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 멤버 첸의 팀 퇴출을 요구합니다.”(엑소 공식 글로벌 팬클럽)
“CJ ENM은 엑스원 멤버들로 구성된 새 그룹을 결성해 멤버들이 입은 피해를 보상하라.”(엑스원 새 그룹 지지 연합)
아이돌 그룹 팬덤이 한층 강력한 ‘팬슈머(fansumerㆍ팬과 소비자의 합성어)’로 진화하고 있다. 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SNS를 통해 해외 팬까지 흡수하고 소통하면서 영향력을 더욱 키워 나가고 있다.
21일 ‘엑스원 새 그룹 결성 지지 연합’이라고 밝힌 이들은 그룹 엑스원을 탄생시킨 TV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X101’ 제작사 CJ ENM 본사 앞에서 새 그룹 결성을 요구하는 시위를 22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엑스원은 지난해 방송된 케이블채널 엠넷의 ‘프로듀스X101’이 배출한 11인조 남성 그룹이다. 방송 종영 뒤 8월 데뷔 앨범을 내놨으나 제작진의 시청자 투표 조작 사실이 드러나면서 활동이 중단됐다가 올해 초 결국 해체가 결정됐다.
연합은 “이제 팬은 단순히 연예인을 응원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라며 “가수를 대신해 목소리를 높이고 부당한 권력 구조에 맞서는 등 팬슈머로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활동하면서 스타와 상호보완적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고 주장했다.
앞서 SM엔터테인먼트 소속 남성 그룹 엑소의 글로벌 팬클럽의 유료회원들인 엑소엘 에이스 연합은 최근 결혼을 발표한 멤버 첸의 탈퇴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첸의 단독 행동으로 그룹의 이미지가 훼손됐다’ ‘엑소 팬덤의 분열ㆍ와해가 심각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이 못 박은 시한인 18일까지 소속사의 답변이 없자 30여명의 회원들이 19일 서울 강남구 복합문화공간 SM타운 코엑스아티움 앞에 모여 집회를 열기도 했다. 첸의 탈퇴를 반대하는 팬들까지 등장하면서 팬덤 내부의 갈등이 격화하는 양상이다. SM은 지난해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성민과 강인에 대한 팬들의 퇴출 요구가 거세지자 이들을 제외하기도 했다.
팬슈머는 다양한 얼굴을 띠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으로 가수의 앨범 제작에 일부 참여하기도 하고, 팬들이 열성적인 홍보전을 벌이기도 한다. 대리전도 불사한다. 그룹 방탄소년단 팬들은 지난해 말 JTBC가 소속사와 방탄소년단이 수익정산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고 보도하자 ‘JTBC 뉴스룸 광고주 불매’ ‘JTBC 채널 보이콧’ 등을 예고하며 방송사에 사과와 답변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소동은 당시 앵커였던 손석희 사장이 직접 사과하면서 일단락됐다.
기획사들에겐 팬슈머 활동이 양날의 칼이다. 스타가 성장하는 밑거름이기도 하지만, 너무 직접적인 영향력은 부담스러워서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예전보다 팬덤의 영향력이 무시하기 어려울 만큼 커진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팬들 내부에 다양한 목소리가 있어 그들 주장을 모두 수용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팬슈머 활동에 대한 시각도 엇갈린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오디션 프로그램 유행으로 팬이 스타를 만든다는 관념이 보편화되면서 팬덤이 지분을 지닌 투자자처럼 행세한다”며 “범죄나 반사회적 행위가 아닌데도 지나치게 간섭하는 건 갑질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반면 박희아 대중음악평론가는 “스타와 친밀감을 만들고, 스타의 ‘남성성’ 혹은 ‘여성성’을 판매하는 게 아이돌 산업임을 감안하면 팬들 탓만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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