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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리포트] AR로 Z세대 놀이문화 만든 샐터스

입력
2020.01.20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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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회] 박정철 대표 “우리는 손을 먼저 봅니다”

요즘 Z세대(1995년 이후 태어난 13~24세 청년) 여성들 사이에 새롭게 뜨고 있는 인터넷 놀이문화가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를 끄는 ‘픽네일’ 사진찍기다. 픽네일이라는 스마트폰용 소프트웨어(앱)를 사용해 손 사진을 찍은 뒤 이를 사회관계형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이다. 사진 한 켠에 픽네일 표시가 붙어서 금방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동일인이 같은 장소에서 찍은 여러 장의 사진마다 손톱 장식이 계속 바뀐다. 픽네일은 바로 마술처럼 손톱 장식을 새롭게 바꿔주는 앱이다. Z세대 여성들은 이를 이용해서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장소를 배경으로 다양한 손 사진을 찍어 올린다. 지난달 중순에 나온 앱이 한 달 사이에 약 2만건의 내려받기 횟수를 기록하며 이용자가 계속 늘고 있다.

여성들을 위한 아기자기한 아이템인 픽네일은 뜻밖에도 손톱과 무관한 대기업 삼성전자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면에는 인공지능(AI)과 증강현실(AR)이라는 21세기를 이끌어갈 묵직한 기술들이 녹아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박정철 샐터스 대표가 픽네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박정철 샐터스 대표가 픽네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형기 인턴기자

◇AI와 AR을 결합해 만든 신세계, AR 커머스

픽네일을 만든 곳은 삼성전자의 사내벤처 육성프로그램인 ‘씨랩’ 출신의 샐터스다. 2014년 삼성전자의 무선사업부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던 박정철(40) 대표 등 6명이 사내 신생(스타트업) 기업 형태로 샐터스를 만들었다. 이들이 처음 개발한 것은 가상현실(VR)과 AR을 접목한 소형 빔 프로젝터였다. AR은 눈 앞에 보이는 영상에 정보를 추가해 보여주는 기술이다.

특이한 것은 벽에 투사하는 일반 빔 프로젝터와 달리 노트를 펼친 것처럼 바닥에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에 터치 기술을 적용해 스마트폰처럼 영상을 누를 수 있는 신기술이었다. 이를 위해 기기가 손을 인식하게 만드는 VR과 AR 연구가 필수였다.

이들은 혁신적이고 기발한 아이디어 덕분에 이듬해 씨랩에 선발됐다. 씨랩에 선발되면 1년간 삼성전자가 운영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지원한다. 이후 기존 사업과 연계할 만한 아이템이 개발되면 삼성전자가 흡수하고, 그렇지 않으면 분사해서 새로운 기회를 찾게 된다. 대신 분사할 때 삼성전자를 퇴사하는 구성원들에게 원하면 5년 뒤 다시 삼성전자로 돌아갈 수 있는 권리를 준다.

샐터스 구성원들은 씨랩에서 열심히 개발해 시제품까지 준비했으나 양산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 제품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연구 방향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재작년 말에 일본 소니에서 같은 제품을 내놓았어요. 중국 업체도 유사한 제품을 개발했구요.”

박 대표와 뜻을 함께한 구성원들은 2016년 분사를 결정하고 사명을 라틴어로 도약이라는 뜻의 샐터스로 정했다. 그리고 2017년 2월에 정식 법인 등록을 마쳤다.

삼성전자를 그만두는 것은 힘든 결정이었다. 박 대표의 아내와 지인들도 모두 말렸다. “왜 안정적인 회사를 나오려고 하냐며 모두 말렸죠. 마치 사막 한가운데 홀로 남겨지는 줄 알았나 봐요.” 그래도 삼성벤처투자에서 창업 자금을 지원하기 때문에 다른 스타트업에 비하면 유리한 조건이었다.

졸지에 생존경쟁의 정글로 뛰어든 박 대표는 살아남기 위해 수익화 사업을 고민했다. 그 결과 찾아낸 것이 그동안 연구한 손 인식 기술에 AR과 AI를 접목한 픽네일 사업이었다.

원리는 간단하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손을 촬영하면 AI가 손톱 부분을 인식한 뒤 여기에 맞춰 AR로 손톱에 붙이는 장신구(액세서리)인 ‘네일 스티커’와 ‘네일 팁’을 덧입힌다. 사진을 찍을 때 촬영 각도와 손 모양에 따라 손톱 모양도 달라지는데 AI가 이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여기에 네일 팁과 네일 스티커를 실제처럼 붙이는 AR 기술이 핵심 경쟁력이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기술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손톱 모양이 모두 다르고 사진 찍을 때마다 변하거든요. 오랫동안 손을 연구하며 쌓은 기술과 경험이 풍부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샐터스는 손톱에 적용할 만한 손톱 관련 제품들을 미리 디지털 이미지로 만들어 놓는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손톱 제품들의 디지털 이미지가 축적되면서 자료로 쌓였다. 이렇게 AI가 만들어 놓은 디지털 이미지를 사진 속 손톱에 AR 기술로 덧입히는 것이다. 이용자는 AI가 추천하는 제품을 적용할 수도 있고 직접 고를 수도 있다. AR로 적용한 제품이 마음에 들면 바로 구매할 수 있다. 구매 버튼을 누르면 해당 제품을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로 연결된다.

