부모가 편안한 경우가 있다. 이때 효자는 부모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 명을 따르면 부모가 욕을 당하고 따르지 않으면 부모가 영예로운 경우가 있다. 이때 효자는 부모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 명을 따르면 금수가 되고 따르지 않으면 예의에 맞는 경우가 있다. 이때 효자는 부모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 따를 만한데 따르지 않는 것이 불자(不子ㆍ자식의 도리가 아님)이고, 따르지 말아야 하는데도 따르는 것은 불충(不忠)이다. 옛 기록에 ‘도를 따를 뿐 임금을 따르지 않고(從道不從君), 의를 따를 뿐 부모를 따르지 않는다(從義不從父)’라고 했는데 바로 이를 말한 것이다.”

위 같은 내용 때문에 성리학자 가운데 순자를 비난하는 사람이 많았다. 의외인 것은 조선 사대부들이 순자보다 더 급진적인 맹자를 추종했다는 점이다. 조선조 내내 주자가 편찬한 ‘사서집주’가 나라의 교과서였고 그 안에 맹자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맹자의 혁명에 대해서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 임금을 갈아 치우는 반정(反正)마다 그 명분을 맹자에게서 끌어왔다. 맹자는 더 노골적으로 임금을 치받는다.

“임금이 신하를 자신의 수족처럼 여기면 신하는 임금을 배나 심장처럼 여길 것이고, 임금이 신하를 개나 말처럼 대하면 신하는 임금을 길가는 사람처럼 여길 것이며, 임금이 신하를 진흙이나 지푸라기처럼 보면 신하는 임금을 원수처럼 대할 것입니다(君之視臣如手足則臣視君如腹心. 君之視臣如犬馬則臣視君如國人. 君之視臣如土芥則臣視君如寇讐)” “천하에서 가장 귀한 것은 백성이고, 나라가 그 다음이고, 임금이 가장 가벼운 존재이다(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임금에게 큰 허물이 있으면 간하고, 반복하여도 듣지 않으면 임금을 갈아 치워야 합니다(君有大過則諫, 反覆之而不聽則易位)”

이상에서 인용한 맹자나 순자의 주장들은 공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논어’에 이런 구절이 있다.

임금이 물었다. “한마디 말로 나라를 잃어 버릴 수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공자가 답했다.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사람들 말이 ‘내가 임금 자리에 있으면서 다른 즐거움은 없지만, 내가 말을 하기만 하면, 모두 네, 네 하면서 아무도 어기지 못하니, 이것이 임금 노릇하는 즐거움이다’라고 합니다. 만일 임금의 말이 옳아서 사람들이 따르는 것이라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만일 임금이 옳지 않은 말을 하는데도 사람들이 거역하지 않는다면 그 한마디 때문에 나라를 잃어버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예스맨만 곁에 두고 싶은 인지상정이야 충분히 이해되지만, 임금이 그러다간 나라가 결단난다는 경고다.

1370년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신하가 할 수 없는 말을 했다(非臣子所宣言)”면서, ‘맹자’에서 마음에 안 드는 구절을 뺀, ‘맹자절문(孟子節文)’이라는 새로운 책을 만든 적이 있다. 과거시험도 거기에서만 출제했다. 이어서 맹자 신위를 문묘(文廟)에서 쫓아냈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될 일이 있고, 안될 일이 있는 법이다. 황제의 조치는 얼마 안가 유명무실해졌고, ‘맹자절문’은 이제 중국에서 사라져 도서관에 낙질만 남은 희귀본이 되었다. 아무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력이 학문에 손을 대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역사는 황제의 망동과 그에 동참한 어용학자들을 기록해 놓았다.

박성진 서울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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