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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수 남극선배 둘리 “약자들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똑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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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수 남극선배 둘리 “약자들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똑같아요”

입력
2020.01.20 22:00
수정
2020.01.21 09:2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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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로 변신한 ‘둘리 아빠’ 김수정 인터뷰

‘모두 어디로 갔을까’라는 동화책을 출간한 김수정 작가를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그의 새로운 도전이 반가우면서도 둘리는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으려나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그는 올해 안에 아기공룡 둘리 보물섬 연재를 만화책으로 새로 내거나, 공개되지 않은 장편 애니메이션 스토리보드 책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배우한 기자
‘모두 어디로 갔을까’라는 동화책을 출간한 김수정 작가를 지난 14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그의 새로운 도전이 반가우면서도 둘리는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으려나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그는 올해 안에 아기공룡 둘리 보물섬 연재를 만화책으로 새로 내거나, 공개되지 않은 장편 애니메이션 스토리보드 책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배우한 기자

요즘 ‘대세’ 펭수 덕분에 유튜브에서 다시 소환된 인물, 아니 공룡이 있다. 펭수(2019년)보다 무려 36년이나 앞서 남극에서 넘어온 아기공룡 둘리다. 둘리는 펭수가 주인공인 ‘자이언트펭TV’에 ‘남극유치원 1기 선배’로 등장하더니 “라떼는 빙하 타고 다녔지”라 허세를 부리거나, “호잇!” 손짓 한번에 순간 이동하는 초능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펭수가 둘리를 불러내자 ‘둘리 아빠’ 김수정 작가(69)도 신인 동화작가로 돌아왔다. 2009년 활동 중단 이후 10년 만이다. 1975년 소년한국일보의 신인만화 공모전 ‘폭우’로 데뷔한 만화 인생 45년,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그를 만나봤다.

김수정 작가가 최근 출간한 ‘모두 어디로 갔을까(전 3권)’에 들어간 일러스트. 김 작가는 권당 최대 50컷에 달하는 일러스트를 디지털이 아닌 수채화 수작업으로 모두 완성했다. 이 작업에만 1년이 소요됐다. 둘리나라 제공
김수정 작가가 최근 출간한 ‘모두 어디로 갔을까(전 3권)’에 들어간 일러스트. 김 작가는 권당 최대 50컷에 달하는 일러스트를 디지털이 아닌 수채화 수작업으로 모두 완성했다. 이 작업에만 1년이 소요됐다. 둘리나라 제공

김 작가가 이번에 낸 책 ‘모두 어디로 갔을까(전 3권)’는 성장 동화다. 3명의 초등학생 친구들이 거대 도심 숲에서 길을 잃었다가 숲의 정령들을 만나 겪는 모험을 그렸다. 2010년부터 이주해 살고 있는 캐나다 밴쿠버 브리티시의 100년 숲, 그리고 그 숲을 좋아했던 늦둥이 딸 시하(고2)의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삼았다.

“딸이 초등학교 2학년 때 낯선 캐나다에 와서 적응하는 과정을 매일 기록했지요. 집 앞에 100년 된 숲이 있었는데 아파트를 짓겠다고 나무를 베더라고요. 독수리가 날고 너구리가 넘쳐나던 숲이 사라지는 걸 딸 아이가 무척이나 슬퍼했죠.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돼요. 원래는 만화로 하려 했는데 오래 걸릴 것 같아 동화로 방향을 바꿨죠.”

그런데도 작품 완성까지 7년이 걸렸다. 김 작가는 ‘동화는 단순하고 쉽다’란 편견을 깨부수고 싶어 공을 들였다고 했다. “동화라고 하면 아이들은 순수하고, 어른들은 못되거나 바보 같다고 하기 마련인데 현실이 과연 그런가요. 아이나 어른이나 인간 군상의 복합적인 내면을 담아내기 위해 고심했죠.”

1983년 만화잡지 보물섬에 10년 간 연재 뒤 TV 만화,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아기공룡 둘리’의 주인공들. 엄마와 생이별한 둘리(왼쪽부터), 외계에서 불시착한 도우너, 서커스단에서 도망쳐 나온 또치, 부모와 떨어져 고모부 집에서 살고 있는 희동이, 재능은 없지만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마이콜, 이리저리 치이고도 욕만 먹었던 고길동까지. 둘리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결핍 속에서도 끈질기게 서로를 놓지 않는다. 둘리나라 제공
1983년 만화잡지 보물섬에 10년 간 연재 뒤 TV 만화,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아기공룡 둘리’의 주인공들. 엄마와 생이별한 둘리(왼쪽부터), 외계에서 불시착한 도우너, 서커스단에서 도망쳐 나온 또치, 부모와 떨어져 고모부 집에서 살고 있는 희동이, 재능은 없지만 가수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마이콜, 이리저리 치이고도 욕만 먹었던 고길동까지. 둘리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결핍 속에서도 끈질기게 서로를 놓지 않는다. 둘리나라 제공

둘리의 탄생 이야기도 이와 비슷하다. 1983년 4월 만화잡지 보물섬에서 태어난 둘리는 1억년 전 엄마 공룡과 헤어져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꾸준히 말썽을 일으키는 천방지축 캐릭터다.

