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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웅본색’ 4050 아재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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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웅본색’ 4050 아재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입력
2020.01.21 04:4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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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영웅본색’은 LED 패널로 홍콩의 밤거리를 무대에 입체적으로 구현해 낸다. 빅픽쳐프러덕션 제공
뮤지컬 ‘영웅본색’은 LED 패널로 홍콩의 밤거리를 무대에 입체적으로 구현해 낸다. 빅픽쳐프러덕션 제공

화려한 네온사인에 가려진 어느 후미진 뒷골목. 싸늘한 밤공기가 트렌치코트 자락에 부딪힌다. 기계는 쉼 없이 돌아가며 위조 지폐를 찍어 내고, 어디선가 들려온 날카로운 총성이 기계 소음에 뒤섞인다. 이곳은 1980년대 말 홍콩의 암흑가. 귀에 익은 주제곡 ‘분향미래일자’가 불려지면, 극장은 통째로 30년 전으로 되돌아 간다.

홍콩 누아르의 전설로 불리는 우위썬(오우삼) 감독의 영화 ‘영웅본색’이 뮤지컬로 다시 태어났다. 3월 22일까지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관객을 만난다. 홍콩 영화로 만들었으니 해외 작품 같지만, 정작 뮤지컬은 100% 국내산 창작극이다.

2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마주한 왕용범 연출은 “수많은 홍콩 액션 영화가 있지만 ‘영웅본색’처럼 단순ㆍ명료한 감동을 주는 작품은 드물다”며 “총소리에도 리듬이 있다고 느껴져 뮤지컬을 구상하게 됐다”고 말했다.

암흑가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 몸부림치는 형 자호(유준상ㆍ임태경ㆍ민우혁), 마약왕을 잡기 위해 경찰 신분을 숨기고 조직에 잠입한 동생 자걸(한지상ㆍ박영수ㆍ이장우), 자호 대신 복수를 하려다 나락으로 떨어진 친구 마크(최대철ㆍ박민성), 이들 세 남자의 엇갈린 운명이 진한 향수를 자극한다.

뮤지컬 ‘영웅본색’을 함께 만든 연출가 왕용범과 배우 유준상. 두 사람의 협업은 ‘삼총사’ ‘잭 더 리퍼’ ‘벤허’ ‘프랑켄슈타인’에 이어 다섯 번째다. 박형기 인턴기자
뮤지컬 ‘영웅본색’을 함께 만든 연출가 왕용범과 배우 유준상. 두 사람의 협업은 ‘삼총사’ ‘잭 더 리퍼’ ‘벤허’ ‘프랑켄슈타인’에 이어 다섯 번째다. 박형기 인턴기자

 

 ◇40, 50대 남성을 극장에 불러내다 

이 향수 덕에 뮤지컬에선 보기 드문 40, 50대 중장년 남성들이 극장을 꽤 찾는다. 제작사 빅픽쳐프러덕션 관계자는 “단체 예매 문의를 하는 관람객 대부분이 중년 남성 관객이며, 티켓을 실제 구매하는 단체 중 중년 남성 관객 비율이 73%에 달한다”고 밝혔다. 배우 유준상은 “남성 캐릭터가 극의 중심이라 걱정이 없진 않았지만, 커튼콜을 할 때 여성 관객들이 더 크게 환호해 주더라”며 “우정과 신의를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는 이야기가 젊은 세대에게는 ‘뉴트로’ 감성으로 색다르게 다가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는 총 4편 시리즈인데, 뮤지컬은 1986년과 1987년 제작된 1, 2편을 원작으로 삼는다. 형제 이상으로 가까운 자호와 마크의 관계는 1편의 설정을 따랐고, 자걸의 비밀 임무는 2편에서 가져왔다. 마크를 연기한 저우룬파(주윤발)가 위조 지폐를 태워 담뱃불을 붙이던 모습과 성냥개비를 입에 문 채 거침없이 쌍권총을 쏘아대던 모습, 자걸 역 장궈룽(장국영)이 공중전화 수화기를 붙잡고 피를 흘리며 숨을 삼키던 모습 등 ‘영웅본색’의 인장 같은 명장면들도 고스란히 재현됐다. ‘영웅본색’과 함께 성장기를 보낸 관객이라면 아빠의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성냥개비를 잘근잘근 깨물던 옛 추억에 빠져들 만하다.

주인공 자호 역을 맡은 배우 유준상. 트렌치코트와 선글라스, 입에 문 성냥개비 등 원작의 주요 설정도 무대로 옮겨졌다. 빅픽쳐프러덕션 제공
주인공 자호 역을 맡은 배우 유준상. 트렌치코트와 선글라스, 입에 문 성냥개비 등 원작의 주요 설정도 무대로 옮겨졌다. 빅픽쳐프러덕션 제공

 

 ◇장국영 100곡에서 골라낸 음악 

‘영웅본색’을 뮤지컬로 만드는 데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영화 판권을 얻는 데 2년, 다시 장국영의 음악 판권을 구하는 데 또 1년을 보냈다. “중국이라는 나라의 특성상 원작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를 찾는 일 자체가 난관”이었다고 한다.

뮤지컬이다 보니 중요한 것은 노래. 멜로디 정도는 흥얼댈 수 있는 주제가 ‘당년정’과 ‘분향미래일자’ 외에도 장국영이 가수로 히트시켰던 7곡을 더 살렸다. 장국영의 노래 100곡을 다 번역한 뒤 가사가 극 전개와 맞아떨어지는 곡을 추려내고, 다시 이 곡의 작사가와 작곡가를 찾아내 허락을 구했다. 왕 연출은 “장국영의 히트곡이 그렇게 많은 줄 우리도 몰랐기 때문에 곡을 선별하는 과정이 원작자를 찾는 일만큼이나 어려웠다”며 웃었다.

영상으로 구현된 무대 배경은 배우들조차 “영화를 찍는 기분”이라고 호평할 정도로 화려하다. 빅픽쳐프러덕션 제공
영상으로 구현된 무대 배경은 배우들조차 “영화를 찍는 기분”이라고 호평할 정도로 화려하다. 빅픽쳐프러덕션 제공

 

 ◇LED패널로 되살린 홍콩의 야경 

화려한 홍콩의 야경도 도전 과제였다. 이 부분에선 돈을 쏟아 부었다. LED 패널 1,000여장을 무대 좌우와 천장까지 3면에 설치했다. 여기에다 실제 홍콩의 골목과 야경을 촬영한 영상도 일부 집어넣었다. 패널이 무대 안쪽까지 겹겹이 설치되면서 마치 홍콩의 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몰입감까지 선사하는 데 성공했다. 왕 연출은 “‘홍콩은 빛의 도시’라는 컨셉트 아래 영화 못지않은 풍성한 볼거리를 주려 했다”며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뮤지컬을 보는 것 같다’는 관객 평을 듣고 무척 기뻤다”고 말했다.

속도감도 보통 아니다. 장면 전환만 107회에 달한다. 20~40회 수준에 그치는 일반 뮤지컬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유준상도 “매 공연마다 무대에서 영화를 찍는 기분”이라며 “이런 새로운 시도가 창작극의 묘미 같다”고 말했다.

그 덕에 뮤지컬 ‘영웅본색’은 해외 수출도 모색 중이다. 영화 원작 관계자들이 오히려 중국에서 투자를 받아오겠다고 약속했고, 일본과 미국의 제작사들도 뮤지컬에 흥미를 보였다. 왕 연출은 “우리 창작 뮤지컬도 ‘오페라의 유령’ 같은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겨룰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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