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교 원로인 리수용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이 최근 모든 직책에서 물러난 데 이어 대미 외교 전문가인 리용호 외무상까지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새 외무상에는 군 출신인 리선권 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임명된 것으로 전해진다.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이 여전히 중대 과제인 상황에서 외교 업무 경험이 없고 10여년 남북 문제만 다뤄온 대남 전문가를 외교 수장에 임명한 북한의 의도가 궁금증을 낳는다.
리선권은 역시 군 출신으로 지난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까지 협상 전면에 섰던 김영철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오랫동안 남북군사회담 대표를, 2016년부터 우리 통일부에 해당하는 조평통 위원장을 맡았다. 이번 인사는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협상의 전면에 섰던 ‘리수용-리용호-최선희’ 외교라인의 퇴조 신호로 볼 수 있다. 지난해 말 노동당 전원회의나 최근 김계관 담화에서 드러났듯 대미 강경 노선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대선을 앞둔 미국이 협상 문턱을 높인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비핵화 협상의 조건을 다지는 것이 낫다는 판단일 수 있다. 섣불리 도발을 재개하려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협상에 의욕을 내려는 것도 아니어서 당분간 북미 협상은 교착 상태를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리수용 후임으로 김형준 전 러시아 대사가 임명된 것은 미국과의 협상이 어려운 상황에서 러시아, 중국 등의 지원을 얻어 제재를 완화하거나 제재의 틈새를 벌리려는 의도가 반영됐다고 할 수 있다. 중국, 러시아는 유엔에서 제재 완화 논의를 꺼냈던 데다 이미 시한이 지난 유엔 제재망에서 벗어나 북한 노동자로 외화벌이를 하려면 더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할 대상이다.
북한이 이런 속셈으로 새해 들어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는 남측에 맞장구를 치고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지난해 북미 회담에 밀려 적극 추진하지 못했던 남북 협력 사업을 지금이라도 속도를 내서 추진할 필요는 있다. 다만 이런 관계 회복이 북미 협상을 자극하고 나아가 한반도 비핵화의 마중물이 되게 해야지 북한이 비핵화 목표를 접고 살아갈 방도를 만들어 주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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