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은 진화의 자연스러운 결과”

알림

“미투 운동과 페미니즘은 진화의 자연스러운 결과”

입력
2020.01.23 11:00
수정
2020.01.23 17:42
20면
0 0

[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 <6ㆍ끝> ‘아름다움의 진화’ 번역자 양병찬

'아름다움의 진화'를 옮긴 과학 전문 번역가 양병찬씨가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교보문고 합정점에서 열린 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에 강사로 나서 자신의 저서를 소개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아름다움의 진화'를 옮긴 과학 전문 번역가 양병찬씨가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교보문고 합정점에서 열린 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에 강사로 나서 자신의 저서를 소개하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미투 운동’(2017년 미국에서 시작된 성폭력 피해 고발 운동)은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로 볼 수 있어요.”

21일 서울 마포구 교보문고 합정점 배움홀에서 열린 제60회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북콘서트의 마지막을 장식한 여섯 번째 강연 현장. 이날 강연을 맡은 과학 전문 번역가 양병찬씨가 자신에게 번역상을 안긴 ‘아름다움의 진화’(리처드 프럼 지음ㆍ동아시아 발행)를 옮기면서 깨달은 책 이면의 메시지는 ‘평화의 과학적 당위성’이다.

그는 슬라이드 화면으로 입을 크게 벌린 침팬지ㆍ오랑우탄 수컷과 인간 남성의 사진을 나란히 보여줬다. “모두 영장류입니다. 비슷하죠. 그런데 차이가 뭐냐. 송곳니예요. 사람이 작죠. 송곳니를 보여준다는 건 ‘너 나한테 죽어’라는 의미입니다.” 여타 동물과 다른 인간의 특징은 평화다. “‘성 선택’ 이론이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선량한 성품,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 같은 겁니다.”

양씨는 “인간 남녀 간 덩치 차이를 봐도 다른 영장류 암수보다 훨씬 작다”고 덧붙였다. 덩치가 비슷해진 것 또한 평화다. 그는 “제가 올해 환갑인데 제 나이쯤 되면 아내한테 더 이상 힘으로 안 된다”며 웃었다.

진화란 수컷의 폭력성이 줄어드는 쪽으로 암수 간 타협이 이뤄지는 과정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여성의 복권을 부른다. 과거 가부장제에 익숙한 남성은 이런 ‘자연의 진실’이 불편하다. 여성에게 진화의 선택권이 있다는 성 선택 이론이 자연 선택 이론에게 지금껏 억눌린 것도 이 때문이다.

마흔 들어 과학서 번역에 투신한 양씨가 근 20년 동안 옮긴 책은 무려 60여권에 이른다. 지난 한 해만도 6권이다. 알려졌다시피 영미 과학 전문지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실린 최신 기사 번역 작업도 꾸준하다. 이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새벽 3, 4시면 일어난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이렇게 열심히 하는 이유는 사명감이다. “재미보다는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인지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류와 생태계의 미래에 대한 책을 주로 번역한다.

21일 서울 마포구 교보문고 합정점에서 열린 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에서 강연 중인 과학 전문 번역가 양병찬씨. 왕태석 선임기자
21일 서울 마포구 교보문고 합정점에서 열린 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에서 강연 중인 과학 전문 번역가 양병찬씨. 왕태석 선임기자

물론 본인 스스로의 지적 욕구도 상당하다. 지난해 과학기술인공제회(SEMA) 잡지에서 그를 인터뷰했는데, 그 기사의 제목이 ‘지식을 전달한다는 순수한 기쁨’이었다. 양씨는 “무엇보다 과학기술인으로 인정해줘서 기뻤다”고 말했다.

여든 넘어 백세까지 과학 번역을 할 수 있기를 꿈꾼다는 그는 과학 번역가 후진 양성에도 관심이 있다. 그런 차원에서 그는 이날 ‘양병찬의 과학 번역 7대 정석’을 소개하기도 했다. 단순한 테크닉만 익힐 게 아니라 진심을 다하라는 내용이었다.

‘양병찬의 번역’은 유연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선지 이날 질문 중에는 ‘덕후’ 같은 신조어를 번역어로 쓰는 데 망설임이 없었느냐는 것도 있었다. 그는 “내가 초점을 둔 독자는 30, 40대”라며 “문맥에 맞으면 과감히 쓴다”고 답했다. 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적극적인 것 역시 “대중의 수요ㆍ반응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과학을 널리 알리고 싶다, 그게 양병찬을 움직이는 힘이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