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2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의해 ‘영구정지’ 결정이 내려진 경주 원자력발전소 월성 1호기에 대한 논란이 여전합니다.
원안위 결정이 내려진 뒤 원자력계와 자유한국당 등 이른바 ‘친원전’ 측은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느라 거액(5,355억원)을 들여 보수한 원전의 가동을 중단시켰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한국당은 폐기결정에 대해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월성 1호기 재가동을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월성 1호기는 1982년 11월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해 2017년 운영이 영구 정지된 국내 최초의 원전 ‘고리 1호기’ 다음으로 국내에서 가장 ‘나이 든’ 원전입니다.
월성 1호기는 2012년 11월로 설계수명 30년이 만료됐지만 운영 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이 2015년 2월, 원안위로부터 10년 계속 운전을 승인 받아 재가동됩니다. 하지만 한수원은 지난 해 6월 경제성이 불확실하다며 이사회에서 다시 월성 1호기의 조기폐쇄를 결정했습니다.
지역주민과 시민단체의 극심한 반대에도 수명을 연장해놓고는 ‘탈원전’을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돌연 원전을 폐쇄하겠다고 나선 한수원이나 5년 전 연장 승인 결정을 스스로 뒤집은 원안위 행보에 신뢰도가 떨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월성 1호기를 지금 즉시 중단하자는 의견과 아니면 연장 수명대로 2022년 11월까지는 가동해야 한다는 주장 중 어느 쪽이 경제적으로 이득인지는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고장 잦아 이용률 뚝 떨어진 월성 1호기
원전의 경제성을 따질 때 가장 중요한 지표는 이용률과 판매단가입니다.
특히 원전의 발전 가능량을 실제 발전량으로 나눈 값을 의미하는 이용률이 핵심입니다. 365일 중 350일을 가동한 원전이 200일만 가동한 원전보다 경제성이 높은 건 당연한 이치입니다.
한수원이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을 내리기 전인 지난 해 6월 외부 회계법인에 의뢰해 작성된 ‘월성 1호기 운영정책 검토를 위한 경제성 평가 용역 보고서(최종보고서)’에도 이런 점이 반영됐습니다.
보고서는 이용률이 80%(낙관적)와 60%(중립), 40%(비관적)일 경우를 가정해 즉시 정지와 계속 가동 간 어느 쪽이 얼마나 더 이득인 지를 각각 비교했습니다.
이용률이 60%일 경우 계속 가동하면 91억원 손실이 나지만 즉시 정지하면 315억원의 손실을 냅니다. 계속 가동이 224억원 더 이득인 셈입니다.
80%일 경우는 계속 가동이 1,010억원 더 이득, 40%의 경우는 즉시 정지가 560억원 더 이득이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보고서는 경제성이 0이 되는 이용률, 즉 손익분기점이 되는 이용률은 54.4%로 산정했습니다.
보고서대로라면 한수원이 즉시 정지보다 계속 가동으로 결정을 내리는 게 더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2022년까지 손익분기점을 넘는 이용률을 보이기 쉽지 않다는 게 한수원 입장입니다.
월성 1호기는 2001년부터 2015년까지 90% 안팎의 이용률을 보였지만 2016년과 2017년 이용률이 각각 55.3%, 40.6%로 뚝 떨어졌습니다.(대규모 설비 개선 공사를 진행한 2009~2011년, 설계수명이 끝나고 가동하지 않았던 2013~14년은 제외)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안전 규제가 강화되면서 정비기간이 길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원전도 노후할수록 고장이 잦아지는데 월성 1호기는 2016년 5월과 7월 연이어 각각 15일, 22일 불시정지가 발생했습니다. 그 해 9월에는 경주 지진으로 87일간 또 운행이 정지됐습니다. 한수원은 “월성 1호기의 이용률은 지속 하락하는 추세로 후쿠시마 사고와 경주, 포항 지진 등으로 강화된 규제환경 아래서 얼마 남지 않은 운전기간 동안 이용률이 급격하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3개의 보고서, 각각 다른 경제성 평가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와 관련해 최근 또 하나의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조선일보는 한수원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 이행을 위해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를 고의로 낮춰 조작한 의혹이 있다는 취지의 보도를 했습니다.
기사에는 3개의 경제성 평가 보고서가 등장합니다.
외부 회계법인이 지난 해 6월 작성한 최종보고서 외에 한수원이 같은 해 3월 자체 작성한 ‘월성 1호기 계속 타당성 검토를 위한 경제성 평가(자체보고서)’, 같은 회계법인이 그 해 5월 작성한 ‘월성 1호기 운영정책 검토를 위한 경제성 평가 용역 보고서(초안보고서)’ 입니다. 2018년 3월부터 한수원의 조기 폐쇄 결정이 내려지기 전인 6월까지 3번의 보고서가 잇달아 만들어졌는데 갈수록 경제성 평가가 떨어졌다는 겁니다.
한국일보는 정유섭 자유한국당 의원실을 통해 세 보고서를 받아봤습니다.
자체보고서에는 4년 4개월 간 월성 1호기를 운영하면 1,868억원 이득, 즉시 정지하면 1,839억원의 손실이 발생하므로 운영이 3,707억원 이익이라고 돼 있습니다. 이는 85%라는 높은 이용률을 기준 삼았습니다. 초안보고서는 이용률 70%의 경우 계속 가동하는 것이 1,778억원 더 이득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자체보고서와 초안보고서는 최종 평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일 뿐”이라고 해명합니다. 특히 초안보고서에 대해서는 “회계전문가가 아닌 직원이 참고용으로 작성한 자료로 신뢰성, 객관적인 입증되지 않았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습니다.
한수원 해명에 석연찮은 구석도 있습니다.
A4용지 23페이지짜리 자체보고서를 단순 참고용으로 보기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한수원은 이 보고서가 누구에게까지 보고됐는지에 대해서도 정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또 회계법인의 초안보고서에는 이용률을 70%로 책정한 것에 대해 ‘정부의 정책적 의사결정에 따른 정지기간은 분석기간에서 제외돼야 하므로 과거 및 다른 원전의 운행실적을 고려할 때 70% 이용률이 충분히 가능한 수치라고 판단된다’는 대목이 있습니다. 당시 보고서는 70%의 이용률을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는 의미입니다.
한수원 말대로 이 모든 과정이 정확한 경제성 평가를 내리기 위해서였고 합리적인 논의를 거쳐 이용룔 등의 수치가 조정된 거라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 경제성 평가를 낮추려는 의도적인 개입이 있다고 드러날 경우 후폭풍이 거셀 수 있습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국회는 한수원 이사회가 월성 1호기의 영구정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경제성을 과소평가했다며 지난 해 9월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했는데 다음 달 말 결과가 나올 예정입니다.
또 다른 변수도 있습니다. 원자력정책연대 등 시민단체는 얼마 전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에 참여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수원, 회계법인 관계자를 배임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가 제대로 됐는지 여부가 검찰 수사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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