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제재 ‘베이징 숙박소’는 북한대사관 맞은편 ‘옷가게’
“우리 공민들을 모두 굶겨 죽일라 그러는가. 당장 나가라우.”
15일 오전 중국 베이징(北京) 차오양(朝陽)구 팡차오디(芳草地). 주중 북한대사관과 마주한 건물 1층에 있는 ‘대성산 칠성문’이라는 상점을 찾았다.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14일(현지시간) 북한노동자 송출에 관여했다며 대북제재 리스트에 올린 ‘베이징 숙박소’의 주소지다. OFAC 홈페이지에는 숙박시설로 설명돼 있지만 실제로는 작은 옷가게였다.
내부를 둘러보다가 50대 중반 여주인에게 신분을 밝히고 말을 걸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다짜고짜 호통을 치더니 “왜 들어오느냐. 계속 영업을 방해하면 공안을 부르겠다”고 언성을 높였다. 그간 많이 시달린 눈치였다. 앞서 들어와 있던 코트 차림의 북한 중년남성 3명은 “저번에 맡겨놓은 물건을 찾으러 왔다”고 여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말을 끊더니 한 켠에 비켜선 채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가게 옆으로는 비행기표를 판매하는 여행사를 포함해 북한 상점 6~7개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오래된 5층 건물의 1층은 상가였고 그 위는 주거용이었다. 칠성문을 거쳐 베이징으로 건너온 북한노동자들이 묵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매장 문을 열려고 준비하는 남성에게 ‘요즘도 북한노동자들이 오가느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예전에는 많았지만 보기 어렵게 된 지 한참 됐다”고 답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건물 뒤편 좁은 골목에는 오토바이 1대가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인기척은 없었다.
미 재무부는 베이징 숙박소와 함께 평양 소재 남강무역회사를 제재 명단에 추가하면서 “북한은 유엔 제재를 위반해 해외에서 수입을 창출하기 위한 불법 인력 수출을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강무역은 2018년 러시아를 비롯해 나이지리아와 중동의 여러 국가에 북한노동자를 송출하고 비자ㆍ여권 발급, 취업에 적극 관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북한 노동당으로 자금을 송금하는 업무도 맡았다고 한다. 베이징 숙박소는 이 과정에서 북한 해외 인력에게 필요한 물자와 편의를 제공하며 남강무역을 지원해온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이번 조치를 두고 북한은 물론 뒷배를 자처하는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겨냥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97호에 따라 모든 회원국이 해외 파견 북한노동자를 송환해야 하는 기한인 지난달 22일 이후 미국이 제재 카드를 꺼내든 건 처음이다.
이처럼 미국은 북한의 해외 돈줄을 차단하면서도 어디까지나 대화를 위한 압박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문을 열어놓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전날 강연에서 “미국은 북한에 안보 위협이 아니다”라며 대화 재개를 촉구했다. 또 “북한 문제는 중국이 관여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며 ‘중국 역할론’도 강조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12일 인터넷매체 악시오스 인터뷰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협상 재개 의사를 북한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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