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국정연설서 ‘대통령직 3연임 금지’ 제안
대신 의회 권한 강화 주문…“집권 연장 포석”
블라디미르 푸틴(67) 러시아 대통령이 또 다시 권력 연장 야욕을 드러냈다. 대통령 임기 종료 후 ‘실세 총리’로 복귀하는 헌법 개정을 제안한 것이다. 8년 전 개헌을 통해 대통령직에 복귀한 것과 달리 이번엔 의회 권한을 강화해 러시아를 통치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국가두마(하원)에서 진행한 연례 국정연설에서 의회에 폭넓은 권한을 부여하는 개헌 국민투표를 제안했다. 그는 7개 개헌 항목을 열거했는데, 핵심은 ‘대통령직 3연임 금지’ 제안이다. ‘동일 인물이 계속해서 2기 이상 대통령직을 연임할 수 없다’는 현행 조항에서 ‘계속해서’라는 표현을 삭제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3연임을 하든, 물러났다가 다시 집권하든 관계 없이 두 차례 이상 대통령이 될 수 없다.
푸틴은 대통령 후보 자격도 ‘러시아에서 25년 넘게 거주하고 외국 국적 및 영주권을 한 번도 가진 적이 없는 사람’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한 걸림돌이 많아지는 만큼 자연스레 권력 교체 가능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대신 의회 권한은 대폭 강화된다. 그는 “하원이 총리와 부총리, 장관 등의 임명을 인준하고 의회가 통과시킨 후보를 대통령이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상원에도 연방판사를 해임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결과적으로 현재 자신이 누리는 대통령 권력은 크게 약화되는 반면, 의회가 국정 주도권을 쥐게 되는 구조이다.
외신은 개헌 제안을 2024년 임기가 끝나는 푸틴의 집권 연장 플랜으로 보고 있다. 2000년 대통령에 처음 당선된 푸틴은 8년 간 연임 후 3선 금지 조항에 막혀 총리로 물러났다가 개헌을 거쳐 2012년 임기 6년의 대통령직에 복귀했다. 2018년 다시 4기 집권에 성공해 총 20년 동안 권좌를 놓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제안에는 무리하게 세번째 개헌을 시도해 국민적 저항에 부딪치기보다 힘이 실린 의회 권력을 기반으로 실세 총리로서 최고 권력자 지위를 유지하겠다는 속내가 엿보인다. 로이터통신은 “미래 국가권력 재편에 관한 푸틴의 구상이 가동됐다”고 단언했다. 물론 푸틴은 “강력한 대통령제는 유지돼야 한다. 러시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헌법 개정을 논의에 부친 것”이라며 순수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푸틴 제안에 때맞춰 이날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를 비롯한 내각이 총사퇴를 선언한 것은 잘 짜인 시나리오라는 의구심을 거둘 수 없는 대목이다. 2012년 개헌 당시 대통령이었던 메드베데프는 총리로 푸틴과 자리를 맞바꿔 그의 ‘꼭두각시’로 불려 왔다. 그는 “헌법 개정이 성사되면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 사이의 권력 전반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며 푸틴을 두둔했다. 푸틴도 내각 사퇴를 즉각 수용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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