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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틀어박힌 은톨이 아들 어떡해” 부모 애타는데… 공식 통계조차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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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틀어박힌 은톨이 아들 어떡해” 부모 애타는데… 공식 통계조차 없어

입력
2020.01.17 04:40
수정
2020.01.17 15:13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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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질환과 다른 은둔형 외톨이, 日선 이미 사회 문제 

 11일 은톨이부모협회 창립… 경험 공유하며 치유 나서 

 

지난해 10월 서울 성동구 시민단체 공감인 사무실에서 열린 비자립청년 치유워크숍 중 한 치유활동가(오른쪽)가 은톨이로 불리는 비자립청년을 꼭 안아주고 있다. 공감인 제공
지난해 10월 서울 성동구 시민단체 공감인 사무실에서 열린 비자립청년 치유워크숍 중 한 치유활동가(오른쪽)가 은톨이로 불리는 비자립청년을 꼭 안아주고 있다. 공감인 제공

“지석아, 점심 문 앞에 뒀어. 라면만 먹지 말고 오늘은 밥 먹자.”

인천에 사는 이미연(가명ㆍ45)씨는 매번 아들의 방문 앞에서 몇 번을 망설이다 밥상만 내려놓고 돌아선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얼굴을 보며 “엄마랑 같이 밥 먹자”라고 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 없다. 언제부턴가 아들은 허락 없이 방에 들어오면 크게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부린다. 엄마도 예외는 아니다.

착하고 공부도 잘했던 지석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더니 확 변했다.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처음엔 ‘친구와 싸워서 그런 거겠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아예 방문을 걸어 잠그더니 급기야 학교도 가지 않았다. 방에서는 종일 게임만 했다. 간식 사러 편의점 갈 때 빼곤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이씨는 “고등학교 졸업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눈물로 호소했지만 지석이는 결국 학교를 그만뒀다.

이씨는 아들의 예전 모습을 되찾아주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용한 한의원에서 비싼 한약을 지어 먹였다. 인터넷에서 ‘은둔형 외톨이(일명 은톨이)’란 개념을 알고 나선 유명하다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다녔지만 매번 우울증 약만 처방해줄 뿐 뾰족한 답은 주지 않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집 근처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방문 상담을 요청했는데, 아들은 “사람을 부르면 엄마와 아예 말을 섞지 않겠다”며 고함을 질렀다. 대안학교도 알아봤지만 월 100만원이 넘는 학비 부담에 포기했다. 2014년 이혼 후 서울의 한 대학에서 청소를 하며 홀로 아들을 키우는 이씨에겐 큰 부담이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났다. 지석이는 여전히 방에서만 지낸다. 체중까지 늘어 더는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3년간 온 몸으로 아들의 히스테리를 받아낸 이씨 역시 괜찮을 리 없었다. 이씨는 부쩍 나빠진 건강 탓에 얼마 전 직장도 그만뒀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청년재단에서 만난 이씨는 “한 때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울먹였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또래 청년들을 보면 왜 하필이면 우리 가족에게만 이런 일이 생겼나 하늘을 원망했다.”

[저작권 한국일보]은톨이가 자주하는 생각/ 강준구 기자/2020-01-16(한국일보)
[저작권 한국일보]은톨이가 자주하는 생각/ 강준구 기자/2020-01-16(한국일보)

 ◇부모 골병 드는데 통계조차 없다 

자녀가 은톨이인 부모들은 이씨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속마음을 알고 싶지만 곁을 내주지 않는 아이 때문에 힘들어 한다. 점점 상태가 나빠지는 아이를 보며 자책하고 괴로워한다.

가장 큰 고민은 도움을 받고 싶어도 마땅한 데가 없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3개월 이상 외부로 나가지 않는 경우를 은톨이라 한다. 은톨이는 조현병처럼 딱히 드러나는 증상이 없어 병원에 갈 생각도 하지 못한다. 결국 부모만 발버둥치다 몸과 마음이 축난다.

‘자식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에 이것저것 시도하다 역효과가 나는 경우도 다반사다. 22세 은톨이 자녀를 둔 김모(52)씨는 “초기에 아들이 방밖으로 나오지 않아 문을 뜯어냈더니 수개월 동안 말을 섞으려고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은톨이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는 아버지와 반대하는 어머니가 심하게 싸워 부부 관계가 악화된 사례도 많다. 김씨는 “아무도 내 편이 없다는 사실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고 토로했다.

