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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입양아인 동생은 왜 목숨을… 내가 아는 그의 모습은 진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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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입양아인 동생은 왜 목숨을… 내가 아는 그의 모습은 진짜였을까

입력
2020.01.17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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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티 유미 코트렐은 소설 내용처럼 남동생의 자살을 경험했지만, ‘이 소설은 회고록이 아니다’고 분명히 말한다. ⓒMeiko Takechi Arquillo
패티 유미 코트렐은 소설 내용처럼 남동생의 자살을 경험했지만, ‘이 소설은 회고록이 아니다’고 분명히 말한다. ⓒMeiko Takechi Arquillo

어느 날 입양아 동생이 죽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같은 양부모 밑에서 자란 배다른 동생이지만, 똑같이 한국에서 온 입양아였던 동생. 고향을 떠나 부모와는 연을 끊다시피 하고 살아가던 32세 여성 헬렌은 동생의 죽음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 5년 만에 고향으로 간다. 무엇이 동생을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을까? 끝내 백인이 될 수 없었던 입양아의 좌절? 구두쇠라 아이들을 부끄럽게 했던 억압적 양부모?

패티 유미 코트렐의 장편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은 남동생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유년의 기억으로 향하는 여정을 그려낸다. 먼지 쌓인 고향집 동생의 방에서 잠을 자고 동생의 흔적을 더듬어가며 헬렌은 “한때 그 녀석을 알고 이해한 사람은 나뿐이니까”이란 믿음이, 유효하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운동이라고는 애완견을 산책시키는 일이 전부였던 동생. 신용카드도 없었고 연애나 결혼, 아빠가 되는 일에는 관심을 보인 적도 없었던 동생. 만약 러시아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평면적 인물이었을 게 분명한, 평생을 굶주리는 농부처럼 살았던 동생. 한시라도 빨리 집을 떠나고 싶어했던 자신과 달리, 여행을 가도 고향의 작고 어두컴컴한 집으로 돌아가기만을 고대했던 동생. 헬렌이 생각하는 동생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동생의 책장에서 발견된 값비싸고 화려한 차를 다루는 책들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헬렌은 자신이 알고 있는 동생과 모르는 동생 사이 간극 어딘가에 죽음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임을 짐작한다.

이유를 하나씩 찾아나가다 보면 단서는 도처에 널려 있다. 죽기 직전 남동생이 보낸 편지에는 ‘모든 것이 괜찮다가 이내 괜찮지 않아’라고 적혀 있었다. 자신의 물건들을 이웃에게 나누어줬으며 장기기증 면접을 수 차례 다녀왔다. 거기다 말끔하게 지워진 동생의 컴퓨터 하드디스크까지. 동생의 죽음은 충동적인 게 아니라 계획적이었음을 드러낸다. 여기에 컴퓨터 휴지통에서 발견된, 유서와 다름없는 단 하나의 일기에는 그가 죽기 직전 한국에 있는 친모와 연락이 닿았으며, 친모를 만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한국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동생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썼다. “나는 내 인생이 아름다웠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패티 유미 코트렐 지음ㆍ이원경 옮김 

 비채 발행ㆍ248쪽ㆍ1만3,800원 

동생의 삶이 아무에게도 주목 받지 못한, 실패한 삶이라고 여겼던 헬렌의 자조와 달리 동생은 최선을 다해 자신이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양부모가 자신들을 학대했다고 생각했지만, 양부모 역시 그들만의 방식으로 자식들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동생의 생전 삶을 다시 재구성한 이후에야, 죽음이라는 비밀의 마지막 조각을 끼워 맞출 수 있다는 것을 헬렌은 그제서야 깨닫는다.

저자인 패티 유미 코트렐은 1981년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 중서부로 입양됐다. 피츠버그와 시카고, 밀워키에서 성장했고 2012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의 주인공인 헬렌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적으로는 관련이 없지만 똑같이 한국에서 입양된 사내아이 남동생이 있었고 그의 자살을 경험했다. 그러나 소설은 경험담임을 앞세워 신파로 흘러가는 대신 자조적인 독신 여성의 신랄한 블랙유머를 곳곳에 배치하며 담담하게 동생과 자신의 삶을 서술한다.

코트렐 역시 “이 소설은 대단히 사적이지만, 내게 일어난 일을 염두에 두고 책의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고 선을 긋는다.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코트렐은 이렇게 말한다. “화자와 지은이를 동일시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묻기 시작하거든요. ‘정말로 이런 짓을 했어요?’ ‘그 일이 실제 사건입니까?’ 결국 소설 밖으로 나오게 되죠. 나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아요. 거짓말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소설은 회고록이 아니에요.” 입양인의 삶이라면 덮어놓고 동정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향한 작가의 꾸짖음처럼 들리는 것이 괜한 반성은 아니리라.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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