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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갈비짝 들여놓으셨나요

입력
2020.01.17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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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소고기 좋아하는 한국인인데, 갈비라면 사족을 못 썼다. 갈비는 점차 구이용으로 가공되었고, 권력과 부자들의 상징이 되었다. 명절에 갈비짝 선물을 받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권력과 부의 상징이 되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안 그래도 소고기 좋아하는 한국인인데, 갈비라면 사족을 못 썼다. 갈비는 점차 구이용으로 가공되었고, 권력과 부자들의 상징이 되었다. 명절에 갈비짝 선물을 받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권력과 부의 상징이 되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갈비는 한국인이 아주 좋아하는 부위다. 정육 중에서 아주 비싼 편에 속하고, 뼈 무게가 포함되어 있으니 살코기로만 치면 등심보다 비싸다. 수입 소고기가 개방되었을 때, 지육을 사러 간 한국 수입업자에게 미국, 호주는 ‘노다지’였다고 한다. 갈비 가격이 한국보다 엄청나게 쌌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불에 직접 구워 먹는 고기일수록 가치가 높아지는데, 갈비는 장시간 간접 조리하는 바비큐 외에는 주로 찜으로나 쓰는 부위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값이 싸다.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 교포가 한 달 내내 갈비찜만 해먹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한 맺힌(?) 갈비의 포한을 이민 가서 풀어 버렸을 것이다. 내 경우에도 이탈리아에서 요리할 때 소갈비를 많이 만들어 먹었다. 값이 쌌다. 먹을수록 남는(?) 셈이었다.

갈비가 언제부터 한국에서 비싼 부위였는지는 모른다. 고려, 조선시대에 이미 소고기는 유행이었는데 불에 굽는 방법이 인기였을 것이다. 불고기는 여기서 대체로 유래한다고 봐도 좋다. 고려시대는 불교국가라 고기 먹는 것을 금하거나 단속했던 시기가 많았다. 그런데도 소고기 사랑은 그치지 않았다. 조선시대도 마찬가지다. 유교가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았으니 살생의 부담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소고기를 금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소는 농사에 쓰이는 귀한 자원이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다고 소고기를, 갈비를 먹지 않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 문화가 면면히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갈비는 일제강점기에도 인기가 높았다. 6ㆍ25전쟁 후, 나라가 몸을 추스르고 나서 갈비의 명망은 다시 고개를 든다. 당시 신문을 보면 단서가 나온다. “명절 갈비짝 뇌물 급증” “갈비 사재기 단속” 등의 기사가 1960년대부터 보인다. 안 그래도 소고기 좋아하는 한국인인데, 갈비라면 사족을 못 썼다. 갈비는 옛말에는 ‘가리’라고 표현된다. 점차 구이용으로 가공되었고, 권력과 부자들의 상징이 되었다. 명절에 갈비짝(다른 부위는 몰라도 갈비는 꼭 짝이라고 불렀다. 짝은 소 한 마리에서 두 개로 나뉘는 갈비 전체의 단위인데, 나중에는 가공되어 포장된 것도 그리 부르기 시작했다) 선물을 받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권력과 부의 상징이 되었다. 어떤 집은 명절에 들어온 갈비짝이 썩어 난다든가, 보관하기 위해 새로 냉장고를 들였다는 식의 뒷말들이 돌았다. 김영란법이 없던, 부패가 일상화된 시절의 이야기다.

갈비의 조리법은 많이 바뀌었다. 토막 쳐서 굽는 방식에서 점차 칼을 넣어 굽기 좋게 하는 방법이 동원되었다. 뼈를 중심으로 고기를 양쪽으로 벌리는 전통적인 나비 뜨기가 오래 대세를 유지했다. 70년대 넘어서는 뼈에 붙은 고기를 한쪽 방향으로 얇게 포를 뜨는 기술이 퍼져 나갔다. 갈비는 질긴 경우가 많아서 칼집도 넣게 되었는데, 이 기술을 누군가 시작했는데 정확하지 않았다. 내 취재에 의하면 부산 해운대암소갈비집의 작고한 주방장이 시작했다는 얘기가 있다. 나중에는 삼겹살에도 이 기술이 적용되어 2000년 이후에는 ‘칼집’이나 ‘벌집’ 삼겹살이라는 메뉴가 등장하기도 했다. 칼집을 넣으면 씹힘이 좋고 질긴 부위도 씹어 넘길 수 있게 된다. 또 구웠을 때 잘라진 부위마다 그을리는 강도가 높아져서 더 고소하게 먹을 수 있다. 이런 기술은 88올림픽 이후 수도권 근교와 강남에서 붐을 일으킨 ‘가든’ 갈비에도 적용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물론 이 와중에 갈비 가공술이 법원의 판단까지 받게 되는 세계 역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갈비뼈에 원래 붙어 있지 않은 고기를 붙여 판 식당이 검찰에 구속되었다가 무죄가 된 사건이었다. 어쨌든 붙인 갈비도 갈비가 되었다. 다 우리의 갈비 사랑이 대단해서 생긴 일이다. 설이 다가온다. 갈비짝을 받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는 세태의 풍경을 다시 보게 될 것 같다.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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