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총선을 앞두고 영입한 최혜영(40) 강동대 교수의 말 중에 한 단어가 인상적이었다. ‘그래도’다. 최 교수는 곰곰 생각하니 평소 자신이 ‘그래도’라는 단어를 참 많이 사용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지만, ‘그래도’ 발레리나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스물다섯 나이에 불운의 교통사고로 척수장애를 얻었지만, ‘그래도’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사지가 마비돼 늘 도와줄 이가 필요했지만, ‘그래도’ 독립을 택했다. “집에 있으면 어머니와 언니가 손과 발이 됐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떠올렸다. 홀로 상경해 전화상담원으로 돈을 벌었고, 공부를 해 국내 여성 척수장애인 최초로 재활학 박사가 됐다. 무대에는 발레가 아닌 뮤지컬로 올랐다.
□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그를 보며 “희망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려운 환경을 극복해 오늘날까지 살게 한 힘은 희망”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정치권이 생각해야 하는 건 ‘장애인에게, 여성에게, 청년에게 그간 어떤 희망을 만들어줬는가’ 가 아닐까. 발표 한 달 반 전에야 연락해 영입한 최 교수를 가운데에 자리하게 하고 활동보조인 대신 의원이 휠체어를 밀어주며 ‘장애 여성’을 배려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홍보하는 것 이상의 준비가 돼 있는지 말이다.
□ “(정치판에서) 여성 의원을 가장 다급하게 찾는 건 사진 찍을 때야.” 4선의 나경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런 말을 푸념 삼아 한 적이 있다. 자신의 경험이 녹아 있는 말이다. 그게 싫어 일부러 뒤로 비켜서 있던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런 건 언론용 구색 맞추기일 뿐이란 걸 선수를 거듭하면서 그는 깨달았을 것이다. 가운데 자리에 앉힌다고 해서 여성 의원이 전체 의석수의 6분의 1밖에 안 되는 척박한 정치 토양, 공천 때만 되면 이런 구색조차 슬그머니 사라지는 현실이 포장되는 건 아니다.
□ 최 교수의 희망은, 스스로 집안의 문턱을 넘어 3m처럼 느껴졌던 3㎝ 보도블록과 수없이 싸워가며 피땀으로 만들어온 산물이다. 그가 국회에 진입한다면, 어쩌면 15년간 맞닥뜨렸을 세상의 문턱들보다 더 높은 정치의 장벽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장애 여성과 함께하는 정당은 사진 한 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제헌국회 이후 재선을 한 장애 여성 의원이 단 한 명도 없는 데에는 그저 선거 때만 구색 대접을 해온 한국 정치의 서글픈 수준도 한몫했으니 말이다.
김지은 논설위원 luna@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