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제 교사들이 말하는 드라마 ‘블랙독’… “정규직 희망 때문에 노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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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 교사들이 말하는 드라마 ‘블랙독’… “정규직 희망 때문에 노예가 됩니다”

입력
2020.01.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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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블랙독' 한 장면. 기간제 교사들은 기피 업무이 고3 담임과 진학반 담당을 동시 맡은 주인공의 처지가 현실과 똑같다고 입을 모았다. tvN 제공

기간제 교사가 겪는 학교 현장 담은 드라마 ‘블랙독’

기간제 전현직 교사들이 말하는 공감과 비공감 장면들

“기간제 교사는 주로 정규직이 원치 않는 직책 맡아”

“아무렇지 않게 기간제 신분 밝히는 학교에 놀라”

강남 8학군 사립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우리 교육 현실을 그린 TV 드라마 ‘블랙독’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교사, 특히 기간제 교사(계약직 교원)에 초점을 맞춰 학교 현장을 그린 이 작품은 시청자 층이 좁은 학원물임에도 불구하고 케이블채널 프로그램으로 드물게 최고시청률 5.5%를 기록하며 순항 중이다.

전ㆍ현직 기간제 교사 8인에게 드라마 속 가장 공감하는 장면과 캐릭터, 다소 현실과 동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무엇인지 물었다. 시도교육청의 기간제 교사 채용 공고가 가장 많이 이뤄지는 2월을 앞두고 있어 박혜성 전국기간제교사노조 위원장을 제외하고 모두 익명 처리했다.

◇기간제 교사는 순직 처리 안 돼

드라마는 주인공 고하늘의 학창시절부터 시작한다. 수학여행 버스가 터널에서 전복되고, 기간제 교사 태인호는 다리에 깁스를 해 버스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하늘을 구하다 목숨을 잃는다. 장례식장에서 학교 측 책임자가 태인호의 유가족에게 산재보험 처리가 불가능하다고 쐐기를 박는다. “진짜 선생이 아니에요.”

세월호 참사를 연상케 하는 도입부를 답변자 절반 이상인 5명이 ‘공감 장면’으로 꼽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2학년 담임이던 고 김초원 교사는 학생 구조에 힘쓰다가 희생됐지만 기간제란 이유로 사망보험금 지급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경기도교육청이 공무원의 단체보험 가입 등을 지원하는 ‘맞춤형 복지제도’를 운용하며, 기간제 교사를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이달 8일 수원지방법원은 고 김 교사의 아버지가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을 상대로 낸 2,500만원의 손해배상청구 항소심에서 원고 항소를 기각했다.

15년차 기간제 교사 A씨(41)는 “기간제 교사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라며 “내가 학교에서 사고를 당해도 그런 대우를 받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드라마 속 이 장면을 보며 참사를 다시 떠올렸다”고 말했다.

◇기간제 2종 업무, 현실서는 고3 담임+학폭 담당

극중에서 대치고에 국어과 교사 원서를 101번째로 접수한 고하늘은 갑자기 면접 통보를 받는다. 먼저 뽑힌 기간제 교사가 고3 담임에 진학반 담당을 떠맡게 돼 계약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기간제 교사가 기피 업무를 여러 개 떠맡는 이 장면을 7명이 공감한다고 꼽았다.

경북지역의 한 사립학교 기간제 교사 B(42)씨는 “정규 교사가 하나도 맡기 힘든 업무를 기간제 교사에게 2개씩 주는 게 다반사다. 다른 학년, 다른 과목 수업을 동시에 맡으라는 요구도 유독 기간제 교사에게 몰린다”고 말했다. 수도권 사립학교 교사로 근무 중인 C(34)씨는 “주인공이 진학반, 심화반 담당까지 맡던데 현실에서 기간제한테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안 준다. 책임은 많고 공은 없는 학교폭력 담당교사를 맡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증언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2018년 5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전국의 유초·중·고 기간제 교사 237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학교에서 정규 교사와 차별을 경험했다는 답변이 74.8%에 달했는데, 그 중 기피 업무 담당 요구가 75.9%(중복응답)로 가장 많았고, 각종 위원회 피선출·선출권 박탈(59.3%), 방학·연휴 등을 전후한 쪼개기 계약(37%)이 뒤를 이었다.

tvN 드라마 '블랙독' 한 장면. 제자를 구하다 숨진 태인호(맨 오른쪽) 선생은 기간제 교사란 이유로 산업재해보험금을 타지 못한다. tvN 제공

◇6년 희망고문 당한 지해원에 절대 공감

대치고에서 6년째 기간제 교사로 근무해 ‘정교사 후보 1순위’로 꼽히는 지해원은 고하늘이 정규직 자리를 꿰찰까 늘 전전긍긍한다. 설문에 응한 교사 8명 전원이 지해원 캐릭터를 가장 공감한다고 답했다.

