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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모두가 울산의 시간이다

입력
2020.01.24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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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울산은 공업 도시였고, 신생도시였다. 하지만 그곳엔 100년 전에도, 7,000년 전에도, 1억년 전에도 누군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흔적을 남겨 놓았다. 그 모두가 울산의 시간이었다 사진은 울산 울주군 언양읍 태화강의 반구대암각화. 왕태석 선임기자
나에게 울산은 공업 도시였고, 신생도시였다. 하지만 그곳엔 100년 전에도, 7,000년 전에도, 1억년 전에도 누군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흔적을 남겨 놓았다. 그 모두가 울산의 시간이었다 사진은 울산 울주군 언양읍 태화강의 반구대암각화. 왕태석 선임기자

통영버스터미널에 내리니 고층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니 맥드라이브가 있었고, 몇 걸음 걸으니 이마트가 있었다. 이곳은 나에게 통영이 아니었다.

그동안 난 통영에 올 때면 승용차를 몰고 강구안 어딘가에 주차를 하고, 인근을 둘러본 후 다시 차에 올랐다. 나에게 통영은 시내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온 바다, 어항, 그곳에 정박한 어선, 항구 옆으로 즐비한 식당과 카페, 꿀빵 가게, 언덕 위 벽화마을이었다.

통영버스터미널에 내렸던 2년 전, 통영에 온 목적은 문을 닫은 조선소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통영에 조선소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하지만 통영은 조선소의 도시였다. 어떤 이는 조선소와 관련된 식당이나 숙박업소 등과 같은 연관 업종까지 더하면 통영 경제의 절반은 조선업의 영향 아래 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버스터미널 앞의 27층짜리 아파트를 채우려면 공장이 필요해 보였다. 그동안 수차례 통영에 왔었으면서 통영의 절반을 책임지는 조선소의 존재를 그제야 알았다니, 난 그 도시에 대해 도대체 뭘 알고 있던 걸까?

지난주 난 울산에 갔었다. 나에게 울산은 ‘공장’이었다. 거대한 공장이 모여 만들어 낸 도시. 학창시절 수업시간에도 울산은 공업 도시라고 배우지 않았던가.

울산대교 전망대에 올랐다. 하얀 연기를 내뿜는 석유화학공장, 파란색 지붕의 자동차 공장, 거대한 조선소 안에 자전거를 탄 노동자의 행렬, 수많은 공장을 세계와 연결해 주는 항구, 항구를 겹겹이 싸고 있는 방파제, 그 너머 입항을 기다리는 선박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울산의 심장이다. 이곳이 없었다면 지금의 울산은 없다. 태화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자리 잡은 공장들은 1960년대 이후 50년의 울산, 공업 도시 울산을 만들어 낸 결정적인 장소다. 울산의 진면목을 봤다고 생각했지만, 통영에서 교훈을 얻은 난 울산의 다른 모습도 보고 싶었다.

태화강을 완전히 벗어나 바다로 접어들면 100년 전 울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방어진이 있다. 일제강점기 작은 어촌 마을이었던 방어진에 일본 어부들이 정착했다. 그들은 30여년 동안 조선인 어부들과 함께 살았고, 방어진은 울산의 중심 시가지와 비슷한 규모로 성장했다. 해방 후 일본 어부들은 떠나갔고, 그들과 조선인 어부들이 함께 살던 흔적이 방어진에 남았다. 이번 여행에서 전해 들은 방어진 사람들의 일본 어부들에 대한 감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수탈과 억압의 시대였지만, 미시적인 경험은 다양하다. 그렇게 남겨진 100년 전 울산을 두고 방어진 사람들은 새로운 시도를 준비하고 있었다.

태화강 하류의 넓은 땅은 원래 바다였다. 그곳에 오랫동안 토사가 쌓여 땅이 됐고, 뻘로 남아 있던 곳은 근대 이후 매립되어 시가지와 공장, 항구가 됐다. 옛 지형을 상상해 울산 내륙 깊은 곳까지 바다를 그려본다. 그곳에서 조금만 더 태화강 상류로 올라가면 7,000년 전 울산에 살던 사람들이 남긴 흔적, 반구대암각화를 볼 수 있다. 인류가 남긴 암각화 중 고래사냥 장면이 담긴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 반구대암각화다. 지금의 장생포가 자연스럽게 떠올라 더욱 반가웠다.

반구대암각화 인근에는 천전리 각석이 있다. 그 돌에 청동기와 신라 시대를 살았던 울산 시민들이 흔적을 남겨 놓았다. 그리고 오래전 사람들이 남겨 놓은 암각화와 각석을 보러 가는 길에는 1억년 전 울산에 살던 공룡이 발자국을 남겨 놓았다.

이렇게 울산을 둘러보고 나니 울산이 다르게 보였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울산은 공업 도시였고, 신생도시였다. 하지만 그곳엔 100년 전에도, 7,000년 전에도, 1억년 전에도 누군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흔적을 남겨 놓았다. 그 모두가 울산의 시간이었다. 시간의 층위가 쌓여 남겨진 도시는 얼마나 멋진가.

최성용 도시생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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