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화 대구119시민안전봉사단 연합회장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가슴 저 밑에 있는 무언가가 용솟음치는 기분이에요.”
이순화 대구119시민안전봉사단 연합회장은 20여년 전 포항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다가 300평 매장 중 1/3을 잃어버리는 사고를 겪었다. 1, 2, 3 층 매장 중에서 지하와 1층이 불타서 4억이 넘는 피해가 났다. 강원도 시댁에 다니러 온 사이에 터진 사고였고 화재보험도 없던 상황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소방서가 신속하게 대응했다. 이 연합회장은 소방차가 빨리 와준 덕분에 매장 전소를 면했다고 믿고 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화재 현장에서 소방차가 불을 끄는 모습을 보면 전율이 느껴져요. 소방 호스에서 뿜어내는 물줄기가 없으면 말 그대로 잿더미가 될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려고 애쓰는 모습을 바로 곁에서 보고 있으면 한 마디로 감동이죠. 그런 현장에서 소방대원을 도와서 봉사를 한다는 것이 너무 뿌듯하구요. 세상을 구한 기분이 들어요. 화재를 겪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경외와 자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연합회장은 “화재는 단순히 건물이나 상품이 불타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잿더미로 변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 또한 아버지대부터 이어온 옷가게가 불타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었다.
그 기억 때문이었다. 2008년, 우연히 119시민안전봉사단 단원 모집 공고를 접하고 그날 당장 단원으로 가입했다. 워낙 열정적으로 활동한 덕에 이듬해 단장을 맡았다. 달서구 최초의 여성 단장이었다.
백종원의 도움을 받아 완성한 레시피
119시민안전봉사단은 1999년 경기도 화성 ‘씨랜드’ 화재 참사 등을 계기로 2000년에 결성된 뜻 깊은 단체다. 현재 400여 명이 소방공무원과 의용소방대 등과 함께 소방대상물 합동 점검, 예방 홍보, 주택용 소방시설 보급 사업 등의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응급훈련도 틈틈이 받는다.
이 연합회장은 응급훈련 덕을 톡톡히 봤다고 밝혔다. 한번은 운영하는 식당 매장에 어르신이 갑자기 쓰러졌다. 이 연합회장은 즉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구급대원이 “심폐소생술이 조금이라도 지체되었다면 큰일날 뻔했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바로 눈앞에서 두 번이나 벌어졌다.
봉사활동에 열정을 더한 것은 2006년에 새롭게 뛰어든 식당업과도 연관이 있다. 이 연합회장은 “새로운 사업을 하면서 주변에서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다”면서 “받은 것을 사회에 환원하는데도 119봉사단이 제격이었다”고 고백했다.
옷가게에서 식당으로 전환한 것은 2006년 무렵이었다. 작은오빠의 권유가 있었다.
“옷가게는 10명이 들어오면 4명 정도밖에 구매를 안 해요. 식당은 들어왔다가 그냥 나가는 사람이 없잖아요. 무엇보다 그것이 매력적이었어요. 솔직히 쉽게 생각하고 뛰어들었죠.”
초반에는 기세가 만만찮았다. 3년 만에 체인점을 11개로 확장했다. 팔공산에 2,200제곱미터에 이르는 조리 전문 공장과 창고를 짓고 음식을 식당으로 내려보냈다. 그러다 세무조사를 받았다. 식당으로 음식을 배달할 때 부가세를 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우여곡절을 헤쳐나가기까지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다. 식당을 열 때 조리를 직원들에게 맡겼더니 맛이 균일하게 나오지 않았다. 요리를 배워야겠다 싶어서 요리학원을 다닌 것은 물론 요리 관련 박람회가 열린다고 하면 어디든 찾아갔다. 맛집 탐방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도움은 오빠 친구에게서 얻었다. 유명한 쉐프에게 돼지갈비 양념과 조리법 레시피를 전수받았다. 그 양념은 아직도 그의 식당에 중요한 맛 비결이다. 게다가 소고기 소스는 ‘골목식당’으로 재능기부에 열심인 백종원씨의 조언을 받아 완성했다. 전국구 요리 장인들의 도움 덕에 그의 식당은 현재 강남을 비롯해 서울에만 3곳이나 문을 열었다.
“열심히 노력한 것도 있겠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도와주는 분들이 없으면 벌써 무너졌겠죠. 그분들 덕분에 식당이 이만큼 성장했습니다. 119봉사활동을 하면서 받은 만큼 베푼다는 생각을 늘 할 수밖에 없죠.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손길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은 물론이고 경제와 문화를 일으키는데도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0년을 119안전봉사단 전국 단체화 원년으로
연합회장의 헌신적인 마인드 덕분일까, 119시민안전봉사단의 봉사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해 10월에 영덕 지역이 수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고 119시민안전봉사단원 30여명과 함께 봉사팀을 구성해 피해지역으로 출동했다. 버스 비용은 물론이고 먹을 음식과 작업에 필요한 장화, 장갑까지 봉사단에서 구매해 갔다.
하루 종일 구슬땀을 흘리며 잔존물 제거와 물청소 등의 복구 활동을 펼치고 1,000만원 상당의 이불과 카펫, 라면 등의 구호물품을 전달했다. 이 연합회장은 “2018년 7월에 연합회장에 취임한 이후 개인적으로 가장 공을 들인 봉사활동이었다”면서 “너무 열심히 한 까닭에 봉사를 다녀온 후 며칠 동안 몸져누웠다”고 밝혔다.
119시민안전봉사단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가장 큰 숙제는 봉사단의 규모를 키워 봉사활동을 더욱 활발하게 추진하는 동시에 봉사단 구성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회원들과 함께 전국 규모의 단체로 발돋움하려고 애쓰고 있는 상황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화재인만큼 언제든 달려가 소방작업을 도울 수 있는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의용소방대도 있지만, 현장에 가보면 늘 일손이 부족하고 119시민안전봉사단만의 활동 영역도 큽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대구 지역 회원도 늘고, 이를 발판으로 전국 규모의 봉사단이 결성되기를 바랍니다. 2020년을 119안전봉사단의 전국 확장의 원년으로 삼겠습니다!”
김광원 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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