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차례상 대신 브런치' 모임 운영자를 모집하는 글의 한 대목. 출처 이서현씨 블로그

‘민족대명절’이 모두에게 마냥 좋기만 할까. 명절 잔소리, 불평등한 명절 노동 등으로 오히려 누군가에겐 새로운 스트레스가 쌓이는 기간이기도 하다. 성인남녀 10명 중 6명이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최근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성인남녀 3,50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58.3%가 ‘설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 기혼여성(70.9%), 미혼여성(59%), 기혼남성(53.6%), 미혼남성(52.4%) 순으로 명절 스트레스를 받았다.

한편에서는 이런 명절을 과감히 거부하는 움직임도 있다. 의무감으로 모여 스트레스를 받을 바에야 가족 모임자리에 가지 않고 명절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팟캐스트 방송 ‘서늘한 마음썰’의 진행자이자 작가인 심리상담센터 에브리마인드의 이서현(32) 대표는 2018년부터 추석과 설날 당일을 가족들과 보내는 대신 서울에서 점심 시간에 브런치 모임을 열어 처음 만난 여성들과 함께 지냈다. 이 대표는 “명절의 가부장적인 분위기는 싫지만 혼자인 것도 싫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며느리나 딸이 아닌 ‘나’의 모습으로 내가 원하는 명절을 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명절 브런치 모임은 ‘결혼 여부 상관없이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참여 신청을 받는다. 카페나 식당 등에서 10여명 내외의 참석자들과 △지난 명절이 나와 어떤 면에서 맞지 않았는지 △가부장제를 거부하는 작지만 구체적인 행동은 무엇이 있는지 △다음 명절에는 무엇을 할 계획인지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동안 20대부터 50대까지 미혼과 기혼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직업군의 여성들 60여명이 참여했다.

모임은 이번 설부터 전국으로 확대됐다. 신청자는 넘치지만 장소 제약 등으로 늘 ‘선착순 마감’을 해야 했던 이 대표는 ‘각자의 동네에서 명절 모임을 만들어보자’며 명절 모임 호스트(운영자)를 모집했다. 그 결과 서울과 인천, 위례, 남양주, 대전, 전북, 경북 등 총 7개 도시에서 8개의 모임이 열리게 됐다.

오는 25일 설날 점심 시간에 전국 7개 도시에서 열리는 8개의 모임. 출처 이서현씨 블로그

전북 완주에서 예술치료사로 일하는 희(가명ㆍ31)씨는 이 대표의 팟캐스트 방송에서 명절 브런치 모임을 처음 접했다. 그는 ‘명절에 본가든, 시댁이든 아예 안 가는 방법도 있구나’를 깨닫고 ‘서울이 아닌 곳에서도 비슷한 모임이 열리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번 전북 모임의 호스트로 나섰다. 그는 “본가가 전형적인 가부장제 집안이라 전날부터 여성들이 전을 부치는 등 명절 음식을 마련하고 다음날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6시에 차례를 지낸 후 성묘를 가는 게 정해진 일정이었다”라며 “이번 설엔 집에 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남동생은 흔쾌히 찬성했고 어머니도 ‘오기 싫으면 오지 말아야지’하셨지만 아버지는 탐탁치 않아 하셨다”고 말했다.

전북 모임은 전주나 익산 등에서 찾아오는 8명의 참석자와 함께 다과를 즐기며 이뤄질 예정이다. 희씨는 “‘편견 없는 시각’과 ‘수용적인 태도’를 참석자들에게 요청 드린 만큼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차례상 대신 브런치'의 남양주 모임 소개글. 출처 이서현씨 블로그

서울 사당 모임의 호스트인 강수하(34)씨는 ‘나답게 보내는 명절’과 ‘며느리로 보내는 명절’ 사이에서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한 결혼 3년차다. 그는 “지금까지 명절에 부산 시댁으로 가본 적이 없어 이번에는 갈 계획이지만, 연휴 전체를 시댁에서 보내기는 싫었다”며 “명절 모임을 개최하고 저녁에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명절에 남편과 여행을 가거나, 남편만 시댁에 갔지만 시댁에서는 항상 그것에 불만이 많았다”며 “자발적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명절이면 시댁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식 때문에 가기가 더 꺼려졌다”고 말했다.

강씨의 모임에는 기혼자와 미혼자가 절반씩 참여, 모두 6명이 모인다. 강씨는 “한 분이 ‘집에서 여자들만 일하고 남자들은 누워있는 꼴이 보기 싫어서 뛰쳐나오고 싶었는데, 막상 갈 데가 없었다. 갈 곳이 생겨서 기쁘다’고 신청서에 쓴 것이 기억이 난다”며 “명절 점심 시간에 우리가 모인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크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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