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다주택 11명 중 9명이 매각 불이행 또는 무응답
“부모 거주 중” “분양권만 보유” 나름의 이유도 있어
“수도권 다주택자는 한 채만 남기고 팔아라.”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달 16일 청와대 고위 참모들에게 내린 권고다. 그러나 그로부터 한 달째인 16일 현재 청와대 참모들의 후속 조치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수도권 다주택을 보유한 비서관급 이상 참모들이 ‘실거주 목적’ 등 현실적 이유로 주택 매각에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다. 부동산 보유에 기본적으로 투기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는 청와대의 시각과 현실의 괴리를 보여 주는 단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노 실장은 지난달 “정부의 부동산 가격 안정 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며 “수도권에 2채 이상 집을 보유한 청와대 고위 공직자들은 불가피한 사유가 없다면 이른 시일 안에 1채를 제외한 나머지를 처분하라”고 했다. 주택 매각 여부가 향후 청와대 인사에 적용될지에 대해 당시 청와대가 “하나의 잣대가 되지 않을까 한다”(윤도한 소통수석)고 한 만큼, 사실상의 강제 규정으로 받아들여졌다. 청와대가 공개한 주택처분 대상자는 11명이었다.
본보의 전수조사 결과, 11명 중 8명이 조사에 응했고, 이 중 2명이 노 실장 권고를 이행했다. 경기 과천시와 세종시에 각각 아파트 1채와 서울 오피스텔 2채씩을 보유하고 있던 박진규 신남방신북방비서관은 권고 이후 오피스텔 2채를 매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용산구와 세종시에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던 강성천 산업통상비서관의 경우, 세종시 아파트 매각 절차가 완료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노 실장 권고에 “불가피한 사유가 있다면 보유할 수 있다”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인사 불이익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압박한 것 치고는 ‘초라한 성적표’다. 그러나 나머지 참모들에겐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할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조사에 응한 3명은 “앞으로도 주택을 팔기 어려울 것 같다”는 답변을 보내 왔다. 이 중 2명은 ‘본인 또는 배우자의 부모가 살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양가 부모와 살림을 합치지 않는 이상 매각이 어렵다는 것이다.
한 참모는 “서류상으로는 주택 2채를 소유하고 있지만, 1채는 분양권이라 사실상 1채 소유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다주택자 명단에 든 상당수는 세종시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 정치권 인사는 “정부세종청사 이전에 따라 아파트를 매입한 것인데, 그것을 투기성으로 보는 것은 무리인 측면도 있다”고 했다. 공직자의 청와대 근무 기간은 평균 1, 2년 정도에 그친다. 이 때문에 ‘인사 불이익이 두려워 주택을 매각할 실질적 이유는 없다’고 냉소하는 참모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노 실장 본인도 다주택자다. 그는 부인과 공동 명의로 서울 서초구 반포동과 옛 지역구인 충북 청주시 흥덕구에 각각 아파트를 갖고 있고, 최근 반포동 아파트를 팔기로 했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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