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민정수석실 해부
사정·인사 검증 ‘관가의 저승사자’
업무 범위 불명확하고 활동 베일 속
직권남용·월권 소지… 사찰 논란도
제대로 임기 마친 사람 드물어
32명중 19명이 검사 ‘靑 속 작은 검찰’
역대 민정수석ㆍ비서관 10명 인터뷰
[저작권 한국일보] 한국일보가 역대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한 비서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180명(34명 중복)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정권마다 각종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지 않은 민정수석이 없을 정도로 법적으로도 흠이 많았다. 그래픽=송정근기자

‘왕 수석’으로 불리며 국정업무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민정수석)은 정권마다 실세로 통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보좌하는 참모 중 한 명에 불과한데도 비서실장 못지 않게 정치권과 사정기관에서 가장 주목하는 인물로 꼽혀왔다. 은밀한 정보와 동향, 각종 비리첩보를 접하는 자리에 역대 대통령들은 정권과 상관없이 자신과 마음이 통하는 복심이나 핵심 측근을 앉혀왔다.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다 보니 여권의 민원창구 역할을 했지만, 야권의 정치적 표적으로 지목돼 공격 당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민정수석 힘의 원천이 대통령의 신임 때문만은 아니다. 공직기강을 다잡는 사정업무를 총괄하고 인사검증과 대통령 친인척 관리까지 맡으니 공직자들은 민정수석이란 말만 들어도 저절로 주눅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양지가 많으면 그림자도 짙게 드리우는 것처럼 본분을 망각하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걷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최고의 권력실세로 통하다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우병우 전 수석의 사례는 민정수석이란 자리의 양면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조국 전 수석도 17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특별감찰 중단을 결정한 혐의(직권남용) 등으로 기소됐다. 이 같은 드라마틱한 등장과 추락 탓에 민정수석은 다른 나라에선 사례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자리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한국일보는 청와대 민정수석이 신설된 박정희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한 비서관급 이상 고위공직자 180명(34명 중복)을 전수 조사해 청와대 파견 전후의 경력과 출신지역, 이후 행보 등을 분석했다. 조사는 1963~2020년 한국일보 데이터베이스(DB)와 대통령기록관실 자료를 토대로 했다. 민정수석실에 몸담았던 전직 민정수석과 산하 비서관 등 고위인사 10명을 대면 또는 전화 인터뷰해 그들이 몸담았던 조직의 실체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이들은 한결같이 “비서는 입이 없다”며 익명 인터뷰를 원했다. 박근혜 정부 마지막 민정수석을 지낸 조대환 변호사만 실명 인터뷰에 동의했다.

◇ 민정수석은 왜 ‘왕 수석’인가

청와대 민정수석은 대통령 직무를 보좌하는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이다. 대통령의 친ㆍ인척 등 주변 인사를 관리하고 국정 전반의 은밀한 정보를 속속들이 챙기는 참모 역할을 하는 것은 물론 공직기강과 부패를 점검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인사를 검증하는 폭넓은 권한을 가진다.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 국세청, 감사원 등 주요 권력기관이 생산하는 정보를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것도 민정수석의 역할로 알려져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경우 △민정비서관 △반부패비서관 △공직기강비서관 △법무비서관 등 4명의 비서관이 민정수석 업무를 보좌한다.

민정(民情)은 본래 국민의 뜻을 살핀다는 뜻이다. 청와대가 민심을 정확하게 읽고 국정에 반영해 적절한 정책을 펼치도록 보좌하는 게 민정수석의 기능이다. 그러나 민정수석은 태생부터 권력을 한 곳에 집중시켜 행사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1968년 박정희 정부 장기집권의 틀을 마련하기 위해 신설된 이후 역대 정부에서 청와대가 휘두르는 손 쉬운 칼로 기능했다. 전두환 정부에선 민정수석실과 별도로 사정수석실을 만들었고, 노태우 정부에서 다시 민정수석실로 통합됐다. 이후 김대중 정부가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고 민정ㆍ법무비서관을 비서실장 아래 배치했지만, 2년 만에 다시 부활했다.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조직에 미세한 변화는 있었지만 근본적 기능은 바뀌지 않은 셈이다.

