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자료 찾는 재미 갖도록 페이스북에 12가지 릴레이 퀴즈 내
원하는 학생들이 서점, 도서관, 선배 직장 등 발로 뛰며 답 찾아
허병두 국어 교사가 낸 퀴즈. 왼쪽의 사진을 보고 책 이름을 맞춰야 한다. 허병두 교사 제공

여기 한 선생님이 있다. 이 선생님이 내는 ‘방학 숙제’는 특별하다. 세로로 쓰인 문장이 가득한 책의 페이지가 그의 페이스북 게시글로 올라온다. 손때가 묻은 책은 필자와 편집자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 한 페이지를 보고 책의 이름, 출판사, 책의 표지까지 찾는 것이 바로 숙제다. 이렇게 귀찮은 것을 누가 할까 싶지만,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 책 표지 사진을 찍어 댓글에 올린다. 금세 선생님의 페북 게시물에는 누가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놓고 학생들과 선생님의 논의의 장이 펼쳐진다. 졸업생들까지 찾아와 ‘저도 참여하고 싶다’며 댓글을 단다.

퀴즈 숙제를 내는 이는 숭문고 허병두 국어 교사다. 그는 방학숙제를 따로 내주는 대신 페이스북에 주기적으로 퀴즈를 올린다. 원하는 학생만 참여하고, 1등을 하면 1만원짜리 문화상품권이 상품으로 주어진다. 특이한 건 학생 누구도 왜 이런 걸 하느냐고 되묻지 않는다. 그는 “틀에 박힌 숙제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참여 여부 자체를 선택할 수 있는 숙제를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숙제라고 하면 도리질부터 치는 학생들이지만 허 교사가 내주는 방학 숙제는 예외다.

◇“자료 검색조차도 남에게 기대는 학생들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 결심
허병두 교사가 처음으로 낸 성탄절 퀴즈. 29회 선배는 허 교사와 허 교사의 졸업 동기들이다. 허병두 교사 제공

올해로 34년째 숭문고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허 교사는 지난해 12월 25일 퀴즈를 올리기 시작했다. 퀴즈는 모두 책과 관련 있다. 책의 한 페이지를 찍어 올려 이름을 묻기도 하고, 도서관에 정렬된 책 중 한 권을 뽑아 두고 학생들에게 사라진 책을 찾도록 한다. 최근에는 숭문고 인근에서 어르신들이 공부하는 문해학교(서울 양원중고교)에서 활용하는 한자 읽기 시험 특급 대비집을 올려 한문의 독음을 맞추라고 했다. 이렇게 하나 둘씩 올린 퀴즈가 벌써 12개다. 조금만 검색하면 답이 쉽게 나오지만 상관없다. 그것이 바로 허 교사가 특별한 방학 숙제를 낸 이유이기 때문이다.

허 교사는 지난해 학생들에게 공유경제를 주제로 한 자료 글을 찾아오는 수행평가를 냈다. 학생들이 가져온 글 중 반별로 한 편을 대표로 뽑아 다음 시험 문제를 낼 때 지문으로 활용하기로 미리 공언했다. 그는 내심 학생들이 글을 찾아보고 마음에 드는 글을 선택하길 바랐다. 하지만 한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참고자료라며 공유경제와 관련한 글을 추린 모음 자료집을 인터넷에 올려버렸다. 그는 “아이들이 검색하는 것까지 자꾸 어른들이 나서서 해주려는 ‘오바’는 없었으면 좋겠다”며 “아이들이 검색해 직접 원하는 것을 찾는 연습을 해보게 하기 위해 퀴즈 방학 숙제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에서 벗어나 다양한 곳에서 학생들이 답을 찾도록 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답을 찾을 수 있는 퀴즈부터 직접 서점과 도서관 음식점 등을 발 품을 팔고 다녀야 답을 알 수 있는 미션을 제시한 것이다. 직접 책을 봐야만 알 수 있도록 특정 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을 묻기도 했다.

한 학생은 정답을 맞추기 위해 지하철 타고 서점 가서 책을 찾고, 그 자리에서 책을 읽으며 직접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청년 창업의 현장을 굳세게 지키고 있는 졸업생의 기수를 맞추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선배들에게 직접 전화도 하고, 찾아가 보기도 했다. 허 교사는 “학생들이 더 넓은 장소를 탐험할 수 있어야 한다”머 “학교가 갇힌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이 되길 바랐다”고 밝혔다.

허병두 교사가 낸 5번째 퀴즈. 허병두 교사 제공
◇학생들 부담 덜고 소통 좀 더 잘 되게 페이스북 활용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특별한 방학 숙제를 올리는 허병두 숭문고 국어 교사. 정해주 인턴기자

그가 방학 숙제를 올리는 곳으로 페이스북을 선택한 것은 학생들과 소통을 더 쉽게 하기 위해서다. 대다수 학생이 페이스북을 자주 이용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기 때문이다. 허 교사가 내는 퀴즈에 자주 참여했다는 유상현군은 “페이스북을 자주 보는데 선생님과 친구라서 퀴즈가 계속 올라온다”며 “답을 찾으며 선생님과 메시지도 하고, 더 많이 대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퀴즈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미세먼지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적어두기도 한다.

허 교사는 평소에도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해왔다. 특히 그는 책을 이용해 학생과 생각을 주고받는 방법을 좋아했다. 자신의 생각이 가득 적힌 책을 학생들에게 빌려주고, 그 책을 읽는 학생은 허 교사가 끄적인 생각, 일기 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맺어지는 관계를 “학생과의 동맹”이라고 표현했다. 책을 읽은 학생이 다시 자신의 생각을 책에 써서 적어두며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학생으로부터 배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책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런 방법을 통해 학생들이 책뿐만 아니라 선생님(의 생각)을 같이 읽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어르신, 유학생과 공부하며 스스로를 알아가는 기회 제공

그는 학생과 교사를 넘어 지역사회와의 소통도 강조했다. 학교에서 이론으로 배우는 것만큼 지역 사람들을 만나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퀴즈로 학생들을 지역 곳곳에 돌아다니게 하는 것은 물론 학생들과 함께 봉사 활동을 계획하고 실천하고 있었다. 2010년부터 숭문고가 추진해 오면 관련 자료들도 모두 나눠주는 ‘숭문따봉(따뜻한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해 전국 초중고대, 교육청과 교육정보원 등 공교육 기관 360여 군데에서 자료를 요청해 와 2.2기바이트(GB) 분량의 봉사 활동 자료를 보냈다.

문해 학교에 다니는 어르신들에게 국어, 수학 등의 과목을 학생들이 직접 가르쳐주고, 서강대 어학당의 외국인들에게 국어를 가르쳐주는 등 다양한 봉사 활동을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는 “학생들이 봉사하며 그분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더 잘해보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렇게 서로를 돕고 공감하는 경험들이 학교와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것 같다”며 “이런 활동들이 학생이 하고 싶은 것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직접 찾고, 경험하면서 자신의 재능이나 존재를 탐구할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은 내 삶의 동반자”라며 “선생님과 학생이라는 지위에 상관없이 끊임없이 소통하고 배우고 싶다”는 목표를 밝혔다.

정해주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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