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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요정’ 여서정 “아빠 목에 올림픽 메달 걸어드리고 싶어요”

입력
2020.01.16 07: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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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도쿄 우리가 간다] <4> 여자 기계체조 여서정 

여자 기계체조 간판 여서정이 10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진천=왕태석 선임기자
여자 기계체조 간판 여서정이 10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진천=왕태석 선임기자

한국 여자 기계체조는 하계올림픽에서 줄곧 취약 종목으로 꼽혔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도마의 신’ 양학선(28ㆍ수원시청)이 한국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남자 기계체조는 그 동안 9개의 메달(금1ㆍ은4ㆍ동4)을 수확했지만 여자 기계체조는 세계 수준과 큰 격차를 보였다.

하지만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는 ‘무관의 한’을 풀 희망이 솟아나고 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 도마 은메달리스트 여홍철(49) 경희대 교수의 딸인 ‘도마 요정’ 여서정(18ㆍ경기체고)이 ‘부전여전’ 올림픽 메달 신화를 꿈꾼다.

이미 부녀는 2년 전 한국 체조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여서정이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 도마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대를 잇는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여 교수는 1994년 히로시마, 1998년 방콕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여홍철 교수와 체조 국가대표 출신 김채은씨의 둘째 딸로 ‘체조 DNA’를 물려 받은 여서정은 8세 때 부모님을 따라 체조장을 다니다가 재미로 체조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걸었다.

아빠의 현역 시절 경기 영상을 보며 국가대표 꿈을 키운 여서정은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아버지의 그늘’에서 스스로 벗어났다. 여서정을 지도해온 이정식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 감독은 “아시안게임 준비 과정이 완벽해서 국제 대회가 아니라 전국체전에 나간 느낌처럼 편안함을 줬다”고 돌이켜봤다.

2019년 6월엔 코리아컵 제주 국제체조대회에서 신기술 ‘여서정(난도 6.2점ㆍ양손으로 도마를 짚은 뒤 두 바퀴 비틀기)’을 성공시키면서 국제체조연맹(FIG) 채점 규칙집에 자신의 이름을 딴 기술을 등재했다. 이로써 여 교수의 ‘여1’, ‘여2’ 기술에 딸 여서정까지 부녀가 독자 기술을 세계에 보급하는 신기원을 열었다.

이제 여서정의 눈은 도쿄로 향한다. 지난 10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여서정은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아빠 목에 올림픽 메달을 걸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 당시 방송 해설위원으로 현장을 눈물과 함께 지킨 아빠에게 금메달을 목에 걸어준 딸은 아빠가 이루지 못한 올림픽 금메달을 4년 뒤 도쿄에서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여서정이 평균대 위에서 쑥스럽게 웃고 있다. 진천=왕태석 선임기자
여서정이 평균대 위에서 쑥스럽게 웃고 있다. 진천=왕태석 선임기자

-어떤 마음으로 새해를 맞았나.

“벌써 2020년이다. 이제 올림픽이 별로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부상(어깨 통증)에서 완쾌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2020 도쿄올림픽까지 메달 기대주로 주목 받고 있다.

“아직 주위의 관심에 부담을 많이 느낀다. 신경을 안 쓰려고 해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조금 익숙해진 측면도 있는데, 기대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아서 부담이 되기도 한다.”

-연기를 하기 전 표정은 담담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들었다.

“그렇다. 특히 경기 전날 엄청 긴장한다. 당일이 되면 괜찮다가도 또 연기 순서가 다가오면 긴장한다. 아빠에게도 ‘많이 떨린다’는 메시지를 자주 보내는데, 긴장을 다스리는 방법은 없는 것 같다. 단지 내가 하는 기술을 성공하는 상상을 반복적으로 머릿속에 그리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계속 한다. 아시안게임 때도 너무 긴장한 나머지 한 순간에 지나간 느낌이다. 양학선 오빠가 조언을 많이 해주고, 장난도 많이 걸고 하지만 긴장을 안 하는 방법 같은 건 얘기를 안 해봤다. 가서 좀 물어봐야겠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신기술 등재 등 많은 성과를 냈는데, 누구를 보며 이런 순간을 꿈꿨는지.