민정수석실 산하 직원들은 인사검증과 고위공직자 감찰, 대통령 친인척 감시처럼 드러내놓고 일하는 경우보다 은밀하게 활동하는 일이 많다. 민정수석실 업무 기준과 범위에 관해 외부에 공개된 자료가 거의 없는 것도 내밀한 업무 특성과 무관치 않다. 실제로 정부조직법과 대통령비서실 직제에는 비서실 설치 근거만 담겼을 뿐, 비서실 내 업무분장은 대외비다. 여기에 세세한 내부 규정도 없다 보니, 직원들도 정확한 업무범위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드물 정도다. 예컨대 민정수석 산하 반부패비서관실의 경우 ‘국가의 반부패 업무 총괄, 이와 관련한 각종 업무수행’과 같이 개략적인 업무 성격만 규정했을 뿐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 민정수석을 지낸 전직 검찰 고위간부는 “비서실 업무분장은 대통령의 재량사항이고, 상세하게 규정하는 것은 입법기술적으로도 곤란하다”고 설명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문재인정부 민정수석실 조직도. 그래픽=송정근 기자

◇ 민정수석 서랍에 비리정보 다 있다(?)

이처럼 민정수석실 권한이 명확하지 않고 외부에 활동내용도 공개되지 않는 탓에 직원들은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월권이란 딱지를 달고 다닌다.

한국일보 인터뷰에 응한 전직 민정수석과 비서관들은 “인사권자는 대통령”이라며 몸을 낮췄지만, 검증과 세평조회 등 인사과정을 총괄하는 역할은 막중하다고 인정했다. 최종 결정단계인 임명보다 인사검증 과정이 중요하다 보니 민정수석의 입지가 더욱 강해졌고, 민정수석이 실질적 인사권자나 다름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민정수석 서랍엔 권력기관 수장을 날릴 검증 보고서가 들어있다’는 소문이 관가에 유령처럼 떠도는 것도 민정수석의 영향력을 짐작하게 한다. 민정비서관으로 일했던 전직 검찰 간부는 “민정수석실의 주류가 검찰 등 사정기관 출신이고, 이들은 비리를 캐는데 익숙하기 때문에 인사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민심 파악이란 이유로 이뤄지는 무차별적인 정보수집은 때때로 ‘사찰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여론을 파악하는 것이 민간인 사찰로 해석될 수 있고, 부처간 이견을 좁히는데 적극적으로 관여하면 직권남용 소지가 있다. 내부징계로 그칠 수 있는 사안까지 법적으로 처벌하려는 정치 풍토도 민정수석실이 정쟁의 소용돌이에 자주 빠지는 이유다. 이명박 정부에서 민정비서관을 지낸 전직 검사는 “민심을 파악하고 대책을 모색하는 민정수석실 업무 특성상 때때로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지 판단하기가 모호한 활동영역이 있다”고 인정했다. 자칫 잘못 판단하면 곧바로 위법 시비에 휘말리기 때문에 항상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기분’이라는 설명이다.

국정이 대통령과 청와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의 정치적 특성도 민정수석이 내뱉는 말 한 마디와 행동 하나하나에 무게감을 더하는 요인이다. 정부기관에 ‘청와대 민정수석실 요청사항’이라고 적힌 메모지가 전달되면 단순한 요청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해당 부처 수장에게 즉시 보고되고, 민정수석 개인이 아닌 대통령이 원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고위공직자 비리를 감찰했던 검사 출신 변호사는 “민정수석 직원들은 관가의 저승사자로 불리기 때문에 무엇보다 절제가 필요하다. 수단과 목적, 방법에 대한 정당성도 항상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대방이 자신을 무서워한다고 섣불리 위세를 부리다가는 철창신세를 지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 ‘청와대 안의 작은 검찰’ 70% 검찰 출신

역대 정부는 사정기관 업무를 총괄하는 민정수석 자리에 검사 출신을 압도적으로 많이 앉혔다. 김영삼 정부 이래 현재까지 민정수석을 지낸 인사 22명 중 검찰 출신은 72.7%(16명)에 달한다. 박근혜ㆍ이명박 정부 시절 임명된 민정수석 10명은 모두 검찰 출신이었다. 민정수석실에서 일한 비서관 97명으로 대상을 확대해도 검사 출신은 41.2%(40명)에 달해 다른 부처 출신이나 직종에 비해 훨씬 높다.

민정수석실 안에서도 대통령 직접 보고사항 등 주요 업무는 검찰 출신들이 장악한다. 민정수석실이 ‘청와대 안의 작은 검찰’로 불리며 비(非) 검찰 출신은 주요 업무에 관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부처 출신의 전직 청와대 행정관은 “검찰 라인이 자기들끼리 일하기 때문에 수석님 얼굴을 뵌 적도 없다”고 전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마지막 민정수석을 지낸 조대환 변호사는 “민정수석실 업무가 주로 권력기관을 관장하다 보니, 평생 조사해서 결론 내는 훈련을 해온 검사를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민정수석에 비(非) 검찰 출신을 임명하고 검사 파견관행을 없앴지만 10년 전만해도 현직 검사가 청와대로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흔했다. 검찰 사직→청와대 파견→검찰 복귀 방식의 편법도 동원됐다. 결국 2017년 검찰청법을 개정해 검사는 퇴직 후 1년이 지나야 대통령 비서실에 근무할 수 있고, 대통령비서실 소속 공무원은 퇴직 후 2년 동안 검사로 임용될 수 없도록 해 현직 검사의 파견 가능성을 차단했다.

