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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광화문에 왜 매일 저녁 유령이 생길까

입력
2020.01.17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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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ㆍ경제부총리, 고용 V자 반등 자랑해도

유령근무, 실업급여ㆍ최저임금 누수 만연

나라 살림 걱정하며 시장 현실 직시해야

홍남기(왼쪽 세번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19년 고용동향 및 정책방향 관련 합동브리핑에서 지난해 고용사정이 대폭 개선됐다는 내용의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남기(왼쪽 세번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19년 고용동향 및 정책방향 관련 합동브리핑에서 지난해 고용사정이 대폭 개선됐다는 내용의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4년 전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의 얘기다. 당시 젊은 재벌 총수가 선대 회장과 달리 수행원 없이 혼자 가방 들고 해외 출장을 다니는 게 화제였다. 친분 있던 해당 그룹 주재원과 애기를 나누게 됐다. “젊은 회장님 덕분에 편하게 됐겠네요”라고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순진한 말씀입니다. 회장님을 혼자 다니시도록 하겠습니까. 회장님도 눈치 채지 못하게 쫓아다니며 경호하느라 훨씬 더 힘들게 됐습니다.” 대통령이나 장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등 고위층 의사결정이 현장에서는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걸 보여 준 좋은 사례라고 생각했다.

청와대와 경제부총리가 지난해 고용시장이 ‘V자’ 반등에 성공했다고 발표하는 걸 보고 그때 일이 떠올랐다. 최근 만난 대기업 임원, 고위 공무원, 중소기업 사장 등이 전하는 현장 분위기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정부의 V자 반등 발표 전날에 만난 대기업 임원은 “우리 회사 광화문 사무실에는 저녁마다 유령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주 52시간 근무제에 맞추려고 몇몇 직원을 전산시스템으로는 퇴근 처리한 뒤 뒷문으로 불러들여 다시 근무토록 한다는 것이다.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엄연히 일하는 사람들을 ‘유령’이라고 부른다”며 “편법 혹은 불법인줄은 알지만 획일적인 규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주 만난 고위 공무원은 “운동권 출신 청와대 참모들이 현실을 너무 모른다”며 “최저임금 인상이 불필요한 국부 유출로 이어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최저임금 적용 대상에 외국인 근로자까지 획일적으로 포함시키는 게 문제라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최저임금(2017년 월 135만원→2020년 월 179만원)이 대폭 올랐는데, 100만명가량의 외국인 근로자들의 임금이 그만큼 올랐다면 3조원가량이 추가로 지급됐다는 계산이다. 이 공무원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덜어준다는 명목으로 매년 2조원 이상의 세금이 ‘일자리 안정자금’에 투입되고 있는데, 그 혜택의 상당수가 외국인 근로자의 해외 송금으로 단숨에 빠져나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인 근로자를 차별해서야 되겠느냐’고 묻자, 홍콩 싱가포르 등은 자국 체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해당 국가의 구매력을 기준으로 임금을 차등 적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우리 형편이 홍콩이나 싱가포르보다 나은 게 아니지 않느냐”며 “국제노동기구(ILO)나 민주노총은 명분상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 없는 대우를 주장할 수 있지만, 나라 살림을 걱정하는 입장에서는 현실이 어떤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사장은 실업급여 지원 대상과 규모가 확대되면서 노동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바보 취급 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탄했다. 정부의 ‘친노동 정책’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근로 의욕을 높이는 게 아니라 게으름뱅이를 위한 제도로 악용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에 따르면 구인난 끝에 최근 가까스로 고용한 직원이 갑자기 찾아와 “그만두겠다”면서 황당하게도 스스로 그만둔 게 아니라 회사에서 해고한 걸로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A사장은 “요구를 거절하자 이 직원의 복수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지방노동청에 신고를 하기 시작했다. 신고가 들어올 때마다 조사를 나와야 하는 노동청 관계자가 “웬만하면 회사가 해고한 걸로 해주라”고 부탁하기에 이르렀지만, A사장은 “조금 피곤하더라도 절대 그럴 수 없다”고 거부했다.

A사장의 하소연이 믿기지 않아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비슷한 증언이 수두룩했다. 어떤 사업자는 “실업급여에 맛이 들린 사람들은 6개월만 일하고, 6개월 실업급여 타먹는 짓을 반복하고 있다. 실업급여가 기생충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런 상황을 알고도 정부가 V자 반등 자화자찬을 했다면 뻔뻔한 거고, 모르고 그랬다면 세금 내는 국민들이 불쌍할 따름이다.

조철환ㆍ뉴스3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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