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랜만에 고국을 찾은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27)은 헝가리 작곡가 버르토크의 루마니아 춤곡을 켜는 것으로 새해 인사를 대신했다. 무대에 선 그는 7분 동안 무희처럼 곡을 주물렀다. 발끝으로 걷는 듯한 섬세함부터 단발머리가 흩날릴 정도의 격정이 활 끝에서 모두 나왔다. 피치카토(현을 튕기는 연주법)의 경쾌함은 그녀의 연갈색 머리칼과 잘 어울렸다.
이날 서울 신천동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짤막하게 열린 공연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올해의 상주음악가’로 이지윤을 선정하면서 마련된 자리였다. 금호재단의 상주음악가 제도는 매년 음악인을 초청해 일정기간 자유롭게 원하는 무대를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취지로 2013년 시작됐다.
올해 상주음악가인 이지윤은 2004년 금호영재콘서트로 클래식에 데뷔했을 정도로 금호재단과 인연이 깊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독일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콜야 블라허 교수를 사사했다.
특히 이지윤은 2017년 세계적인 명장 다니엘 바렌보임이 음악감독으로 있는 독일의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에 악장으로 발탁되면서 유럽 클래식계를 뒤흔들었다. 이듬해에는 단원 만장일치로 종신악장 지위를 받았다. 올해 4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슈타츠카펠레에 동양인 여성 악장은 이지윤이 처음이다.
보수적인 유럽 클래식 사회의 벽을 뛰어넘은 비결을 묻자 이지윤은 “초심자의 행운”이라면서도 “오디션을 봤을 무렵 슈타츠카펠레는 세대교체를 추진하던 시기였는데, 저의 신선함을 높이 평가해 준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오케스트라에 경험이 없다는 점이 하얀 도화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거란 점에서 오히려 플러스 요인이 됐다”고 덧붙였다.
이지윤은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바렌보임에 대해 “옆집 할아버지처럼 친절한 분”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16세 소년 같은 눈동자로 음악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며 “어떤 곡을 맡게 되든 처음 연주하는 것처럼 임해야 한다는 교훈을 그에게서 배웠다”고 말했다.
악장은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 다음 서열이다. 이지윤은 연간 35주간 정기 공연을 소화해 내는 것은 물론, 추가 공연까지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이지윤은 “공연이 주로 주말이나 휴일에 있어 주말이 반갑지 않을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다.
게다가 오케스트라에선 개인의 색깔을 드러낼 기회가 많지 않다. 이지윤 스스로가 이번 내한 독주회에 대해 기대가 큰 이유다.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입장에서 독주회는 많아야 연간 2번 정도인데 올해 4번을 하게 됐다”며 “특히 마음껏 곡을 구상하고, 연주 파트너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상주음악가 제도는 다른 곳에선 찾기 힘든 행운”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6일 금호아트홀 신년음악회와 5, 8, 12월에 예정된 리사이틀 무대에서 이지윤은 버르토크 곡을 비롯, 야나체크, 비트만, 쇼숑 등 자신이 좋아하는 곡들을 잔뜩 채워 넣었다. 오케스트라에 억눌렸던 솔리스트 기질을 마음껏 풀어놓겠다는 얘기다.
이지윤은 자신만만했다. “야나체크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는 정말 독특한 곡인데, 왜 연주가 드문지 잘 모르겠어요. 이번에 제가 흥미로운 무대 보여 드릴게요.”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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