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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구 “자본주의 모순 깊어도 사회주의는 대안 못 돼… 제3의 길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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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구 “자본주의 모순 깊어도 사회주의는 대안 못 돼… 제3의 길 찾아야”

입력
2020.01.21 04: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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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크탱크 ‘니어재단’ 이사장 인터뷰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지난 16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을 평가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문 대통령의 ‘부동산 가격 원상회복’ 발언은 잘못된 꿈”이라며 “무리한 정책을 펼수록 늪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형기 인턴기자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지난 16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을 평가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문 대통령의 ‘부동산 가격 원상회복’ 발언은 잘못된 꿈”이라며 “무리한 정책을 펼수록 늪에 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형기 인턴기자

“세계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모순이 부각되는 가운데, 양극화 심화와 사회 갈등 확산을 막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그 반발로 사회주의 정책에 대한 향수가 커지고 있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사회주의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정덕구 니어(NEAR)재단 이사장은 지난 16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 경제가 축소되어도 잘 나누며 사는 것이 좋다는 사회주의적 사고”라며 “시장경제와 사회안전망을 동시에 추구하는 제3의 길을 찾아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정 이사장은 현재 정치ㆍ경제ㆍ사회 상황을 과거 중국 공산당을 휘감았던 논쟁인 ‘홍(紅ㆍ이데올로기)’과 ‘전(專ㆍ실용)’을 인용해 분석했다. 그는 “촛불 정국에서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전반부 내내 ‘홍’을 앞세워 국정 전반을 휘몰았다”며 “정치ㆍ사회 각 분야를 장악한 정부는 대표적 ‘전’의 영역인 경제정책마저도 홍의 시각에서 바라봤다”고 평가했다. 그는 “집권 후반부에는 전을 중심으로 경제정책 라인을 재편해야 한다”며 “상처받은 시장경제 체제도 되살려 민간이 제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정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기자회견에서 밝힌 ‘부동산 원상회복’ 의지에 대해 “부동산 시장 가격을 강압적으로 원상회복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꿈”이라며 “무리한 정책을 펼칠수록 늪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은 정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총선을 앞둔 시점이다. 문 정부 전반기 경제정책을 평가한다면.

“무엇보다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잘못됐다. 촛불의 바람을 타고 진보 진영은 ‘세력교체’를 내걸었다. 이는 정치ㆍ사회 분야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경제에는 교체할 세력이라는 게 없다. 최저임금 인상, 52시간제 도입 등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경제를 희생시킨 대표 사례다. 이로 인해 좋은 일자리는 사라지고 중산층 붕괴가 가속화하는 ‘축소 불균형’이 심화됐다. 경제는 살짝만 건드려도 움츠러드는 달팽이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우리 경제가 추락기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무리한 정책은 ‘떨어지는 와중에 정수리를 친 격’이 됐다.”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인가.

“정책을 이념 중심인 ‘홍(紅)’의 시각에서 바라보다 보니 부문간 충돌이 일어났다. 자본과 노동, 기업과 가계 등은 서로 균형을 갖춰야 하는데, 이를 대립 구도로 놓고 정책을 입안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정책이 나올지 모른다는 불확실성과 목표 간 충돌 때문에 경제 주체들이 움츠리게 됐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과 교육 정책의 엇박자다. 한쪽에서는 특목고, 자사고를 없앤다며 학군 좋은 강남에 주택 수요를 몰리게 하고, 다른편에서는 강남 집값을 잡으려 고강도 수요억제 정책을 펼친다. 정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하고 세력 교체를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지만 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서로 역작용을 했다. 컨트롤타워가 돼야 할 청와대가 정책 조정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

-집권 반환점을 넘어서며 경제정책 기조가 바뀐다는 시각도 있다.

“이제는 시장 가격에 직접 개입한 것이 실수였다는 인식을 하는 것 같다. 적어도 ‘상처 난 데 소금 뿌렸다’는 것은 알게 됐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주52시간 보완책을 세운다거나,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러나 아직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 이 정도 보완책으로는 부족하다. 가장 큰 문제는 공급망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재벌개혁을 명분으로 기업을 공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재벌은 잘못하는 것이 있다면 공정성 차원에서 다루면 되지만 교체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자칫 그 동안 기업이 축적한 자산을 잃을 수도 있다.”

