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怪)하지 않으면 서(書)가 아니다.”
어린 아이처럼 투박한 글씨엔 “정말 추사의 서(書)가 맞냐”며 위작 논란이 일기도 했다. 사대부의 정갈한 필체를 기대했다면 실망할지 모른다. 그러나 추사는 ‘괴의 미학’을 강조했다. ‘기괴하다’, ‘괴상하다’ 할 때의 그 ‘괴’다.
‘추사 김정희’를 한 세트로 외우면서도 정작 우리는 추사의 예술 세계를 등한시해왔다. 교과서에 적힌 이름의 무게감이 오히려 깊은 이해를 방해한 것이다. 안타까운 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3월 15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귀국전이 열린다. “지나친 신비감과 경외를 벗겨내고, 추사의 진면모를 차분히 알아보자”는 취지다.
중국과의 대화는 이미 성공적이었다. 지난해 여름 중국 국가박물관에서 먼저 열린 추사전은 총 30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하며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장칭(張晴) 부관장은 “왜 이제야 우리는 서성(書聖ㆍ글씨의 성인) 추사를 알게 되었는가”라며 안타까워했을 정도다. 추사의 ‘세계성’을 증명한 셈이다.
귀국전은 추사의 ‘현대성’에 주목한다. 기획을 맡은 예술의전당 이동국 큐레이터는 “150여년 전부터 추사는 이미 현대미술의 핵심 요소를 실천해왔다”고 말했다. ‘계산무진’만 하더라도 추사가 글씨를 통해 구축해내는 독특한 공간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추사에게 영향을 받은 국내 작가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했다. 추사의 현대성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해서다. 특히 김종영 작가는 피카소의 큐비즘과 추사 글씨의 구축성을 비교하며 “내 조각은 추사에서부터 나온다”고 거듭 이야기해오기도 했다. 이동국 큐레이터는 “전통과 현대가 단절된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며 “현대 미술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다름 아닌 추사의 미학을 이어오고 있다는 지점에서 추사의 현대성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추사는 특정한 형태에 갇히지 않고 경계를 넘나들었다. 괴(怪)하다는 비난에도 굴하지 않고 다양한 서(書)를 시도했다. 정갈한 글씨를 선보이다가도 또다시 어린아이처럼 투박한 글씨로 되돌아가는 식이다.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이 나선형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가깝다. 유배지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쓴 ‘유희삼매’는 서와 놀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경지다. 이동국 큐레이터는 “예술과 학문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일치시키는 추사의 작품 세계를 통해 현대 미술의 키워드를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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