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이들에게 그토록 열광하게 할까. 나도 그중 한 명이다. 나도 처음 ‘입덕’이란 걸 했으니. 그런데 그 자발적 ‘덕질’을 하는 이들에 나 같은 중장년층이 많다. 아이돌 이야기가 아니다.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이름 석 자조차 몰랐던 두 남자.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면 계속 고단하고 팍팍한 인생을 살아갔을 스물한 살의 트로트 가수와 쉰한 살의 댄스 가수.
양준일과 조명섭은 2019년 말 갑자기 창고에 버려진 주크박스에서 튀어나온 듯 세상에 나왔다. 사람들은 뉴트로(새로운 복고)의 시대가 ‘소환’했다고 말한다. “갸들이 누군데” 하는 사람도 아직은 꽤 있겠지만 시대의 민낯인 유튜브에 가보라. 수많은 포스팅마다 조회 수가 수십 만~수백 만은 기본이요, 댓글은 수천 개, 많게는 1만 개 이상 달려 있다. 그 많은 악플러는 다 어디로 갔을까.
이들의 실력에 대한 평가는 내 능력으로는 논외다.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문화재급 목소리(조명섭)”라든지, “시대를 초월한 최고의 아티스트(양준일)”라든지 하는 평이 있지만 그 정도 갖고 이런 ‘현상’까지 생기진 않았을 거다.
이 두 남자가 사람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긴 건 무얼까. 나는 ‘음악’보다는 ‘인물’, ‘실력’보다는 ‘인성’, ‘퍼포먼스’보다는 ‘스토리’, ‘외모’보다는 ‘아우라’가 아닐까 생각한다. 댓글을 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감동, 힐링, 눈물, 영혼, 감사, 미안, 희망, 응원 같은 말이다.
둘은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충분히’ 불행했다. 가시밭길을 걸었다. 조명섭은 시골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신체장애가 있었다. 저렴한 행사장에서 노래하며 알바로 생활했다. 미국 교포 출신인 양준일은 1991년 데뷔했지만 시대 정서가 돌을 던졌다. 미국으로 돌아가 음식점 서빙을 하며 살았다.
이 둘이 한 달 간격으로 TV에 등장하자 사람들은 바로 알아챘다. 진솔한 말, 겸손하고 반듯한 태도, 맑고 순수한 생각, 몸에 밴 우아함, 소박한 품위, 가식 없는 표정, 수줍고 소탈한 리액션, 아직 어리지만 성숙한 내면, 중년에 접어들지만 아재 같지 않은 언행, 자신의 음악에 대한 당당함, 누굴 탓하지 않는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
근래에 이런 인간 유(類)의, 이런 벼락 스타 탄생을(아마도 송가인을 빼고는) 목격한 적이 없다. 기획 상품 ‘유산슬’과는 다르다. 그냥 합당한 때가 이제야 온 것이고,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면 그 분의 보상이 작용한 거 같다.
‘선한 영향력’이란 말이 근자에 마치 시대정신이나 되는 것처럼 유행어가 됐다. 연예인이 선행을 하면 미디어는 바로 이 수식어를 갖다 붙이며 추켜세운다. 박나래도 안영미도 연말 방송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선한 영향력을 주는 연예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 두 남자가 일으킨 신드롬을 보면서 선한 영향력은 베푸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연탄을 나르고, 거액을 기부하고, 의식 있는 발언과 윤리적인 행동을 해서 팬심을 자극하는 게 선한 영향력일까.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존재감만으로 착한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게 진짜가 아닐까. 양준일과 조명섭, 두 남자는 착한 남자 코스프레 혐의가 전혀 없다. 이 둘이 인터뷰에서 겸손하게 표현한 건 놀라움과 감사함뿐이다. 그런데도 세상을 착하게 물들였다. 참고 견디며 반듯하고 성실하게 살면 언젠가는 세상이 알아 본다는 댓글이 참 많다.
쉰 넘어도 여전히 힙한 양준일. 그가 손가락 한 번 우아하게 까닥이며 “나의 사랑 리베카”를 속삭일 때, 스물을 갓 넘긴 귀공자풍 조명섭이 “아~신라의 바~암이여”하며 중저음의 미성을 발산하며 순진한 미소를 지을 때 팬들이 “꺄악~” 열광하는 건 그래서가 아닐까.
한기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윤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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