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고 쓸쓸하지만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겨울숲 (사진 송기엽)

어제부터 바람이 찹니다. 일기예보를 보니 이렇게 매서운 날씨는 이어질 듯합니다. 주변에 독감으로 힘겨워하시는 분들이 유난히 많고, 특히 하시는 일이 추워지면 더 어려운 분들도 있고, 개인적으로 저는 유난히 추위를 타는 사람이지만 이래저래 걱정이 많음에도 이번의 이 추위는 반갑습니다.

생강나무 꽃피고 난 다음 찾아든 추위가 가장 무섭다(사진 송기엽)

계절로 보면, 겨울의 한가운데에 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참으로 따뜻한 겨울이었습니다. 지역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간혹 기온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날은 영상의 기온 속에서 눈 대신 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따뜻한 겨울의 나날들이 이어졌지요. 겨울 축제들이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반대로 남쪽에서는 두 달씩 빠른 꽃소식이 들려오기도 했습니다. 추운 겨울을 열심히 대비하느라 많은 에너지를 쓰며 고생해왔던 나무들은 이렇게 매일매일 이어졌던 따뜻한 날들이 좋았을까요?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배웠던 삼한사온(三寒四溫) 이야기를 포기한 지도 이미 여러 해 전이지만, 그래도 나무들이 헤아릴 수 없이 긴긴 세월 동안 축적돼온 정보를 토대로 대응하고 반응해온 생의 근간이 흔들거려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낮이 길이가 짧아지면 겨울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졸참나무(사진 송기엽)

지금 낙엽이 지는 나무들은 고스란히 그 가지들을 드러내고 겨울을 보냅니다. 숲과 나무에 대해서 고수인 분들은 귓가를 쨍하게 울리는 겨울바람을 느끼며 하는 나무 구경이 진짜라고도 하시지만 나무의 입장에서는 겨울은 참 모진 시간들이지요. 나무들이 떨켜를 형성하여 수액이 이동하는 것을 차단하고 잎을 떨구는 것은 언제쯤으로 잡을까요. 추운 겨울을 준비하는 작업이니 일정한 임계온도로 내려가면 그리할 것 같지만 아니랍니다. 낮은 온도로 겨울이 오고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짧아진 낮의 길이가 지속되면 화학변화가 일어나 떨켜가 형성된다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이를 입증하는 사례도 있는데, 가로수 가운데 추위가 오도록 유독 늦게까지 낙엽 지지 않는 나무들을 보면, 옆에 밝은 가로등이 오래도록 켜져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답니다. 가로등 불빛이 낮의 길이가 줄어든 것을 알지 못하게 혼란을 준 것이지요. 물론 낮은 온도가 영향을 주기도 하는데, 이는 시기를 알려주기보다는 일단 낙엽이 지기 시작하면 그 속도를 빨리 해준다고 하네요. 왜 온도 대신 낮의 길이냐고요? 긴긴 세월 동안 DNA에 누적된 빅데이터와는 다른, 돌발 한파가 일찍 찾아들면 아직 수액은 농축되지 않아 얼기 쉽고, 준비 안 된 연한 조직들은 상처를 입어 이듬해 봄을 기약할 수 없게 되니까요.

겨울을 이기고 피어나는 음나무 어린 새싹 (사진 송기엽)

반대로 겨울의 휴면도 잠시 기온이 올라갔다고 해서 깨어지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온도에만 반응하여 봄이라고 착각하는 일이 없도록, 일정 기간 일정 온도 이하의 날씨가 여러 달 지속하여 충분히 저온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겨울눈을 벗고 새싹을 틔웁니다. 숱한 어려움과 예측 불허의 환경들을 극복해온 나무들이기에 이러한 완충의 장치를 두고 겨울을 버티며 아직 이어오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이 추운 날씨가 자연이 따뜻해지는 지구환경으로 혼란 속에 있을 나무를 비롯, 한 번에 발생해 해충으로 돌변했을지도 모를 곤충 등 수많은 생명들에게 그래도 아직은 겨울이라고 말해주는 고마운 메시지로 느껴집니다. 따뜻하게 입으시고 특히 감기 조심하십시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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