-문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청와대의 정책 담당자들을 정책 중심의 ‘전(專)’으로 바꿔야 한다. 청와대와 국회, 기획재정부의 컨트롤타워가 한 몸이 되지 않으면 추세적인 성장률 추락을 막을 수 없다. 특히 경제정책에서는 관료나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이들과 큰 비전에 공감하면서 이들의 경제 진단과 국정 노하우를 집행에 반영해야 한다. 정부가 성장률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상황에서 다시 민간이 경제의 80%를 주도할 수 있도록 회복시키는 것이 우리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

“혁신경제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정부와 민간이 혁신성장의 기본 방향을 공유하고, 관료들이 만든 족쇄에서 기업들을 풀어줘야 한다. 구석구석 남아 있는 산업 규제를 틀지 않으면 혁신성장은 정치 구호에 그칠 뿐이다. 교육개혁도 필요하다. 대학들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인재를 키울 수 있도록 하는 자율권을 줘야 한다.”

-정부도 혁신성장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고 있다.

“정부 주도 성장이 지속되면 얼어붙은 민간이 정부를 따르지 않는다. 수소경제 같은 몇 분야에서 시늉만 할 뿐이다.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산업관련 부처 등 관료들이 규제를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개혁해야 한다. 타다 논란에서 보듯, 규제완화의 대부분은 이해조정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일본 같은 ‘L’자형 저성장에 빠질 거란 우려가 높다.

“올해 성장률도 2% 수준을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라고 본다. 우리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L자형 장기침체가 5년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장기 추세선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정부의 2.4% 성장 전망치는 반도체 가격 상승 등의 변수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본 측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반등을 하겠다’는 정치적 선언에 가깝다. 문제는 이를 뒷받침할 정책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재정 투입을 통한 사회간접자본(SOC) 확대는 민간의 성장으로 이어지기는 힘든 측면이 있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이렇게 내려앉은 원인은 무엇인가.

“우리 경제의 발전 단계를 되짚어보면 일본 등 선진국을 추격 하던 ‘추격기’와 일부를 뛰어넘었던 ‘추월기’, 그리고 ‘장기 정체기’로 구분된다. 현재 장기 정체기의 시발점이 된 것은 금융위기다. 그 때 많은 것을 바꾸면서 새로운 성장의 기반을 닦았어야 했는데 급락한 성장률을 지키려고 무작정 재정을 투입한 것이 문제였다. 확장재정의 맹점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 그리고 민간의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과거 정부에서부터 이어져 온 문제라는 말인가.

“지난 20년간 보수와 진보 양 진영 모두 양극화 해소와 창조적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실패했다. 미래지향적으로 문제를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수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승자 독식을 방치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피난처 조성을 등한시 했다. 이에 따라 양극화도 심해지고 사회적 갈등은 더 커졌다. 진보는 이를 혁신하는 대신 세력 교체에만 몰두했다. 혁신은 게을리 하고 ‘표(票)퓰리즘’만 일삼았다. 그 결과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한 채 우리 경제에 축소 불균형만 가져왔다.”

-보수 진영의 실책도 만만치 않다는 얘기인가.

“양 진영 모두 공동체보다 진영의 이익만 우선시했다. 우리나라의 보수는 농익어 고린내 나는 참외가 돼버렸다. 오래 된 참외는 멀리서 보면 노랗고 예쁘게 생겼지만 가까이 가 보면 먹을 게 없고 고린내도 난다. 우리나라의 보수도 마찬가지로 농익었다. 새 것으로 바꿔야 한다. 보수는 그 동안 양극화를 방치한 데 대한 반성과 자책을 해야 한다. 야당이 야성을 찾지 못하면 초식동물처럼 유린당할 뿐이다. 그러면 국민들은 예쁘고 맛있지만 독이 든 사과(진보)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국민들은 온 몸에 서서히 독이 퍼지는 줄도 모르고 맛있게 먹을 뿐이다.”

-진보 진영은 무엇을 경계해야 하나.

