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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이름이 그리워… 작은 온정에도 연신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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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이름이 그리워… 작은 온정에도 연신 “감사”

입력
2020.01.23 16:52
수정
2020.01.23 19:4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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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이 쓸쓸한 이웃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 복지사가 쓸쓸히 명절을 맞는 이들에게 선물을 전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성동구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 복지사가 쓸쓸히 명절을 맞는 이들에게 선물을 전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성동구 행당동의 한 임대아파트.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 박희은 복지사는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현관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시각 장애인이라 청각이 예민하시거든요.”

이 작은 한 마디를 집안에 있던 황현철(53)씨는 알아들은 것 같다. 벌컥 문을 열더니 활짝 핀 얼굴로 “어서 들어오라”며 맞았다. 박 복지사는 양손에 들고 온 도시락과 명절 선물을 전했다.

황씨는 스물다섯 살 무렵부터 망막색소변성증(RP)이라는 희귀병으로 점차 시력을 잃었다. 10여년 전 필리핀인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소중한 아들도 얻었지만 장애로 일을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명절에 찾아갈 고향이나 찾아올 친척도 없다. 그는 “부모님은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시력을 잃은 후엔 형제와도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명절에는 복지사 선생님 목소리가 더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가족이나 친척과 온정을 나누기에도 모자란 설 연휴이지만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니다. 웃고 즐기는 이들의 뒤쪽에는 평소보다 더 쓸쓸한 명절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 및 서울 성북구 석관동주민센터 관계자들과 함께 찾아간 그들은 ‘가족’이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을 쏟았다.

지난 22일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 복지사가 장애인 독거노인에게 설 연휴 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지난 22일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 복지사가 장애인 독거노인에게 설 연휴 물품을 전달하고 있다.

뇌병변장애를 앓고 있는 전현무(72)씨도 그랬다. 20년 전 아내와 사별한 전씨는 2010년 중풍으로 쓰러지면서 장애가 생겼다.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면서 평생 해왔던 건설현장 노동도 불가능해졌다. 두 달 뒤면 재개발이 시작되는 월세 15만원짜리 반지하 단칸방이 그에게 주어진 마지막 공간이다.

오랜만에 찾아간 박 복지사가 “명절에 가족들을 만나느냐”고 묻자 전씨의 눈시울은 금세 붉어졌다. 그는 “아들과 딸이 있지만 찾아오지는 않는다”고 했다. 더 묻지 않고 전달한 작은 설 선물에 전씨는 눈물샘을 터뜨리며 감동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방에서 나올 때까지 그는 거듭 감사 인사를 했다.

22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석관동주민센터 복지시가 다문화가정에 설 연휴 물품을 전달하고 외국인 주민과 대화를 하고 있다. 김영훈 기자
22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석관동주민센터 복지시가 다문화가정에 설 연휴 물품을 전달하고 외국인 주민과 대화를 하고 있다. 김영훈 기자

고향에 가지 못하는 외국인들에게 명절은 낯설면서도 쓸쓸하다. 성북구 석관동에 사는 우발 마린브이(54)씨는 더욱 그렇다. 그는 24년 전 필리핀에서 한국에 온 이후 단 한 번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따뜻한 가족을 가져보지도 못했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두 딸을 낳았지만 남편의 폭력에 아이들을 놔두고 도망치듯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후 성북구청의 도움으로 복지관에서 일을 도우며 매달 30만원을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부치고 있다.

더운 나라에서 자라 유독 겨울을 힘들어하는 마린브이씨를 위해 석관동주민센터 직원들은 특별한 설 선물을 준비했다. 전기매트와 라면 한 상자다. 마린브이씨 “한국에 있는 두 딸에게도, 필리핀에 있는 가족에게도 갈 수 없는 처지이지만 이렇게 찾아와 도움을 주니 지쳤던 마음이 확 풀리는 것 같다”고 했다.

글ㆍ사진=김영훈 기자 hu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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