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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공무원은 평지, 시민은 언덕배기로? 서대문구 학습시설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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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공무원은 평지, 시민은 언덕배기로? 서대문구 학습시설 논란

입력
2020.01.1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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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대문구 “평지 건물, 구청 사무공간 사용 목적” 

 양리리 구의원 “구의원ㆍ공무원 주민에 평지 양보하고 불편 감수해야” 

지난달 27일 문을 연 서대문구의회 복합청사. 붉은색 건물이 평생학습관이 들어설 공간이다.
지난달 27일 문을 연 서대문구의회 복합청사. 붉은색 건물이 평생학습관이 들어설 공간이다.

“고작 200m인데….” 16일 찾은 서대문구의회 신축 복합청사. 언덕배기에 있다지만, 대로변 평지에 있는 서대문구청 본관에서 불과 200여m 떨어져있어 찾아가기가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안심도 잠시, 구청 본관 옆 골목에서 시작한 완만한 경사는 코너를 하나 둘 돌 때마다 급격한 경사로 바뀌었다. 두 번째 코너를 돌았을 땐 가파른 경사에 ‘억’소리마저 났다. 구청 본관에서 의회 청사까지는 걸어서 4분으로, 가까운 편이다. 그러나 가파른 경사 탓에 청사에 도착하니 산행이라도 한 듯 어느덧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연희 평생학습관이 들어설 서대문구의회 복합청사 가는 길. 경사가 심한 언덕 길을 200m가량 올라가야 의회 신축 청사가 나온다.
연희 평생학습관이 들어설 서대문구의회 복합청사 가는 길. 경사가 심한 언덕 길을 200m가량 올라가야 의회 신축 청사가 나온다.

지난달 27일 문을 연 의회 신축 청사는 안산(무악산) 자락에 위치해 있어 꽤나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서대문구가 바로 이곳에 교육시설인 연희 평생학습관(학습관)과 융복합인재교육센터를 조성하겠다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구청은 의회 건물 1층에 11억원을 들여 495.23㎡(149.8평) 규모의 학습시설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현재는 공간만 조성돼 있고 내부는 비어있다.

 ◇유모차 끈 엄마, 어르신들이 이용할 수 있을까 

서대문구의회 복합청사 1층에 자리한 평생학습관 부지 내부. 6월 개관 예정으로, 공간만 마련돼 있을뿐 내부는 텅 비어있다.
서대문구의회 복합청사 1층에 자리한 평생학습관 부지 내부. 6월 개관 예정으로, 공간만 마련돼 있을뿐 내부는 텅 비어있다.

의회 건물이 언덕배기에 위치한 탓에 구의회에서조차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달 18일 열린 의회 본회의에서도 학습관 조성을 두고 문제가 제기됐다. 양리리 서대문구 의원은 구정 질의에서 “여기가 경사가 높다는 건 아실 거다. 유모차를 갖고 있는 부모님, 어르신, 장애인이 여기에 접근하기 어떨 것 같냐. 눈이라도 한 번 오고 빙판이 얼면 어떨 것 같냐”고 지적했다. 또 “좋은 장비를 들여놓는 것도 시설이 훌륭한 것도 좋지만, 그곳이 주민들 눈에 보이고 접근하기 좋아야 이용도가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구청 신축 별관과 주민센터가 들어서 있는 제4별관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신축 별관은 구청 본관 바로 길 건너에 짓고 있고, 제4별관은 본관에서 걸어서 5분가량 떨어져있다. 두 건물 모두 대로변 평지에 위치해있는데다 근처에 버스정류장도 있다.

서대문구청 본관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구청 제4별관. 평지인데다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어 접근성이 좋다.
서대문구청 본관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구청 제4별관. 평지인데다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어 접근성이 좋다.

구청 측은 제4별관과 신축 별관의 공간이 좁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한 상태다. 문석진 구청장은 당시 본회의에서 “구의회 건물에 150평이라는 넓은 공간이 나오기 때문에 이 공간을 쓰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는 판단했다”며 “제4별관과 신축 별관은 너무 좁아 이렇게 큰 공간이 안 나온다”고 밝혔다.

그러나 본보가 입수한 제4별관 시설 현황표와 신축 별관 건축 개요에 따르면 두 곳 모두 150평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4별관은 주민센터로 활용하고 있는 1층을 제외하고 2~5층은 각각 150평이 넘는다. 2~3층은 600㎡(약 180평), 4~5층은 542㎡(약 160평) 정도의 규모다. 한 개 층만 활용해도 최소 150평 이상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짓고 있는 신축 별관은 개개별 층은 260㎡(약 78평) 정도에 불과하지만, 두 개 층을 합치면 학습관 조성에 필요한 공간이 나온다.

 ◇서대문구, 건물 위치 바꾸는 대신 이용 대상을 줄인다? 

서대문구청 본관 바로 건너편에 있는 구청 신축 별관 공사 현장.
서대문구청 본관 바로 건너편에 있는 구청 신축 별관 공사 현장.

구청은 제4별관을 이미 주민센터와 구청 사무공간 등으로 사용 중인데다 신축 별관도 구청 업무공간으로 쓸 예정이라 학습관으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구청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신축 별관은 분산돼 있는 구청 6개 부서를 입주시킬 목적으로 짓고 있고, 제4별관도 구청 부서가 사용해야 해 학습관 용도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특히 신축 별관은 부지가 협소해 학습관처럼 대규모 공간이 필요한 시설에 적합하지 않다”고 밝혔다.

접근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경사로로 인해 노약자나 장애인 등이 접근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이 있어 학습관을 가급적 접근이 쉬운 학생이나 청장년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로 계획하게 됐다”며 “재개발 사업 공간이 확보되는 대로 홍제권역에도 학습관을 추가 설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양 의원은 이런 구청 입장에 대해 “공간을 옮겨서 해결해야 할 일을 공간은 그대로 두고 이용 가능한 대상을 줄인다는 것은 엉뚱한 해결책 아니냐”며 “구의원과 공무원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역주민께는 평지 공간을 내드려야 하지 않겠냐”고 비판했다.

구청은 구민들 편의를 위해 버스를 운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에 대해 양 의원은 “버스를 운행하려면 구입비, 인건비 등의 예산이 드는데 신축 별관이나 제4별관에 학습관이 들어서면 불필요한 비용 지출을 막을 수 있다”며 “구청이 주민의 입장에서 조금만 고민을 해보면 얼마든지 공간을 변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윤한슬 기자 1seu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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