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호의 실크로드 천일야화] <51> 아프리카 사파리는 바오바브나무의 천국
사자 한 마리가 탄자니아 타란기리 사파리에서 하품을 하고 있다. 사자 가족들은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전준호 기자

※실크로드는 문명 교류의 통로다. 1877년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 호펜이 처음으로 이름붙인 실크로드(독일어 자이덴슈트라센 Seidenstrassen)는 21세기에도 문명 교류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20세기 후반에 제국주의 열강으로부터 독립한 아프리카는 이제 가장 성장 잠재력이 큰 대륙으로 세계 속에 우뚝 서고 있다. 세계의 러브콜이 몰리면서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펼쳐지고 있는 땅, 자연과 문명이 공존하는 아프리카를 다녀왔다.

사파리 짚차가 탄자니아 도로를 달리고 있다. 탄자니아에서는 차량이 도로 왼쪽으로 달린다. 전준호 기자

아프리카는 최초의 인류를 잉태한 땅이다. 1974년 에티오피아에서 화석으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데쿠스 아파렌시스가 주인공이다. 320만년 전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인간은 키 1m 정도의 여성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서양인 냄새가 물씬나는 ‘루시’다. 그런데 지난해 루시는 최초 인류의 타이틀을 내줘야 했다. 390만년 전 인류로 밝혀진 오스트랄로피데쿠스 아나멘시스 때문이다. 그 역시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됐다. 아프리카는 문명이 탄생하기 전 인류의 뿌리다.

아프리카로 가는 길은 멀었다. 우리나라에서 아프리카로 가는 루트는 대부분 홍콩이나 방콕, 도하, 두바이, 아부다비 등을 경유한다. 직항이라고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가 유일하다.

여행객들이 타란기리 사파리 바오바브나무를 감상하고 있다. 이 나무에는 허리 높이에 성인 20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나 있다. 전준호 기자

지난해 11월9일 오전 7시30분(현지시각) 비행기는 인천에서 13시간 걸려 아디스아바바 공항에 도착했다. 주기장에 내린 피끓는 한 여행객은 “드디어 아프리카다”며 콘크리트 바닥에 입을 맞췄다. 여행지에서 감흥이 넘치는 것은 흉이 아니다.

공항버스는 입국자와 환승객을 나눠 실었다. 버스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행 비행기 앞에서 환승객을 쏟아 놓더니 다시 케냐 나이로비행 비행기 앞에 선다. 부리나케 버스에서 내려 트랙을 밟고 올라섰다. 처음 보는 환승방식이다.

비행기 출발은 오전 8시30분. 그러니까 환승시간이 1시간에 불과했다. 페루 리마공항에서 1시간의 환승수속 중 여권분실 소동을 빚은 당사자로서 짧은 환승시간이 너무 불안했다. 용케 환승에 성공했지만 벌써 귀국길이 걱정됐다. 케이프타운에서 아디스아바바를 거쳐 인천으로 날아가는데 환승시간이 20분에 불과했다. 항공사에 수 차례 확인할 때마다 “비행기 놓친 승객은 없다”는 말만 돌아왔다.

하지만 실제로 귀국길은 아찔했다. 아디스아바바 공항 주기장에서 버스로 이동할 줄 알았는데 공항청사 안을 통과한 것이다. 줄은 긴데 가방검사까지 하다 보니 20분은커녕 2시간은 걸릴 형편이었다. “비행기 놓친다”며 새치기해서 인천행 에티오피아항공 탑승구로 가보니 문만 열어놓은 채 파리를 날리고 있었다. 버스에 타고서야 안도의 한숨이란 걸 내쉬었다. 1시간 가까이 걸렸지만 비행기는 기다리고 있었다.

얼룩말 한 마리가 탄자니아 타란기리 사파리에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전준호 기자

나이로비에서 내려 미니버스에 올라 탄자니아 국경까지 달렸다. 다시 출입국 수속을 밟고 차량에 몸을 실었다. 5시간 정도 육로를 달려 사파리로 가는 중간기착지 아루샤에 도착했다. 사파리는 스와힐리어로 여행이란 뜻이다.

파김치가 된 몸덩어리는 아루샤의 야경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죽은 듯 잠에 취한 다음날 아침 모텔급 호텔 앞에는 사파리 전용 지프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아프리카가 피부로 다가왔다.

가이드 겸 운전기사는 9개월짜리 딸을 둔 30대 중반의 토니였다. 4일간 같이 지낼 그는 킬리만자로산을 사이에 두고 아루샤 동쪽에 있는 도시, 모시 토박이다. 육로를 이동하면서 익숙해졌나 싶었는데 깜박했다. 영국 영향권에 있다 보니 주행차로와 운전석이 우리와 반대쪽에 있는데도 난 자꾸만 오른쪽 문을 열고 있었다.

