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보다 명절 문화 성 평등” 43.2%… 서울시 여성가족 재단 설문
“페미니즘 이슈로 불합리했던 여성 명절 노동 관습 깨지기 시작”
10명 중 4명 “명절 문화 여전”… “남녀 밥상 따로 먹기도”
설 연휴를 앞둔 19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이 제사용품 등을 사려는 시민들이 몰렸다. 연합뉴스

IT업계에 종사하는 이민주(39ㆍ가명)씨는 올 설에 차례상 음식 준비와 시가(시댁) 손님맞이로 진을 빼 많은 며느리가 겪는 ‘명절증후군’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이씨는 설 연휴에 남편과 인천시 송도로 여행을 간다. 2박3일로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는 이른바 ‘호캉스’(호텔+바캉스) 일정이다. 이번 설을 따로 보내겠다는 이씨 부부의 제안을 양가 부모들이 승낙해 가능한 일이었다. 대신 이씨 부부는 지난주 양가 부모님을 따로 불러 저녁식사를 했다. 이씨는 “서로 너무 바빠 주중엔 아침, 저녁 잠깐 얼굴 보는 게 전부고 주말이라고 해도 업무에 치여 가까운 데 여행 가기도 힘들다”며 “명절이나 돼야 며칠 쉴 수 있는데 이 방학 같은 기간을 활용해 우리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고 말했다.

명절 성평등 문화. 김대훈 기자

시ㆍ처가에 가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던, 누구나 으레 해야 했던 일로 여겨졌던 명절의 풍속이 달라지고 있다. 시ㆍ처가에 아예 가지 않고 조촐하게 부부끼리 여행을 떠나고, 이젠 차례도 오후에 지낸다. 즐거워야 하지만 차례 음식 준비와 장시간 운전 등으로 편히 쉴 수만은 없는 명절을 바꿔보자는 신세대 부부와 부모의 의식 변화로 생긴 새로운 설 풍경이다.

서울 대조동에 사는 김인숙(62)씨는 25일 설 당일 차례를 새벽이 아닌 오후에 지낸다. 김씨는 “마침 새 며느리도 맞고 해서 차례 준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상에 올릴 음식도 줄이고 남편과 상의해 차례 시간도 저녁 직전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자식들이 명절을 고통스럽지 않게 보내지 않기 위해 내린 부모들의 예방 조처다.

가부장적이고 남성 우월적인 기존 명절 문화에도 균열이 나기 시작했다. “음식 준비는 시어머니가 하고, 만들기는 남편과 시동생이, 설거지는 며느리가 각각 나눠서”(기혼 여성 39세 A씨)하는 사례도 느는 추세다. 본보가 22일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이번 설 직전 명절이던 지난해 추석 연휴에 실시한 성 평등 명절 문화 변화 설문(여성 718명 등 총 810명 참여)을 확인한 결과 이 같은 경향이 드러났다.

명절 성 평등 사례로는 ‘집안일, 운전 나눠서 하기’(29%)와 ‘차례 준비 간소화’(24.3%), ‘양가 방문 번갈아 가기’(22.1%)가 순서대로 가장 많이 꼽혔다. 이씨 부부처럼 부부 여행으로 새로운 명절 문화를 만든 응답자(8%)도 상당수였다. 이 설문에 참여한 기혼 여성 34세 B씨는 “사회적으로 페미니즘이 이슈화되면서 여성에 불합리했던 명절 관습과 편견이 조금씩 깨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고 답했다. ‘82년생 김지영’ 등 여성 담론을 내세운 책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면서 다양한 세대들이 성 평등 문제를 고민해 생긴 작은 변화들이다. 응답자 10명 중 4명(43.2%)은 “전보다 명절 문화가 성 평등 해졌다”고 답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었다. 아직도 “남자, 여자 밥상을 따로”(비혼 여성 22세 C씨) 차리고 “차례를 지낸 후 남자가 먼저 밥을 먹으면 그다음에 남은 반찬으로 여자들이 식사”(비혼여성 37세 D씨)를 하는 집도 있었다. 차례 음식 준비를 함께하지만 여전히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남성도 많았다. 남자 아이일 경우 여자보다 세뱃돈을 더 주기도 했다. 남성 중심적인 명절 문화가 바뀌지 않았다는 응답은 39.3%에 달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