수도권 국공립·사립학교에서 8년간 근무한 D(40)씨는 “사립학교에서 채용비리로 마음 고생한 적이 있다. 거의 채용될 것처럼 약속했는데 결국에는 이사장 친인척이 자리를 채웠다”고 말했다. 수도권 한 공립학교에서 4년 간 기간제로 일하고 임용시험을 쳐 정규 교사가 된 E(34)씨는 “사립은 오히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기간제 교사들이 노예화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씨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하지만, 극중 지해원 선생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공립학교에 적용되는 교육공무원법은 기간제교원에 대해 ‘정규교원 임용에서 어떠한 우선권도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7년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때 기간제 교사는 전환 직군에서 제외됐다. 사립학교에서 근무하는 기간제교사의 처지는 이보다 더 열악해 교육공무원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도 아니다.

드라마에서 3학년 부장교사가 스피커를 통해 ‘기간제 선생님은 교무실로 와달라’고 방송한 장면에 대해선 교사마다 의견이 엇갈렸다. 똑같은 장면이 연출되진 않지만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수도권 공립중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7년간 근무한 F(40)씨는 “중학교 근무시절 교감이 책상에 붙인 교사연락망에 기간제를 따로 표시했는데 제자들이 이걸 보고 선생님 기간제냐고 물어봐서 곤혹스러웠다. 중1이라 기간제의 의미를 몰라 유야무야 넘어갔는데 지금 생각해도 등에 식은땀이 난다”고 말했다.

◇기간제가 바른 말하기, 현실서는 어려워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서 우리 학교 학생들이 많이 떨어졌던 건 학생 개인 때문이 아니라 학교 시스템의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극중에서 명문 한국대 입학사정관을 만나고 돌아온 고하늘은 정규 교사들 앞에서 대치고의 한국대 입학률이 저조한 이유를 이렇게 솔직히 말하고, 진정성에 감복한 진학부장 박성순은 학교 회의시간에 후배 대신 총대 메고 바른 말을 쏟아낸다. 기간제 교사들은 이 장면을 가장 ‘현실성 없는 드라마 속 장면’으로 꼽았다.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인 50대 G씨는 “매년 계약서를 새로 쓰고, 인사권이 교장ㆍ교감한테 달려 있는 기간제 교사가 학교에서 제 목소리를 내긴 힘들다”고 단언했다.

겉으로 퉁명스러우면서도 속은 따뜻한 진학부장 캐릭터도 학교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교사의 성향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혜성 위원장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 특성상 대다수가 매우 친절하고 주변에 세세한 걸 일일이 알려준다. 극중 아무도 행정업무를 알려주지 않아 주인공이 출석처리를 한 달이나 못했던데, 현실에서 이걸 보고 가만히 있을 교사는 없다”고 말했다.

“기간제 교사가 전국 5만여명으로 하나의 직군이 됐다.”(기간제 교사 B씨), “드라마는 시대를 반영한다. 기간제 교사 증가, 차별 문제가 그만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는 의미.”(박혜성 위원장) 기간제 교사들은 드라마를 보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의 말처럼 기간제 교사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초·중·고 교원 구성 현황 및 추이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00~2018년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교사 대비 기간제 교사의 비율은 각각 3.76%에서 17.84%로, 3%에서 17.53%로 늘었다. 국공립보다 사립학교에서 기간제 교사 비율의 증가 폭이 더 커 같은 기간 사립중학교에선 4.6%에서 23.21%로, 사립고등학교에선 4.11%에서 23.18%로 뛰었다. 보고서는 이런 현상에 대해 “고용 안정이 확보되지 못한 비정규직 교사의 증가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교육활동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 대응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신혜정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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