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올 봄 일본 국빈방문을 앞두고 중국과 일본에서 ‘제5의 정치문서’ 작성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1972년 국교 정상화를 발표한 중일 공동성명 이후 양국이 발표한 4번의 조약ㆍ성명을 뛰어넘는 새로운 중일관계를 규정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를 두고 양국 간 온도 차이가 감지되고 있다.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은 14일 중국 시안(西安)에서 열린 러위청(樂玉成)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의 중일 전략대화에서 시 주석의 방일을 위한 환경 정비 노력에 공감했다. 이와 관련, 아사히(朝日)신문은 15일 구체적인 대화 내용이 밝혀지지 않았다면서도 중국 외교소식통을 인용해 “제5의 정치문서 작성을 위한 킥오프 논의도 있었다”고 보도했다.
제5의 정치문서 작성에 있어선 중국이 일본에 비해 적극적이라는 게 중론이다. 1998년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제3의 정치문서(중일 공동선언)와 2008년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제4의 정치문서(중일 공동성명)가 모두 방일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넘어선 외교 성과를 남기겠다는 시 주석의 의욕이 강하다는 것이다. 중국은 시 주석이 강조하고 있는 ‘새 시대’와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를 문서에 넣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하나의 중국’과 내정 불간섭 원칙도 재확인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국제사회에 중국과 함께 메시지를 발신하는 것에는 긍정적이지만 최근 들어 신중론도 나온다. 아사히는 “2008년 제4의 정치문서가 일본에 유리한 내용이 반영돼 있다는 인식이 배경”이라고 전했다. 당시 양국이 ‘전략적 호혜관계’를 내세운 결과 역사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과 반성을 지적한 문구가 사라졌고 전후 일본의 평화행보를 평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2011년 국내총생산(GDP) 규모 역전 이후 현재 중국의 경제규모는 일본의 3배에 이를 정도로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급등했다. 이에 외무성에선 제5의 정치문서 내용이 2008년의 대등한 관계에서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최근 중국 선박의 센카쿠(尖閣ㆍ중국명 댜오위다오)열도 주변 영해 침범과 중국 내 일본 국민들의 구속 등을 이유로 자민당 일각에서 국빈방문 반대 의견이 제기되는 것도 걸림돌이다.
만약 이전보다 후퇴한 내용의 문서가 발표될 경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비판으로 직결될 수 있다. 또 중국의 일대일로를 문서에 포함하는 건 ‘자유롭고 열린 인도ㆍ태평양 구상’을 추진 중인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한다. 2018년 10월 아베 총리의 방중 이후 일본 언론에서 제기돼온 제5의 정치문서를 둘러싼 관측이 최근 잠잠해진 것은 이에 대한 방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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