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장애인 비하 발언에 대해 ‘실수’라며 거듭 사과했지만 평소 장애인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 수준을 감안하면 이미 예견된 실수였다. 특히, 민주당이 총선 영입인재 1호로 발탁한 발레리나 출신 척수장애인 최혜영 강동대 교수의 환영행사 자리에서 이미 전조가 나타났다.
이 대표는 15일 민주당 공식 유튜브 채널의 ‘2020 신년기획 청년과의 대화’에 출연해 “심리학자로부터 들은 이야기”임을 전재로 “선천적인 장애인은 어려서부터 장애를 갖고 나오니까 의지가 좀 약하다고 한다. 사고가 나서 장애인이 된 분들은 원래 자기가 정상적으로 살던 것에 대한 꿈이 있어서 그분들이 더 의지가 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해 장애인을 비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해당 발언은 최 교수를 추켜세우는 과정에서 나왔다. 최 교수는 24세이던 2003년 교통사고를 당해 사지마비 척수장애 판정을 받았다. 그 후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 왔고, 이번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러브콜을 수락했다.
그런데 정작 지난해 12월 26일 민주당사에서 열린 인재영입 환영식에서는 이 대표를 비롯한 당내 인사들이 최 교수의 장애 정도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사회자는 사지마비 장애를 지닌 최 교수에게 무리인 포즈를 요구했고 참석자 대다수가 이를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화기애애(?)’하게 행사를 마무리했다.
이날 기념촬영 순서를 진행하던 양향자 전 최고위원이 “제가 ‘더불어민주당’ 하면 ‘파이팅’ ‘최혜영 파이팅’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가락 하트를 만들며) ‘사랑합니다’ 해 주십시오”라고 제안했다. 기념촬영에 응한 참석자들은 양 전 최고위원의 선창에 따라 주먹을 쥐고 ‘파이팅’을 외쳤는데, 사고 이후 손가락 움직임이 불편한 최 교수만은 주먹을 쥐지 않았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사랑합니다’라는 마지막 구호와 함께 양 전 최고위원을 따라 모두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였을 때도 최 교수는 손가락 대신 두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카메라 플래시가 잇따라 터지는 동안 곁눈질로 최 교수의 두 손 하트를 발견한 양 최고위원이 다급히 “큰 하트 작은 하트 중간 하트 한 번 해주세요”라고 제안했다. 웃음 소리와 함께 참석자들의 포즈는 두 팔 하트를 거쳐 두 손 하트로 통일됐다.
이 대표는 물론 기념촬영에 응한 누구도 하트의 크기가 변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심지어 두 손 하트를 만들면서 누군가 “이건 안 해 봤는데…”라며 우스개 소리를 하자 웃음 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눈부신 플래시 세례 속에서 사회자의 제안과 다른 포즈를 취해야 했던 최 교수는 연신 웃음을 지었지만 당황하지 않았을 리 없다.
물론, 영입인재 1호로 장애인을 발탁한 만큼 이날 민주당의 행사 준비는 치밀했다. 이 대표와 윤호중 사무총장 등이 휠체어를 탄 최 교수와 함께 보조를 맞춰 행사장에 입장했고, 당헌 당규집을 전달하거나 기자회견을 할 때에도 휠체어에 앉은 최 교수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의자를 준비했다. 그러나 정작 최 교수에겐 무리였을 포즈를 잇따라 제안하며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장애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보다 전시ㆍ홍보에만 열을 올린 민주당의 수준을 증명한 것은 물론, 정치를 통해 소외 계층에게 평등하고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겠다는 영입의 취지마저 스스로 무색하게 만들고 만 것이다.
특정인의 장애 정도를 언급하는 일은 극히 조심스럽다. 환영행사 직후 집권 여당의 장애 감수성 결핍을 꼬집어야 할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기사화하지 않은 것은 그 과정에서 당사자의 피해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 이 대표 등 정치인의 장애인 비하 발언이 잇따르고 있어 뒤늦게나마 장애에 대한 정치권의 인식 수준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15일 이 대표의 장애인 비하 발언을 비판하던 박용찬 자유한국당 대변인 또한 장애인을 비하해 역풍을 맞았다. 박 대변인은 이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장애인이 아니다. 삐뚤어진 마음과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장애인”이라고 지적해 스스로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고 말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16일 성명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장애인 차별 발언을 비판한다”면서 “장애인 차별 발언으로 마무리한 자유한국당도 장애인 차별 발언을 제발 멈추어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홍인기 기자 hongi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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