은톨이 문제가 점점 곪아가고 있지만 국내에 몇 명이나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공식 통계가 없기 때문이다. 15년 전인 2005년 민간단체인 한국청소년상담원과 여인중 동남정신과의원 원장이 30만∼50만명으로 추산한 게 유일하다. 반면 은톨이와 비슷한 ‘히키코모리’가 사회 문제로 대두한 일본에서는 내각부 주도로 2015년과 지난해 두 차례 실태조사를 했다. 은톨이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나 의료지원 체계가 전무하다 보니 부모들은 한 목소리로 “다들 심각한 시행착오를 겪는다”고 하소연한다.

병원에서조차 우울증 같은 정신과적 질환과 은톨이를 구분하지 못해 잘못된 처방을 내주기 일쑤다. 일본 큐슈대와 미국 오레건보건과학대ㆍ포틀랜드주립대 공동연구팀은 최근 은톨이 증상이 심한 사람들은 스스로 격리되는 것에 만족감을 느껴 다른 정신과적 질환과 함께 분류하면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국 청년재단 회의실에서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창립총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승엽 기자
지난 11일 서울 종로국 청년재단 회의실에서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창립총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승엽 기자

 ◇스스로 구심점 만든 부모들 

지난 11일 오후 청년재단 회의실에 은톨이 자녀를 둔 부모 50여 명이 모였다.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한데 뭉친 것이다. 이들은 한국은둔형외톨이부모협회 창립총회를 열었다. 은톨이 부모 협회는 처음이다.

한 번도 이런 단체에 참여해본 적 없는 부모들은 처음에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회의가 진행될수록 하나 둘 입을 열며 참여하기 시작했다. 주상희 공동대표는 “협회가 만들어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면서 “은톨이 부모들이 기댈 수 있는 단체가 됐으면 좋겠고, 더는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해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미연씨는 “다른 부모들과 함께 경험을 공유한 것이 슬픔을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은톨이를 위한 사회적 기업 K2인터내셔널코리아의 코보리 모토무 대표는 “3년 전 2, 3명의 작은 모임으로 시작해 여기까지 오게 됐다”면서 “협회가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모두에게 비빌 언덕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청년재단 등 시민단체들도 이들의 버팀목이다. 홀로 지내는 고립청년 문제에 관심을 가진 단체들은 지난해부터 네트워크를 구축해 은톨이 부모들에게 힘을 보태고 있다. 시민단체 ‘공감인’이 지난해 8월부터 진행한 ‘비자립청년 치유 프로젝트’는 다양한 심리상담 워크숍과 모임, 여행 프로그램으로 부모와 은톨이들 모두에게 호응을 얻었다. 특히 부모들은 남이 차려준 따뜻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놓였다고 했다. 오혜민 공감인 활동가는 “부모님들께 ‘치유밥상’이란 이름의 한 끼 식사를 준비했다”며 “자존감 회복이 은톨이 문제의 핵심인데, 부모가 바로 서야 아이들도 제대로 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 공감인이 지난해 11월부터 두 달간 매주 토요일 진행한 비자립청년 부모 치유프로그램 중 제공한 '치유밥상'. 공감인 제공
시민단체 공감인이 지난해 11월부터 두 달간 매주 토요일 진행한 비자립청년 부모 치유프로그램 중 제공한 '치유밥상'. 공감인 제공

 ◇은톨이, 사회가 같이 고민해야 

은톨이 문제를 더는 개인의 문제로 방치하면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커지고 있다. K2인터내셔널코리아의 경우 지난해부터 청년재단에서 은톨이 10명을 위탁 받아 함께 공동생활을 해오고 있다. 사회 복귀를 위한 준비를 돕는 것이다.

남기웅 청년재단 일자리연계팀 매니저는 “올해는 부모교류회와 유관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은톨이 발굴을 확대하고 1대1 관계망 형성으로 프로그램 지속성을 키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청년재단에 게시된 은톨이 부모교류회 포스터. 이승엽 기자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청년재단에 게시된 은톨이 부모교류회 포스터. 이승엽 기자

전문가들은 디지털과 통신기술 발달로 대인접촉이 줄어드는 정보화 시대가 만들어낸 사회적 현상이 은톨이라고 본다. 박대령 이아당심리상담센터 센터장은 “은톨이는 정의할 수 없는 광범위한 사람들의 집단”이라며 “우울증처럼 정신질환자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있는 등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문화적 신드롬”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회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개인별로 △정신적 고통 여부 △집 안에서 지낸 시간의 비율 △대인관계 회피 정도에 따라 세밀하고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오혜민 활동가는 “나이가 들었다고 모두 ‘꼰대’가 아닌 것처럼, ‘밀레니얼’ ‘니트족’ ‘90년생’ 등 사회가 청년들에게 멋대로 붙인 이 이름들이 개별적 존재로서의 청년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자신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이들의 마음이 닫혀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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