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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도 미안함도 남지 않도록… 장기기증 유가족ㆍ이식인 국내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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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도 미안함도 남지 않도록… 장기기증 유가족ㆍ이식인 국내 첫 만남

입력
2020.01.20 17:31
수정
2020.01.20 19:05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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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과 이식인의 교류 막는 장기이식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고(故) 김유나양의 신장과 췌장을 이식 받은 미국인 킴벌리 오초아(가운데)씨가 김양의 어머니 이선경(오른쪽)씨에게 감사의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뉴스1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과 이식인의 교류 막는 장기이식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에서 고(故) 김유나양의 신장과 췌장을 이식 받은 미국인 킴벌리 오초아(가운데)씨가 김양의 어머니 이선경(오른쪽)씨에게 감사의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뉴스1

“유나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유나가 준 선물 덕분에 제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점을 알려드릴 수 있게 돼 더없이 기쁩니다.”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태평양을 건너 서울을 찾은 킴벌리 오초아(24)씨는 2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연신 흐느끼며 이렇게 말했다. 오초아씨 곁에는 2016년 당뇨 합병증으로 하루하루 혈액투석에 의지해 살던 그에게 신장ㆍ췌장을 이식해 주고 떠난 고(故) 김유나(당시 18세)양의 어머니 이선경(48)씨가 있었다. 김양은 미국 유학 중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후 장기를 기증해 오초아씨를 비롯해 미국인 6명의 생명을 살렸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주선으로 이식 4년 만에 처음 만난 둘은 서로의 손을 매만지고 껴안았다. 딸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던 이씨는 오초아씨, 그의 어머니 로레나(46)씨와 대화를 하며 조금씩 미소를 되찾았다. 이씨는 “건강한 모습을 본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됐다”며 “앞으로 고맙고 죄송하단 생각 말고 지내달라. 유나가 남기고 간 선물은 대가 없이 소중한 것이고 그 무엇도 아닌 킴벌리 자신의 것”이라고 말했다.

2016년 고(故) 김유나양의 신장과 췌장을 이식 받은 미국인 킴벌리 오초아(오른쪽에서 두 번째)씨와 김양의 어머니 이선경(왼쪽에서 두 번째)씨가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나 서로를 껴안고 있다. 맨 왼쪽은 김양의 아버지 김제박씨, 맨 오른쪽은 킴벌리의 어머니 로레나씨. 뉴스1
2016년 고(故) 김유나양의 신장과 췌장을 이식 받은 미국인 킴벌리 오초아(오른쪽에서 두 번째)씨와 김양의 어머니 이선경(왼쪽에서 두 번째)씨가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나 서로를 껴안고 있다. 맨 왼쪽은 김양의 아버지 김제박씨, 맨 오른쪽은 킴벌리의 어머니 로레나씨. 뉴스1

이날 만남은 국내에서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과 이식인이 만난 첫 사례다. 2005년 보건복지부의 장기기증 홍보 공익광고 촬영을 위해 첫 뇌사 장기기증인인 김상진(당시 31세)씨 어머니와 이식 수혜자들이 만난 것을 제외하곤 한번도 이런 만남이 이뤄진 적이 없다. 국내 장기등이식에관한법률 31조(비밀의 유지)가 기증 유가족과 이식인 간 교류를 금지하기 때문이다. 오초아씨는 장기 기증이 미국에서 이뤄져 만남이 가능했다.

장기기증운동본부는 기증인 유가족의 치유를 위해 이식인과의 교류가 허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족의 장기기증에 동의한 후 짧게는 6, 7개월에서 길게는 수년간 죄책감에 시달리는 유가족을 치유하고 장기기증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서다. 이식인이 원할 경우 서신이라도 주고 받도록 허용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기증인 유가족 자조모임인 ‘도너패밀리’의 장부순 부회장은 이날 만남을 지켜보고 “2011년 아들의 장기기증에 동의하고서 수년간 ‘잘한 일인가’란 생각에 후회했다”며 “아들의 생명을 이어받은 이식인이 건강히 살고 있다는 소식만 들었어도 큰 위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기증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중개기관을 통해 유가족과 이식인이 서신을 교환할 수 있다. 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장기기증을 활성화하기 위해선 기증인 유가족을 예우해 스스로 장기기증을 추천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국내 장기기증운동 30주년인 올해 반드시 잘못된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관심을 촉구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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