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의 배우 송강호(왼쪽부터)와 이정은, 박소담, 이선균, 최우식이 1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26회 미국 배우조합(SAG)상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영화 캐스트상을 수상한 후 트로피를 들고 환히 웃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연합뉴스

지난해 늦가을 영화 ‘기생충’ 관계자와 자리를 함께 했다. ‘기생충’의 여러 놀라운 성과에 대해 이야기하다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이 거론됐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후보 선정을 넘어 수상까지 하면 칸영화제 당시를 패러디해 보는 게 어떠냐는 말이 나왔다. 봉준호 감독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 때 제작자인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와 배우 송강호를 무대로 불렀는데,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선 곽 대표가 봉 감독과 송강호를 불러 무대에 올려도 재미있겠다는 의견이었다. 봉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배우 송강호에게 바치는 듯한 포즈를 취했는데, 아카데미상에선 그 반대 모습을 연출하면 흥미롭겠다는 말도 주고 받았다.

한담이었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상 후보에 선정조차 된 적이 없는데, 수상이라니. 정말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면서도 조금은 흥분했던 듯하다. 2개월 남짓이 흘렀다. 한국 영화의 아카데미상 첫 수상은 현실이 돼가고 있다.

‘기생충’의 진격이 놀랍다. 지난 연말부터 미국 각 지역 영화평론가협회 주최 상을 싹쓸이하다시피 하더니, 할리우드 주류 시상식에서도 트로피를 끌어 모으고 있다. 요즘 할리우드는 ‘시상식의 계절’이 한창인데, 후보 선정과 시상 결과가 나올 때마다 흥미롭다.

지난 5일(현지시간) 골든글로브상 시상식 직후에는 조금 김빠진 느낌이었다. ‘기생충’이 한국 영화 최초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깜짝 등장한 영화 ‘1917’(감독 샘 멘데스)에 작품상과 감독상 수상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1차세계대전을 그린 ‘1917’은 골든글로브상 수상으로 아카데미상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반전이 바로 따랐다. 13일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작품상 감독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오스카 경쟁에 다시 불을 붙였다. 이후 ‘1917’이 18일 미국제작자조합(PGA)상 작품상을 받으며 재차 공격에 나서더니, ‘기생충’이 19일 미국 배우조합(SAG)상 최고상인 영화 캐스트상을 수상하며 응수했다. PGA상과 SAG상은 아카데미상을 내다볼 수 있는 주요 상으로 꼽힌다. 제작자조합과 배우조합에 속한 회원 상당수가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으로 아카데미상 선정 투표권을 지녔다. AMPAS는 배우 회원 비중(15%)이 가장 높다.

토종 한국 영화 ‘기생충’이 SAG상 최고상을 받은 점은 그 자체로 의미가 남다르다. 미국 배우들은 자막이 있는 해외 영화를 유난히 꺼린다. ‘기생충’이 SAG상 26년 역사상 두 번째로 캐스트상 후보가 되고, 첫 수상까지 했으니 할리우드에서 가장 높은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은 셈이다. 송강호와 박소담 등 ‘기생충’ 배우들이 SAG상 시상식장에 등장했을 때 참석자들이 기립박수를 친 점도 이례적이다. 미국 연예전문 매체 버라이어티 등 현지 언론이 “역사를 만들었다”고 흥분하는 이유다.

‘기생충’과 ‘1917’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와중에 현지 반응이 ‘기생충’에 더 호의적인 점도 눈길을 끈다. 20일 버라이어티는 ‘‘1917’은 왜 오스카를 받아서는 안 되는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기생충’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아이리시 맨’(감독 마틴 스코세이지), ‘조커’(감독 토드 필립스)의 수상을 바랐다.

아카데미상 수상이 설령 불발에 그친다고 해도 ‘기생충’은 이미 많은 성과를 이뤘다. 가장 큰 성취는 세계 영화산업의 중심지에 한국 영화를 제대로 알렸다는 점이다. 미국 영화인들을 자주 접하는 국내 관계자들에 따르면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은 확실히 커졌다. ‘기생충’으로 한국 영화에 눈이 트인 할리우드 인사들이 볼 만한 작품을 더 추천해달라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기생충’의 진격이 멈춘 뒤에도 바통을 이어 받아 진격을 계속할 한국 영화는 있는가. ‘기생충’은 한국 영화계에 큰 기쁨을 주는 만큼 무거운 과제도 안기고 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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