“롤모델까지는 아니지만 아빠를 보면서 아빠처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아빠의 경기 영상을 자주 찾아봤는데, 그렇게 많지가 않다(웃음). 엄마 아빠를 따라다니다가 여덟 살에 체조를 경험했고 아홉 살에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처음 할 때는 소질이 조금 있었을 뿐이지, 남들보다 월등히 잘하고 그런 건 아니었다. 착지도 좋은 편이 아니었고 탄력이 좀 있는 정도였다. 독자 기술은 중학교 때부터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성공률이 높지 않았지만 작년에 성공해서 FIG에 등재됐을 때 엄청 좋았고 기뻤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뒤 아빠에게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어드리겠다고 한 약속, 아직도 유효한가.

“그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웃음)… 그랬으면 좋겠다. 메달을 따기까지 과정은 진짜 힘들다. 아시안게임을 준비할 당시 내가 메달을 딴다고 확신할 수 없다 보니까 힘들고 그래서 아빠에게 그만하고 싶다는 투정도 부렸었다. 하지만 메달을 획득하면 기분이 정말 좋으니까 계속 체조를 하게 된다. 그래서 새해 소망도 ‘아픈 걸 빨리 낫게 해주고, 올림픽도 잘 치를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도쿄올림픽 메달을 꿈꾸는 여서정. 진천=왕태석 기자
도쿄올림픽 메달을 꿈꾸는 여서정. 진천=왕태석 기자

-올림픽은 선수에게 꿈의 무대인데, 기억에 남는 올림픽은 어떤 대회인가.

“2012년 런던올림픽이 기억 난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는데, TV로 양학선 오빠가 금메달 따는 걸 봤다. 그걸 보고 난리치고 그랬는데, 이제 한 팀(대표팀)에 있게 됐다. 올림픽은 아니지만 리듬체조 손연재 선수가 금메달을 딴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도 기억에 남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체조를 하기 전이기도 하도 어릴 때라 기억을 못한다.”

-‘도마의 신’으로 불린 아빠처럼 ‘도마공주’ ‘도마요정’ 등 별명이 붙었는데 이 중 마음에 드는 게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오글거리는 걸 안 좋아해서(웃음)… 별명을 불러주면 좋은데, 차마 내 입으로는 말 못하겠다.”

-시즌ㆍ비시즌 개념 없이 줄곧 운동만 하느라 갑갑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소하나.

“노는 걸 좋아해 시간이 있을 때마다 친구들이랑 놀러 다닌다. 영화 보고, 밥 먹고, 코인노래방도 간다. 특히 영화를 좋아해 주말에 외박이 가능할 때 꼭 최신작을 보러 간다. 최근 ‘백두산’과 ‘시동’을 다 봤는데, 개인적으로는 ‘시동’이 더 재미 있었다. 음악은 딱히 즐겨 듣는 노래는 없고 그냥 인기 차트에 있는 노래를 듣는다. 가수는 워너원 박지훈을 좋아한다(웃음).”

-지금 당장 올림픽이 끝난다면 해보고 싶은 게 무엇인지?

“여행가고 싶다. 사촌들이랑 다같이 해외 여행을 가기로 했다. 원래 일본을 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좀 그래서… 미국 아니면 영국 런던을 생각 중이다. 장소는 아직 정해놓지 않았고 현재는 해외 여행을 간다는 것만 약속했다. 일단 지금은 빨리 부상에서 완쾌하고 기술이랑 연습해서 올림픽을 잘 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아버지 여홍철(오른쪽) 교수와 체조 국가대표 출신 어머니 김채은(왼쪽)씨. 올댓스포츠 제공
아버지 여홍철(오른쪽) 교수와 체조 국가대표 출신 어머니 김채은(왼쪽)씨. 올댓스포츠 제공

진천=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이주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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