“노동의 정치세력화다. 촛불 정국에서 민주노총의 역할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노동 현장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문 대통령이 정권 초반에도 유일하게 장악하지 못한 세력이 노동계였다. 노동계도 자신이 약자로 대접받을 때와 지금은 국민의 시선이 다르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급속한 산업전환이 이뤄지는 가운데 노조가 기득권을 주장하는 것은 노동 개혁의 최대 걸림돌이다. 노조는 이익집단화 되는 것을 경계하고 대통령도 더 이상 노조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문 대통령이 ‘부동산 가격 원상회복’을 언급했다.

“원상회복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정책을 펼치겠다는 의지이지, 가격은 인위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게 아니다. 만약 통제하겠다고 한다면 대만처럼 정부 수립 초기에 토지공개념을 도입하고 개인의 토지 소유를 제한했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너무 멀리 왔다. 토지거래허가제 같은 개념도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어려운 주제다. 세금이나 부담금 같은 경제적인 수단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세입자에게 전가될 뿐이다. 시장 수급 균형의 기본 틀에서 벗어나 무리한 정책을 펼칠수록 더 늪에 빠지게 될 것이다.”

-서울 집중에 대한 해법이 있을까.

“지방 위성도시의 서울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출퇴근이 쉽도록 하고 교육이나 정주 환경을 끌어올려서 ‘굳이 비싼 데 살 필요 없다’는 인식을 하게 해야 한다. 독일 방식의 장기임대주택 도입도 고려해 볼 만하다. 지방 정부가 장기 채권을 발행해 시중에 풀린 유동자금을 흡수하고, 이 돈을 활용해 30년 장기 임대주택을 건설하는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도 우리 정부의 당면 과제다.

“출산 장려금 정책은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역대 정부가 왜 사람들이 아이를 안 낳는지 고민하지 않고 무작정 예산만 퍼부었다. 출산 대책을 각 부처에 맡기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대통령이 진두지휘 해 출산 생태계 전반에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직업의 불안정성, 그리고 맞벌이 문제다. 조산원, 탁아소를 늘려 국가가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왜 아이를 낳아야 하는 지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한다. 노동력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고숙련 기술자를 받아들인다는 결단을 내릴 필요도 있다. 단순 노동자 위주인 지금의 외국인 이주 정책은 우리나라의 인구 생태계를 어지럽힐 뿐이다.”

-경제를 둘러싼 대외 여건도 만만하지 않다.

“현재 우리 주변을 둘러싼 가장 큰 문제는 공급망의 훼손이다. 미국이 ‘워싱턴 컨센서스’를 버리고 자국 중심주의로 가면서 전 세계 산업의 협력 구도, 즉 ‘밸류 체인’이 무너지고 있다. 이런 갈등 국면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나라는 한국과 독일 등 제조업 중심 국가다. 특히 우리나라는 고용, 소득의 상당 부분이 제조업과 연계돼 있어 더 문제다.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존 제조업에서 한 단계 발전한 첨단 제조업을 발굴해야 한다.”

-중국의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이 중국에 너무 깊숙이 들어갔다는 것이 가장 큰 위협 요인이다. 미국이 중국을 속박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입는 부정적 영향이 한국에 그대로 전이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계속 중국을 견제하는 한,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미중 사이에서의 생존방정식이 앞으로의 우리 성장 기반에 큰 영향을 준다. 중국의 부채 문제를 가장 우려해야 할 수도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빚을 해결하지 못하고 쓰러지면 우리 세계에는 이를 눕힐 침대가 없다.”

인터뷰=김용식 경제부장 jawohl@hankookilbo.com

정리=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정덕구 이사장은

2007년부터 씽크탱크 니어(NEAR)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동북아 정책 전문가다. 고려대 상학과를 졸업한 뒤 1971년 행정고시(10회)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외환위기 직후 국제통화기금(IMF) 협상과 뉴욕 외채협상 수석대표, 재정경제부 차관 등을 지내며 환란을 수습했다. 이후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하며 벤처 붐을 일으키고 부품ㆍ소재산업 육성에 매진했다. 2004년에는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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