“1970,80년만 해도 만화는 ‘5대 사회악’으로 지정될 만큼 사회적으로 부정적 인식이 강했어요. 만화 속 아이들은 욕도 하면 안 되고 화도 내선 안 되는, 완벽한 성인군자처럼 그려야 했죠. 그런데 진짜 아이들이 어디 그런 가요. 아이가 아닌 공룡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자유분방하고 실수투성이인 아이들을 표현해내기 위한, 심의를 통과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어요.”

김 작가는 둘리의 인기비결도 거기서 찾았다. 엄마 잃고 얹혀사는 주제에 둘리는 기죽기는커녕 당당하게 사고를 다 친다. 자기를 거둬준 고길동에게도 주눅들지 않는다. 집을 나간다고 큰소리치지만, 갈 곳은 없다는 건 스스로가 제일 잘 안다. “자기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어 더 큰 소리 칠 수 밖에 없었던 거죠. 약점을 드러내지 않으려 더 센 척, 더 당당한 척하는 거 에요.”

후배 펭수가 거침없는 사이다 발언으로 을(乙)을 대변했다면, 둘리는 ‘약자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통념을 깨트렸다는 게 김 작가의 설명이다. 그래서 유튜브에 떠도는 ‘둘리의 악행 모음’엔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너무 어른들 관점”이란 게 김 작가의 생각이다.

김 작가는 둘리가 약자이면서도 큰 소리 치는 이유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라 설명했다. 둘리나라 제공
김 작가는 둘리가 약자이면서도 큰 소리 치는 이유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라 설명했다. 둘리나라 제공

고길동에 대한 해석도 좀 다르다. 요즘 젊은이들은 둘리에다 또치, 도우너까지 다 끌어안고 사는 고길동을 일러 ‘대인배’라며 칭찬한다. 하지만 김 작가는 “고길동이 둘리와 친구들을 내치지 못하는 건 조카 희동이를 잘 돌봐주기 때문”이라며 “고길동과 둘리의 관계도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먹이사슬 관계”라고 했다. 어릴 적 둘리에 열광했던 이들이 이제 고길동을 더 좋아하는 것을 두고도 김 작가는 “그만큼 독자들이 어른이 됐다는 얘기”라고 했다. 살아간다는 것의 노곤함을 들여다보면 고길동이 더 애잔하게 다가온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김 작가는 “둘리와 고길동 모두 서툴고 부족한 약자이기에 누구 편도 들어줄 수 없다”며 중립을 선언했다. 애비의 한계다.

1983년 만화잡지 보물섬에 10년 간 연재 뒤 TV 만화,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아기공룡 둘리’의 주인공들. 엄마와 생이별한 둘리, 외계에서 불시착한 도우너, 서커스단에서 도망쳐 나온 또치, 부모와 떨어져 고모부 집에서 살고 있는 희동이, 이리저리 치이고도 욕만 먹었던 고길동까지. 둘리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결핍 속에서도 끈질기게 서로를 놓지 않는다. 둘리나라 제공
1983년 만화잡지 보물섬에 10년 간 연재 뒤 TV 만화,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아기공룡 둘리’의 주인공들. 엄마와 생이별한 둘리, 외계에서 불시착한 도우너, 서커스단에서 도망쳐 나온 또치, 부모와 떨어져 고모부 집에서 살고 있는 희동이, 이리저리 치이고도 욕만 먹었던 고길동까지. 둘리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결핍 속에서도 끈질기게 서로를 놓지 않는다. 둘리나라 제공

어느덧 37살이 된 둘리, 2020년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김 작가는 올해 안에 보물섬 연재 만화를 묶어 만화책으로 새로 낼 계획이다. 동시에 2014년 무산된, 둘리가 등장하는 장편 애니매이션인 ‘방부제 소녀들의 지구 대침공’의 시나리오 등을 책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그래도 둘리가 선배인데, 후배 펭수 인기에 힘입어 어부지리 반짝 주목을 끄는 건 원치 않고요.(웃음) 시대가 원하면 둘리도 언젠가는 다시 호출되지 않겠어요? 둘리는 그때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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