현지 마켓에 들러 과일과 생수를 잔뜩 샀다. 돈 쓸 맛이 나는 물가였다. 이제 타란기리 국립공원까지 달리는 일만 남았다.

타조 한 마리가 목을 높이 빼들고 울고 있다. 앞발 킥을 맞으면 맹수라도 치명상을 입는다. 전준호 기자

타란기리는 ‘물이 있는 강’이란 현지어다. 동물 머리뼈가 군데군데 올려진 입구 쉼터에서 도시락 점심을 먹었다. 야외 간이식탁에서 치킨과 빵, 주스, 계란 등이 들어있는 도시락을 여는 순간 이곳에 쏠린 수 많은 눈길이 느껴졌다. 바분 원숭이였다. 토니가 “도시락 뚜껑을 열어놓지 마라”고 했다. 뚜껑을 닫아놓고 하나씩 꺼내 먹으라는 충고였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원숭이 한 마리가 치킨 조각 하나를 낚아채 도망갔다. 그 녀석을 쫓는 원숭이 무리가 생겼다. 원숭이 울음소리 만으로도 벌써 동물의 왕국에 발을 내디딘 느낌이 물씬 났다.

사파리 차량은 8인승이었다. 150-600㎜ 망원렌즈를 장착한 덕분에 운전자 옆자리에 앉게 됐다. 바퀴도 크고 차체도 높았다. 장갑차에 올라 탄 느낌이었다.

사파리 여행객들이 흙으로 목욕을 하고 있는 코끼리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전준호 기자

이 차량은 굴러다니는 요새였다. 모래 바람과 사바나 동물 세계 한복판에서 인터넷과 카카오톡에 목마른 신인류에게 와이파이를 제공한 것이 첫 번째다. 속도는 좀 느리지만 방금 찍은 사자 사진을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께 전송할 수 있었다. 다들 고성능 카메라로 동물 사진을 찍다가도 휴대폰을 꺼내 카톡으로 전송하느라 분주했다.

사파리 지역에 진입하면 이 차량은 외부와 봉쇄된다. 수풀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맹수 때문에 절대로 내릴 수 없다. 옛날 화장실이 급해 아우성을 치던 여행객이 운전기사의 배려로 나무와 풀 한 포기 없는 허허벌판 한가운데로 이동해 큰 일을 봤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운전기사는 ‘진돗개 하나 갑호 비상상태’로 경계근무를 섰다고 한다.

사파리에서는 차량 지붕이 개방된다. 앞좌석 쪽은 지붕 뚜껑을 앞쪽으로 젖혀 고정한다. 좌석을 밟고 지붕으로 머리를 내밀면 약간 푹신한 뚜껑에 팔도 걸치고 카메라도 올려놓을 수 있다. 뒤쪽 좌석은 지붕을 위로 밀어올려 고정한다. 좌석을 밟고 올라서면 준비 끝이다.

갓 우기가 시작된 터라 흩뿌리는 비를 맞기도 했다. 앞좌석은 지붕을 닫아야 했고, 뒷좌석은 그나마 비구경하며 열어놓기도 했다.

이 차량에는 망원경도 비치돼 있었다. 멀리 숲속에 떨어져 있는 동물은 육안으로 잘 식별되지 않았다. 망원경이 필수였다. 망원렌즈 덕분에 굳이 망원경을 찾지는 않았지만 이 차량이 사파리에 최적화된 것은 분명했다.

물론 충전도 자급자족됐다. 휴대폰과 카메라 모두 전원막대가 최고 수치였다. 이제 물과 비상식량만 실으면 출동 이상무였다.

우산나무가 타란기리 사파리에 서 있다. 우산을 닮은 이 나무는 바오바브나무와 함께 타란기리 사파리의 명물이다. 전준호 기자

토니가 시동을 걸었다. 여행객은 모두 지붕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드디어 타란기리 사바나 진입이다.

타란기리는 어린왕자의 낙원이었다. 바오바브나무 세상이었다. 1,000년 넘은 바오바브가 널렸다. 전세계 여행객들이 1,500년된 바오바브 나무 앞에서 인생샷 건지느라 바빴다. 유일한 안전지대였다. 나무 안에는 성인 20명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타란기리에는 명품나무가 하나 더 있었다. 우산나무다. 펼친 우산 모양 그대로 생겼다. 바오바브와 우산나무가 인상적인 타란기리 사파리는 문명에서 야생으로 통하는 스타게이트였다. 이곳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글ㆍ사진=전준호기자 jhj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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