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 마음이 진짜.” 예순이 넘었지만 무대에서 아이돌 못지않은 카리스마를 뽐내고 있는 트로트 가수 김연자씨의 흥행곡 ‘아모르 파티’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마음만 먹으면 나이와는 무관하게 즐기며 살 수 있다는 의미다. 라이프 트랜드 전문가들은 실제 나에게 편하고 실용적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에이지리스(Ageless)’ 시대가 열렸다고 입을 모은다.
대표적인 사례가 ‘성인용 분유’다. ‘아이도 아닌 성인이 왜 분유를 먹어?’라며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미 국내에서는 성인용 분유가 판매되고 있다. 분유를 먹는 어른들을 위한 시장이 만들어진 것이다. 2018년 11월 음료, 씨리얼바, 분유(파우더) 등 성인영양식 ‘셀렉스’를 선보인 매일유업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성인영양식 매출액이 200~250억원에 달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분유를 가장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손쉽게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어 다이어트는 물론 건강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심리학자들은 성인용 분유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익숙함과 신뢰감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어릴 적 동생이 먹을 분유를 빼서 먹다가 엄마에게 혼이 난 기억들이 있을 것”이라며 “분유는 어린 시절 추억을 상기시키면서 뭔가 다른 음식보다 신뢰가 가고 편안해 선택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도 “노인들은 과거 분유를 타 먹이면서 아이를 보살핀 것처럼 이제 자신이 분유를 먹으며 보살핌을 받는 심리적 안정을 느낄 수 있다”며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과 고령화 사회를 맞은 일본이 2014년부터 성인용 분유시장이 형성된 것도 노인들의 신체적 조건은 물론 정신적 측면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에이지리스’ 관련 상품은 ‘교육 시장’에서도 쑥쑥 성장하고 있다. 학창 시절 그렇게 풀기 싫었던 학습지를 해외여행은 물론 승진시험 준비를 위해 풀고 있는 성인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자 등 과목도 다양하다. 실제 교원구몬 자료에 따르면 2013년 1만8,000명이던 성인 학습지 회원 수는 2015년 2만5,000명, 2017년 5만5,000명, 2019년 6만1.000명으로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성인회원들은 바쁜 와중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공부할 수 있고 지적 욕구까지 충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다. 곽 교수는 “무엇을 배우려 해도 정보가 너무 많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성인들에게 학습지는 안성맞춤이 될 수 있다”며 “여기에 어릴 적 학습지를 열심히 풀면 공부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심리와 학습지를 풀던 시절에 대한 향수도 작용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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