샐터스의 픽네일 앱. 샐터스 제공
샐터스의 픽네일 앱. 샐터스 제공

모든 서비스는 무료다. 회원 가입도 없고 이용자나 업체 모두 손톱 관련 제품을 구매하거나 팔아도 수수료를 내지 않는다.

박 대표는 픽네일을 플랫폼 사업으로 보기 때문에 아직 매출보다 이용자를 모으는 일을 우선한다. “이용자가 늘어나면 광고 유치 등 수익 사업을 챙겨야죠. 이용자와 사업자들이 모이는 플랫폼 사업은 이용자가 많아야 여러 가지 사업을 할 수 있거든요.”

픽네일에 연결돼 있는 쇼핑몰은 10여개. 이 곳에서 340여종의 손톱 관련 제품들을 볼 수 있다. “매달 3,4개씩 쇼핑몰을 추가로 연결할 생각이에요. 당연히 제품 종류도 증가할 겁니다.”

박 대표는 삼성전자에서 분사하기 전에 시장 조사를 충분히 하며 세 가지 가능성을 봤다. 우선 관련 시장이 생각보다 크다는 점이다. “특정 업체 한 곳에서만 손톱 관련 제품의 연 매출이 1,500억원 이상이에요. 그만큼 Z세대 여성들에게 손톱을 꾸미는 일은 자기를 알리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에요. 손톱이 캔버스가 되는 거죠.” 그래서 수지, 태연 등 정상급 아이돌 스타들이 제품 광고 모델을 하고 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정보 비대칭의 틈새가 있다는 점이다. “포털에서 손톱 관련 제품을 검색하면 너무 많아서 역설적으로 고르기 힘들어요. 반면 특정 업체 홈페이지에서는 다양한 제품을 볼 수 없죠.” 샐터스는 이 문제를 AI 추천으로 해결했다.

결정적으로 온라인 쇼핑몰이든 실제 매장이든 어디서도 제품을 손톱에 미리 적용해 볼 방법이 없다. “매장에 방문해 포장된 상태 그대로 손가락 옆에 슬쩍 대보는 것이 전부에요. 과연 손톱에 착용했을 때 얼마나 어울릴지 알 수 없죠.”

이런 점 때문에 픽네일은 Z세대 뿐 아니라 30,40대 여성들까지 흡수하고 있다. “30,40대 여성들도 픽네일을 이용해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많이 올려요.”

그만큼 박 대표는 시간이 흐를수록 픽네일 이용자가 증가할 것으로 본다. “손톱 관련 제품의 매출은 5,6월에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노출이 늘면서 손,발톱을 더 많이 꾸미죠.”

그래서 요즘 박 대표의 관심은 손을 지나 발로 향하고 있다. “날이 더우면 샌들처럼 발가락이 노출되는 신발을 많이 신어 발톱을 꾸미는 ‘패디’ 제품 판매가 늘어납니다. 여기 맞춰 발톱 제품도 AR로 미리 적용해 보는 서비스를 여름에 추가할 예정입니다. 손톱과 발톱은 크게 차이가 없거든요.”

[저작권 한국일보]픽네일로 박정철 샐터스 대표의 손을 촬영해 AI와 AR을 이용해 손톱 제품을 덧입혀 봤다. 박형기 인턴기자
[저작권 한국일보]픽네일로 박정철 샐터스 대표의 손을 촬영해 AI와 AR을 이용해 손톱 제품을 덧입혀 봤다. 박형기 인턴기자

◇”성공해서 삼성에 돌아가지 않는 것이 목표”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박 대표는 2005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10년을 넘게 다녔다. 그만둔 것에 대해 미련은 없다. “오히려 삼성에서 나오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겁니다. 목표는 반드시 성공해서 삼성에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삼성은 제가 거쳐가야 할 인생의 과정 중 하나에요. 종착역이 어디일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는 이제 AI와 AR로 새로운 승부를 걸었다. 다행히 그들이 개발한 AI는 국제 AI 대회 플랫폼인 캐글에서 여러 개의 동메달을 받을 만큼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박 대표는 집에서 쉴 때 손톱 제품을 직접 사용해 보며 ‘AR 커머스’를 구상하고 있다. “AR로 손톱 제품을 적용해보면서 이를 패션, 뷰티 등으로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AR이 사람들의 구매욕을 자극하거든요. AR이 촉발하는 전자상거래를 우리는 AR 커머스라고 부릅니다.”

올해 목표는 앱 내려받기 횟수를 100만건 이상 올리는 것이다. “그 정도 되면 이용자 기반의 각종 사업을 해 볼 수 있죠. 이를 위해 유명인들과 픽네일을 알리는 작업도 준비 중입니다.”

다음 단계는 해외 진출이다. “해외에서도 국산 손톱 관련 제품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손톱 스티커는 국내 제품이 해외에서 잘 팔립니다. K뷰티를 등에 업고 AR커머스를 해외로 확대해 볼 생각입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겸 스타트업랩장 wolfpa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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