민정수석의 지역 편중현상도 두드러졌다. 민정수석 32명 중 부산ㆍ울산ㆍ경남(PK) 출신이 37.5%(12명)로 가장 많았고 대구ㆍ경북(TK) 출신이 34.4%(11명)로 영남 출신들의 청와대행이 유독 많았다. 호남 출신은 12.1% (4명)에 불과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조국 전 민정수석.

◇ 정권마다 법의 심판 반복 ‘오명’

민정수석은 공포의 대상이지만, 질시와 불만의 대상이기도 하다.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보고서 내용에 따라 인사가 바뀌고, 민정수석 판단에 따라 유력하게 거론되던 인사가 제외되기도 하다 보니, 인사 대상자들은 앞에선 내색을 못 해도 뒤에선 수군거리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잡음 없이 민정수석 근무를 마친 사람이 드물었으며 인사검증 실패와 직권남용, 민간인 사찰은 민정수석을 공격하는 정치권의 단골소재가 됐다. 특히 정권마다 각종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지 않은 민정수석이 없을 정도로 법적으로도 흠이 많았다.

민정수석실의 구체적 일탈행위는 수사와 재판과정을 통해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김진모 민정2비서관과 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의 판결문엔 민간인 사찰 폭로를 막기 위한 입막음 용도로 국정원에 금품을 요구해 전달 받은 과정이 드러난다. 법원은 “공직기강을 세워 공무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획득해야 할 임무를 맡은 사람들이 오히려 지위를 이용한 불법적인 지시를 했다는 점에서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민정수석을 지냈던 검찰 출신의 박정규 변호사는 금품을 받고 인사검증 과정에서 부당한 청탁을 들어줬다. 국세청 인사가 임박한 2004년 12월, 박정규 수석은 노 대통령의 후원자로 알려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1억원 상당의 상품권을 받았다. 국세청 고위공무원이던 박 회장 사돈에 대한 인사청탁 대가였다. 법원은 “대통령과 특수관계에 있고 민정비서실의 관리 및 감찰 대상(박연차 회장)과 부적절한 교류를 했다”며 박 수석에게 징역 3년 6월을 선고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의 4번째 민정수석에 임명된 우병우 전 수석은 ‘왕 수석’의 일탈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 사례로 회자된다. 그는 국정원에 자신을 감찰하던 특별감찰관의 뒷조사를 지시해 직권남용 혐의로 처벌 받았다. 민정수석의 감시대상인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과 최서원(최순실)씨의 비위 행위를 은폐한 혐의(직무유기)도 유죄로 인정됐다.

앞서 전두환 정부 시절 이학봉 민정수석과 김대중 정부 시절 신광옥 민정수석도 재임 당시 비리 혐의로 법정에 섰다.

◇ 민정수석 직급 낮추고 통제기능 없애야

일각에선 민정수석의 정치적 기능을 일일이 사법적 잣대로 재단하는 현상을 우려하기도 한다.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보좌하는 기본역할을 너무 엄격하게 따지고 들면 고유기능마저 상실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인사검증 분야에서 일한 전직 민정비서관은 “민정수석실 내부에선 일종의 ‘사찰 트라우마’가 있다. 여론수집과 세평조회 같은 관례적 업무까지 문제 삼으면 결국 정권마다 검찰 수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근본적 개선책은 민정수석의 직급을 낮추거나 권한을 줄여서 비리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사청문회도 거치지 않은 대통령 참모조직이 국정전반에 관여하도록 내버려두면 부작용이 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청와대 중심의 국정운영이 민정수석의 역할만 키운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원로 헌법학자인 허영 경희대 로스쿨 석좌교수는 “민정수석은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참모에 불과한데도, 월권하는 경우가 많다”며 “당장은 국정을 장악하는 손 쉬운 칼로 쓰고 싶겠지만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책 ‘청와대 정부’의 저자인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거나 민정수석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직 운영을 권력의 선의에 맡기기보다는 조직의 성격과 기능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검찰 인사에 민정수석 개입을 차단하고 전적으로 법무부에 맡기는 한편 공직 감찰기능은 국회에 위임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민정수석 직급도 차관급이 아니라 1급비서관으로 낮추고 비서실장 산하에 민정비서관만 남겨둬도 충분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데이터분석 박서영 solucky@hankookilbo.com

김민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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